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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사단 신병 교육대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

지구빵집 2021. 2. 2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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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사단 신병 교육대로 보내는 마지막 편지

 

방금 너와 통화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 아들아. 훈련소 수료를 하고 자대 배치를 받고 곧 떠나겠구나, 아들아. 오늘은 월요일이라 많이 바빴다, 아들아. 보고서를 쓰고, 작년 2학기 발표자료를 일일이 수정하여 인쇄 자료를 만들고, 외부 업체와 통화하여 4가지 문제를 협의하고, 스마트 조경 관리 시스템 개발 견적서를 송부하고, 책을 읽고, 개발 포스팅을 올리고 하는 것까지 아주 잘했다. 정신없이 일을 많이 한 날은 이상하게 자신감도 생기지만 조금은 우울해진다. 집에 가면 또 수고한 나 자신에게 맥주 한 잔 하고 쉬는 일이 남았지만 꼭 좋은 일은 아니다. 간단하게 마시는 게 아니라 술에 의존하게 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아.

 

이틀이 지나면 너는 훈련소를 떠나 배치받은 부대로 이동하겠구나. 오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는 332명으로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안 되겠지? 어떤 사람은 직장이나 근무지의 특성으로 부모님도 함부로 만나지 못하고, 돌아다는 일도 삼가고 집에서만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전염병과 상관없이 마음껏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비난하기도 한다. 후자의 사람은 이 좋은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고 하면서 즐길 수 있을 때까지 놀고 삶을 마음대로 살아가는 일이 어떠냐고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아빠는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서 판단해도 전혀 늦지 않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는 굳이 억지로 이해하려고 힘을 빼지 않으려고 한다.

 

사람의 특정한 행동으로 그 사람을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 정확히 알기란 불가능하지. 그렇다고 세상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노력을 포기하면 안 된단다. 모든 것들은 서로 영향을 미치고 받기 때문에 조용한 생활 가운데서도 예의 주시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통찰력과 시야를 기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독서와 경험은 그런 면에서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

 

사랑하는 민서야. 그동안 고생 많았다. 항상 우리 곁에 있다가 군 복무라는 대한민국 청춘이 짊어져야 할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너는 정말 훌륭한 아이란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점점 적응하고, 동료들과도 어색하겠지만 부단히 잘 지내려고 애쓰고, 훈련에도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너의 색다른 모습을 지켜보는 우리는 떨어져 있으면서도 아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단다. 네 전화가 기다려지고, 분대 단체 사진을 열심히 기다렸다. 주고받는 편지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했고, 덕분에 아들에게 잔소리도 너의 귀가 따갑든 말든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남은 시간 유종의 미를 잘 거두고 후회 없는 훈련소 수료를 잘 마치기를 바란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겨울의 방해가 계속된다. 오늘부터는 또 약간 춥지만 이미 경험한 사람들은 크게 추위를 느끼지 않고 이미 봄이 오는 길목으로 마중을 나가기도 한다. 주말은 따뜻해서 커피 마시러 외출도 하고, 마이 알레 식당 가서 파스타와 피자도 먹고, 시내 아이쿱과 초록마을에 가서 장도 보고 지냈다.

 

우리가 생활하는 모든 일에는 에너지가 든다. 걷고 말하고 웃고 일하고 노는 데에도, 보고 듣고 느끼고 배우고 생각하는 데에도, 심지어 화를 내거나 무언가를 미워하고 사랑하는 데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음을 다스리는 데도 에너지가 많이 든다. 보고 싶은 마음을 참는 일, 개인의 욕망을 억누르고 지내는 일, 다른 사람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보이지 않는 일까지, 심지어 살아있는 것 자체가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계속해서 에너지를 관리해 나가야 한다. 에너지가 사라지지 않도록 점검하고,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절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귀한 에너지가 헛된 일에 소비하거나 낭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적절한 일에 분배하고, 집중할 일에만 집중하고, 목표를 향한 일에 쏟아야 한다. 우리는 스스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에너지를 충전해야 한다. 각 개인이 자신의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수많은 가치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네가 훈련소에 들어간 처음은 많이 힘들었다. 아들에게 의지하고, 다투더라도 네가 있는 게 힘이 되고 충전이 되었는데 네가 떠나니 마음 한편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말로 하는 사랑은 쉽게 외면할 수 있으나,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은 저항할 수가 없다. 수 천 번 사랑한다고 말해도 한 번 헤어지면 끝나는 게 보통 젊은 사람의 사랑이 아니겠니? 민서 보다는 더 오랜 세월을 살았다고 해도 너보다 많은 것을 알거나 지혜가 많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식을 습득하는 속도와 양은 어마어마하게 빨라졌다. 너와 다른 게 있다면 하늘의 구름과 바람,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다는 것이다. 앞으로 너와 함께 지내는 모든 날들이 서로 배려하고 행동으로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여주며 살고 싶구나.

 

이 편지를 쓰고 퇴근하려고 한다. 오늘도 아주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순수함을 지키는 순종은 더 빨리 멸종한다. 다른 종과 섞이고 이질적인 문화와 융합한 문명이나 종족은 아직까지 잘 존재하고 있다. 이미 함께 훈련받은 다른 동료와 잘 지내서 알겠지만 다양하게 어울리고 서로 존중하는 시간은 아주 중요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가 있다. 긴 훈련기간 아주 잘 지내온 네가 자랑스럽고 어디에 내놔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미 말했지만 전화 자주 해주어서 정말 고맙다. 여진이 있었다면 여자 친구에게 할 전화를 다행히 여자 친구가 없어서 우리에게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수료식 대표 중대로 뽑혀서 행진하게 된 것도 축하한다. 너는 어디에 속해 있어도 항상 빛나고 아름다운 지 모르겠다. 무엇이든 잘 배우고, 좋은 태도는 어디에서도 잊지 말기를 바란다. 수료식 잘하고 자대 배치받으면 꼭 연락하기 바란다. 스마트폰과 이어폰은 충전해서 보내주는 데 너무 많은 시간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길 바란다. 늘 건강에 유의하고 기도하며 지내기를 바란다.

 

이만 총총.

 

2021년 2월 22일. 월요일. 연구실 히터 내렸다. 추워진다. 

 

훈련소 마지막 분대 단체 사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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