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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과 열심: 나를 지키는 글쓰기, 김신회 에세이스트

지구빵집 2021. 2. 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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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과 열심: 나를 지키는 글쓰기, 김신회 에세이스트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날들을 아무리 여러 번 손가락을 꼽아 봐도 길지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곁에 머무는 사람과 햇살, 일상과 하루, 뜨고 지는 계절까지 남김없이 가는 것들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매력적인 사람이고, 더 잘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책에서 아름답고 기억할 만한 문장은 책의 맨 뒤에서 시작하는 표시한 문장부터 적는다. 가장 최근의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삶을 가장 가깝게 느끼고, 보고 싶고, 기억하자고 말했으니 응당 그래야 한다. 매번 책의 앞부분의 좋은 글을 옮기다가 중간에 이르러 힘도 빠지고, 중간 너머로 가면 옮기기 조차 싫어진다. 그러다 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은 더 빨리 쉽게 사라진다. 그러니 이왕이면 더 선명한 기억과 문장을 오래 가져가려면 뒤에서부터 옮겨야 한다. 아주 기가 막힌 삶을 사는 방식이다. 

 

나이 때마다 깨닫는 방식과 깨달음의 의미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같을 수가 없다. 심심과 열심은 40대 초반의 전업작가이자 13년 동안 글을 쓰면서 부딪히는 잡다한 일상을 속시원히 말해준다. 작가의 느낌이나 상태는 그 지점에 머물러 있다. '자기를 지키는 글쓰기'를 끊일 듯 말 듯 이어가는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은 별로 없다. 사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고민이나 일상사, 괴로운 현실을 고백처럼 이야기하는 일도 한두 번이지 몇 번 계속하면 연락하는 명단에서 빠지기 일수다. 맛있는 음식은 다른 사람이 해 주는 음식이고, 먹기 좋은 대화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하거나 상대방 이야기를 제법 긴 시간 들어주는 일이다. 지금 시대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다. 듣지 않는 사람은 말하지 않아야 한다.   

 

수필은 중 고등학교 때 정말 좋아했는데 그 후로는 거의 읽지를 않는다. 마치 훈계를 하거나 계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너무나 진솔한, 일상의 이야기, 숨겨도 되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아서 부담스럽다. 자기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데 그걸 나는 그렇게 산다고 전부 드러내면 어쩌자는 거지? 글 쓰는 사람이 그런 것을 내보이기는 훨씬 쉬운 일이다. 원래 자기 이야기를 글로 쓰는 일이라든가, 유튜브 크리에이터처럼 영상을 공개하는 일은 자기를 모두 드러내 보여야 하는 일이라서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영화, 책, 학습 관련된 영상에는 얼굴조차도 나오지 않는 영상을 보면 어느 정도는 철판이 필요한 일이다.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남도 믿지 못한다는 것, 스스로를 위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위로할 줄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 앞에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며 당황하던 모습은 내 진짜 모습이 맞다. 어쩔 줄 모르는 사람, 뭐가 뭔지 모르는 사람, 그러나 꼭 뒤늦게 알아차리고 후회하는 사람. p.234 

 

아이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대부분이 책에는 교훈이 있으니 일부러 교육적인 책을 고르지 않아도 됩니다. 아이가 흥미로워하는 책으로 골라 주세요.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일단은 들어보세요. 아이가 정해진 시간에 책 한 권을 끝까지 못 읽더라도 괜찮다고, 읽은 데까지만 이야기해 보자고 말해주세요. 칭찬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지적도 그만큼 참아보세요. 독서록을 쓸 때는 아이가 어떤 문장을 쓰는 그 아이의 선택이고 생각이니 그대로 인정해주세요. 이상은 다 네가 못 했던 것들이다. 정확히 내가 안 한 대로만 하면 된다. p.213 

 

우리는 자기를 대하는 모습 그대로 남을 대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충고와 비판만 하는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모진 사람이에요.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남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어요. 자기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남도 이해하지 못하지요. 김신애 씨가 직접 자신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김신애 씨를 제일 잘 이애주는 사람이요. p.172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합니까?라는 질문을 두고 작가는 의문을 제기했다. 남는 시간의 반대말은 아마 바쁜 시간일 텐데 내 시간은 전부 할 일로 바쁘기 때문에 남는 시간이 없다. 그에게는 일하는 시간도, 잠자는 시간도, 고양이를 돌보는 시간이나 밥 먹고 치우는 일도 다 할 일을 하는 시간일 뿐 그 무엇도 여가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실 남는 시간에 하는 일이 아니다. p.166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내 한 몸 챙기기가 제일 어렵다. 제시간에 일어나고 잠들기, 끼니 거르지 않기, 규칙적으로 운동하기. 그를 통해 깨치는 것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혹독해지지 않고, 지나치게 관대 해지 지도 않는 법이다. 자신을 꼭 좋아할 필요는 없더라도 미워하거나 괴롭히는 시간만큼은 줄이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잘 수행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체력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체력은 곧 재력이다. p.156 

 

글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적당량의 비관주의라고 생각한다. 삶이 밝고 맑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굳이 머리 싸매고 글을 쓸 이유가 없다. 현실은 궁상맞고 나는 더 한심하고 뭔가 해소되지 않는 응어리가 있는 사람일수록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p.144 

 

흑역사를 잊게 하는 것은 새로운 역사다. p.137 

 

그냥 한번 써보자. 멋진 척하지 말자. 있는 척, 똑똑한 척도 하지 말자. 아무리 그래 봤자 독자들은 다 안다. 나 또한 누군가의 책을 읽을 때 작가가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눈에 들어온 적이 많았다. 문장이나 단어로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던 비밀스러운 감정이 그가 쓴 글에는 빼곡히 들어 있었다. 이 사람은 무시당하고 사는 걸 못 견디는구나, 줄기차게 똑똑해 보이고 싶은 사람이구나. 리뷰로 남기면 악플이 될 것만 같은 감상이 느껴지고 했다. p.81 

 

좋은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를 알고 내 감정을 파악하며 쓰는 글은 모두를 지키는 글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이 편안하고 풍요로운 때 좋은 글이 나온다고 믿는다. 우울하고 괴로울 때 멋진 글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 우울하고 괴로울 때는 그저 그냥 우울하고 괴로운 글이 나오더라. 

지금 자신의 글을 되돌아보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것을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자신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다. 좋은 글을 쓰는 일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내가 없으면 그 글도 없다.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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