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말과 글에서는 깊은 신뢰가 없다.

지구빵집 2021. 3. 3. 10:29
반응형

 

 

2021년 2월과 3월 달력이 정확히 같다. 달의 1일이 월요일에 시작하고 2월의 마지막 날 28일이 일요일에 끝난다. 3.1절 기념일이 끝나고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초중고 학교 입학식이 열리는 중이라 거리는 활기차 보인다. 2월 말 졸업식은 열리지 않았다. 종업 학생은 개인적으로 학교를 방문해 학교 졸업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쓸쓸한 2월이 지나 3월이 접어든다. 3월도 휑한 풍경은 마찬가지지만 새롭게 학기가 시작되고 봄이 물씬 가까이 오는 기분으로 사람들 얼굴에 생기가 돈다.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 마지막에 작가의 말을 읽고 또 읽는다. 산문집은 수월하게 읽히지만 큰 제목 ‘밥, 돈, 몸, 길, 글’에 속한 글은 감당하기 벅차다. 사실 사람이 모든 걸 걸고 하는 일이 몸이 기쁨을 느끼거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하는 일이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김훈의 글은 나로 하여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처럼 들렸다. 물론 말이나 글에 신뢰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긴 세월 행동을 보아야 한다. 현란한 말과 사술, 속임수와 트릭을 부려 혼란스럽게 만드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기술적인 문서는 보고서와 가이드 형식이라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다른 글에서는 삼갈 일이다. 구체적인 사물을 직접 마주 대해야 한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작가의 말-

 

학기가 시작되어 바빠지고, 새롭게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남자는 책을 좀 멀리해야 하는데 정작 멀리할까 두려웠다. 잠시 잃은 것도 다시 온전히 잃어버리기 전 모습으로 찾으려면 힘이 곱절 든다. 아침 일찍 나왔지만 예약한 이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지구빵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이발을 하고 상상코딩 플러스 대표와 실습 프로그램에 사용할 제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청계사 근처 두부집으로 가서 밥을 먹기로 했다. 어떤 식사를 하든지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해서 아주 적게 시키는 버릇이 있다. 여러가지 음식을 맛봐야 하고 남기는 게 없어야 하니 푸짐하고 양이 많은 음식은 자꾸만 먹을 기회가 줄어든다. 오후에 시청 일자리 위원회 참석해 안건 두 가지를 논의한다. 리빙랩을 시정에 연관해 제안 사항이 있으면 하고, 마을 공동체 예산에 대한 회의다. 잠시 놀다 온 사이 일이 많아졌다. 겨우 수업 두 개에서 일부를 맡아 하는 일인데 하면서 남겨진 일을 마무리 한다.

 

말과 글은 신뢰의 판단 대상이 아니다. 말과 글 모두는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라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질서와 체계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다. 말과 글을 바꾸는 일은 마음을 바꾸는 일보다 훨씬 쉬운 일이다. 건성으로 대답을 해도 되고, 마음의 결정과는 반대의사를 표현하기도 하고, 밥 먹고 차 마시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말은 왔다 갔다 하고 중언부언하고 말을 제외한 다른 몸짓을 표현해 시간의 지배를 덜 받지만, 글은 시간의 흐름을 그대로 압축하고 확장하여 표현하는 방식이라서 기억과 마찬가지로 사실을 표현하는 면에서 취약하다. 수 천 번 사랑한다고 말해도 헤어지면 끝이고, 우리 삶은 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로 가득하다. 

 

 

지구빵집 오전 10시 오픈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