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짐이나 결심, 단호한 의사 결정이 많다고 사람이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다. 단호한 것처럼 하지 말아야 할 것과 추구하는 바를 떠들수록 가치도 떨어지고, 진실성에 의심이 든다. 차라리 입방정 떨지 말고 묵묵히 쉬지 않고 걷는 자세가 삶에는 더 도움이 된다. 우리 모습이 달밤 산의 능선처럼 노출되지 않으면 우리를 노리는 화살에 맞을 일은 없다. 남자는 말이 없다. 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말이 없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든, 중간에 포기하면 모를까 남자에게 다시 징징거리고, 칭얼거리고, 마구 떠들던 때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림도 없다. 남자는 오히려 마음에 들어한다.
이중 연인의 주인공 수완은 의도치 않은 술자리에서 황경오를 만나고, 동시에 우연히 만난 이열에게는 '언제나 열어는 놓고 있으라'는 말을 듣는다. 첫 만남에 이열의 이전 연인이었던 보라와 만나 보라의 집에서 술에 취해 잠들지만 보라는 그냥 이열의 지나가는 연인이었다. 다연은 수완의 직장 동료다. 다연의 말은 늘 일리가 있다. 이열과는 열어 놓은 채로 지내고, 황경오의 집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황경오의 옛 아내에게 들킨다. 황경오의 모든 것을 가지려다 헤어지고, 수완의 교통사고 와중에 산을 좋아하던 황경오의 히말라야 등반에서 사망 소식을 듣는다. 이열에게 이야기할 시간도 없이 이열과 거리를 둔 채 지내다가 다시 만난다. 이열의 마마가 죽게 되고 수완은 이열의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그의 입술 안쪽의 부드러운 점막 피부가 나의 마른 입술을 눌렀다. 그리고 혀가 나의 앞니를 열고 들어왔다. 긴 키스였다. 한 사람만 양치질하면 된다는 밑도 끝도 없는 논리를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맑아지고 있었다. p.95
나는 청혼을 받은 적이 있었다. 상대는 스물다섯 살부터 삼 년 동안 교제했던 서교였다. 어찌어찌 마지막 문턱까지 갔다가 결혼이 무산되었을 때 삶의 난폭함을 알게 되었다. 삶이란 강철과 시멘트와 유리로 지어진 냉혹한 인공물이었다. 그에 비하면 사랑은 거품이고, 구름이고, 종이배이고, 새의 깃털이고,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렇게도 연약하고 소용없고 흘러가는 것들이었다. pp.29-30
문제의 그 해변 건물을 보러 갔을 때, 나는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 폐건물이 엄마를 닮았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는 폐건물에 끌렸던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행복한 사람이 행복에 끌리듯, 불행한 사람은 불행에 끌리기 때문이다. p.190
내 인생에 유리 조각처럼 박힌 이중 약속, 그런 일은 어떤 여자에겐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어떤 여자에겐 예사로운 일인지 모른다. 내겐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었다. 교활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부주의했던 게 이유였다. 마음을 열고 한 사람을 받아들이면 다른 사람이 동시에 다가온다. 동시성의 법칙은 연애 월드에서 꽤 알려진 징크스이다. 오랫동안 아무도 없다가, 저 먼 천체에 별자리들이 이동하듯 남자들이 한꺼번에 밀려드는 식이다. p.98
비스듬히 어긋난 연인 사이에 사랑을 담아 보았다. 서로에 대한 막연한 호감과 삶에 대한 관심, 끊을 수 없는 그리움과 특별한 관대함이 테두리를 이어 가지만 중심은 비어있는 사랑. 그 중심은 폐허일까, 시원일까. p.207 작가의 말
누구든 미안하다고 할 때는 얼버무리지 말고 콕 찍어서 무엇이 미안한지 말하면 좋겠다. 아니라면, 한 번 실수를 한 게 아니라 원래, 늘 그러고 사는 사람인 것이다. p.51
아도니스, 아프로디테, 페르세포네, 봄의 지상, 겨울의 지하 p.75
남의 이야기란 그런 것이다. 제가 고생하지 않을, 그러니까 남이 고생할 이야기, 그것이 낭만의 정체였다. p.93
수완, 그 남자의 곁에서 내가 어떤 모습인지 알아야 해. 사랑을 위에 사랑하지는 마. 그런 사랑은 너를 해쳐. 너를 위에 사랑하도록 해. 희망 없이 사랑하는 건 차라리 괜찮아. 하지만 힘들거나 불편하고 슬프고 불안한 건 사랑이 아니야. 사나워지는 것도 사랑이 아니야. 힘들어지면 언제든 그만두도록 해.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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