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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입소한 지 2주가 지나고 있구나.

지구빵집 2021. 2. 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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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입소한 지 2주가 지나고 있구나.

 

네가 훈련소에 입소한 지 2주가 지났구나. 14일째를 맞는 일요일이란다. 군대라는 낯선 환경과 별 볼 것 없는 풍경과 정해진 일과에 잘 적응하고 있어 보이니 아빠와 엄마는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나. 너처럼 잘 배우는 아이를 본 적이 없고, 어떤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는 아이라서 많은 걱정은 하지 않는다. 길고 긴 군 생활이 너에겐 성장과 변화의 시간이 되고, 마찬가지로 아빠와 엄마에게도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매 식사 시간에 밥은 잘 먹는지? 예민한 똥 싸기와 잠자기는 어떤지? 훈련소 동기들과는 잘 지내는지? 담배는 끊었는지 ㅋㅋ? 궁금하구나. 날씨가 많이 추울 텐데 잘 이겨내길 바란다.

 

네가 보낸 편지는 몇 번이나 잘 읽었다. 너의 글은 참 단정하고, 읽기 쉽고, 예쁘구나. 이러니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소대장에 지원한 일도 비록 되지 않았지만 아주 잘했고, 동료를 사귄 일이며, 자세한 일정 이야기도 정말 고맙구나. 아빠 엄마는 잘 지내고 있어. 엄마와는 화내거나 다툴 일도 없고, 아빠는 술도 자주 마시지 않고, 평화롭게 잘 지내고 있다. 네가 건강하고 아주 씩씩하고 놀랍도록 성장한 모습으로 변해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어.

 

네가 없는 밖의 세상은 아주 잘 돌아가고 있다. 코로나 19 전염병은 여전해서 400명 대를 유지한다. 5명 이상은 모임 금지고 모든 시설은 통제다. 자영업이나 강사 등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아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단다. 물론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다. 세상은 모두가 연결되어 있어서 누구나 영향을 받아. 부자들이 계속 돈을 많이 벌어가면 아마 나중엔 못 사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부자들 재산을 다 몰수할 수도 있어. 코로나는 기후변화의 영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 기후변화는 한 번에 도시 전체를 다 망가뜨릴 수도 있고, 아주 짧은 시간에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 그렇게 말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일터로 향하고, 맡겨진 일을 하고,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평온한 휴식을 갖는다. 집에 돌아오면 네가 방안에 있다는 생각으로 기쁜 마음이 들었다가 네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엄마는 문이 열리면 네가 들어오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도 한다고 하는데 2주간 시간이 흐르니 이제야 네가 떠난 실감이 나는구나. 아침이면 늦잠자는 너에게 학교에 간다고 말하고 나오고, 낮에는 언제 이놈이 밖에 나가나 하고 전화를 하고, 밤에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동안 밤마다 야식에 술 한잔 하던 기억도 새록새록하다.

 

아침에 바쁜 시간에 와이셔츠를 다려 입고 슈트를 입는다. 가방과 노트북을 챙겨 막 나가려는 데 갑자기 싱크대에 음식물이 가득 쌓여있지 머니. 하루 종일 음식물 냄새가 집 안에 가득 차게 되는 게 싫어서 슈트를 벗고 쓰레기봉투를 꺼내 담는 중에 빨간 기름이 튀어 와이셔츠를 물들인다. 하~ 욕이 튀어나오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마무리하고 와이셔츠를 벗어 화장실 욕조에 담가 두고, 다리 지도 않은 어제 입었던 셔츠를 꺼내 입고 우왕좌왕 출근을 한다. 우리 삶은 늘 엉망이란다. 세상은 늘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의도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간절히 원하면 대부분 안 되고, 갖고 싶은 것을 선뜻 주지도 않고,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고 말이다. 이런 것들은 실패도 아니고, 안타까운 게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고, 우리가 일상이나 우리 삶을 아주 잘 살아간다는 명확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삶을 아주 큰 덩어리나 몇 년 몇십 년을 뭉뚱그려 설명하거나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하고 저렇게 살아야 하고, 삶은 어떻고 하면서 해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아빠는 삶을 해석할 시간에 더욱 삶을 진실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순간이 삶이라고 본다. 매 순간 삶 아닌 시간이 없고, 우리가 낭비하든, 즐겁게 보내든, 누워서 하루 종일 보내든 우리를 지나가는 게 삶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매 순간 자신이 정의하면 된단다. 다른 사람이 나의 시간과 나의 삶을 정의하게 만들지 말고, 오직 내가 즐겁다고, 보람 있고, 내가 낭비해야 한다고 정의하고 살아가는 게 가장 명확하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2주간 국토 종주와 엄마랑 스페인 순례길 다녀온 기간 말고 가장 오랫동안 떨어져 있구나. 이런 모든 과정이 네가 어른이 되는 데 필요한 과정이니 잘 지내리라 믿는다. 2주간 할 말이 특별히 없었는데 일요일 아침 엄마와 이야기 나누다 민서에게 편하게 이야기해보자고 썼다.

 

2주간 격기가 끝나고 내일부터 훈련이라고 했지? 또 추위가 오는데 마음 강하게 먹고 훈련 잘 받아라.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즐겁게 맞이하는 태도로 훈련에 임하기 바란다. 어디에 있는 마음을 열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성장의 기회가 되고 값진 경험이 되고,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사람에겐 시간의 낭비에 다름아니다. 군대라는 환경은 특이한 데가 있어서 말이지 아빠가 이야기 한 내용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일 수도 있지만 사람 사이에 소통하고, 공감하고, 관계 맺는 일은 누구라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아들아, 2월 24일 훈련 마치는 날 보기로 하자. 건강 조심하고 잘 지내기 바란다. 안녕!  

 

 

더캠프 아들 카페 1소대 4분대 80, 1사단 교육대 주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사서함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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