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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떻게 지냈니?

지구빵집 2021. 2. 2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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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민서, 오늘은 어떻게 지냈니?


금요일 아침 일찍 학교에 나왔다. 원래 금요일은 노는 날인데 딱히 놀 사람도 없고, 여전히 거리두기가 시행 중이라 나왔다. 3월 2일 화요일부터 1학기 개강이 시작되어 강의 준비도 하고 실습 계획도 짜야되고 할 일이 제법 있단다. 

어제 그러니까 18일 날 5일, 7일, 8일 날 쓴 너의 편지 3통이 왔더구나. 따져보니 설날이 껴서 그런지 너무 늦게 도착한 듯하여 섭섭하였다. 친구 편도혁 편지가 도착해서 뜯어봤다. 네가 군대 간 것도 모르고 있는 눈치던데 편도혁 편지와 봉투 주소를 스캔해서 인터넷 편지에 첨부할 테니 담담 병사가 잘 프린트해서 전달했으면 좋겠구나.  

2월 5일 편지에는 기록사격 훈련 이야기와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 사격하느라 목이 많이 쉰 이야기, 제설작업 이야기 잘 읽었다. 훈련소에서도 아주 바쁘게 사는구나. 사격은 점수가 안 좋은데 눈이 나빠서 그런가? 어릴 때 시력이 좋지 않은 것을 일찍 모르고 6학년에 되어서야 눈치챈 게 안타깝구나. 콘택트렌즈는 10년 동안만 유효한 거라고 하니 눈 관리를 잘하면 좋겠다. 너는 안경을 써도 아주 잘생긴 얼굴이니 편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안경에 잘 적응하길 바란다. 나중에는 안과 수술로도 좋아질 수 있으니 걱정하지는 말고.

아빠는 초코파이가 가장 먹고 싶었단다. 과자는 거의 없었고. 고기와 탕수육, 자장면은 휴가라도 나오면 먹도록 하자.

2월 7일 자 편지도 잘 읽었다. 근력운동과 체력단련 훈련을 열심히 하는구나. 턱 돌아간 것도 좋아지고,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다. 불침번 서는 것은 사실 고통스러운 일이다. 전우들이 너를 의지한 채 단 잠을 자고 있으니 어깨가 무겁더라도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동료들을 번호로 부르니 엄마는 사진을 보며 일일이 확인한단다. 얘가 목소리가 앵앵거리고, 이 친구들이 친한 동료들이구나 하면서 보고 있단다. 장점을 키우면 단점은 점점 사라지고, 좋은 태도를 갖추기로 노력하면 좋지 않은 행동이나 습관은 빨리 버릴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못된 점을 고치라고 잔소리도 많이 했지만 사실 가장 좋은 교육은 엄빠가 훌륭한 모범을 보이는 건데 많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2월 8일 편지에서 아주 잘 달린 이야기를 봤다. 너는 마라톤 42.195km를 한 번에 완주한 대단한 아이란다. 1.5km를 6분 30초에 들어온 것은 대단한 실력이다. 거의 1마일(1.6km)을 그 시간에 뛰니 500미터를 2분 10초에 뛴 것이니 정말 잘 달렸다. 연습용 수류탄 훈련 이야기는 너무 웃겼다. 이상하게 돌멩이는 잘 던져도 수류탄을 연습으로 던지는 훈련은 정말 많은 실수가 있단다. 그래서 연습용으로 하는데 모든 일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하는 게 중요하다. 실제 세상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민서가 아빠는 부럽단다. 책으로 배운 지혜는 막상 세상에 나가면 약하고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끝까지 밀고 나갈 용기도 부족하고, 지구력이 핵심인 삶에서 인내력도 충분하지 못하고 말이다. 

긴 편지 매일 써주어서 고맙다. 훈련 막바지로 접어들고, 이제 훈련소 생활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네가 매우 보고 싶구나. 오늘부터 날씨가 많이 풀리고 따뜻해진단다. 봄이 오는 것을 싫어하는 꽃샘추위가 한두 번 지나면 봄이 오겠지만 3월은 아니란다. 11월과 3월은 진짜 황량하고 볼 것도 없는 건조한 계절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추위와 봄이 섞인 계절에 시작하기에 민서는 7월 좋은 날 제대할 수가 있겠구나. 시간 앞에서 모든 것은 기다려야 제 때를 가질 수가 있단다. 민서도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실력을 갈고닦으며 너의 시대와 영광을 만나기를 아빠는 기대한다.

엄빠는 잘 지내고 있단다. 서로 의지하는 것은 없는 데 이야기도 나누고 네 편지도 읽으며 가끔 커피 마시러 놀러도 다니면서 잘 지낸다. 늘 아빠 걱정하는 민서에게 미안하기도 한데 걱정 그만하기 바란다. 창피한단다. ^^

편도혁 편지를 첨부파일에 이미지 파일로 첨부하니 혹시 받지 못하면 확인하기 바란다.

훈련소 수료식 마치는 날까지 최선을 다하고 쉬고 자유시간일 때에도 규칙과 절도를 지켜 행동하기를 바란다. 건강하게 수료하고 자재 배치받으면 일등으로 면회 가서 만날 날을 기다리마.

2021년 2월 19일. 금요일. 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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