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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카페에 왔다 가셨군요.

지구빵집 2021. 5. 14.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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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호회 카페에 왔다 가셨군요. 모두 기다리고 있어요. 

 

단체방 말고 수다 떠는 카톡방에서 자기를 드러내는 표시는 4분 음표 한 개, 학생 때 사진은 리처드 기어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미남이신, 말이 많지 않고 대답이 늘 짧지만 다른 사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는 유일한 사람, 함께 술을 마시다가도 노래를 메들리로 시작할 즈음엔 아, 취하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설 플랜트 설계 회사를 경영하면서 일에 소홀함이 없는, 여사님이나 자식들에게 소홀하지 않고 선배들에게도 인정받으면서 누구보다 후배들을 잘 챙기시는 성자 선배가 카페 방문자 이름에 올라온 것을 보았다.

 

그러니까 저번 주 수요일 어린이날 새벽까지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아침에 번개 달리기를 했다. 오랜만에 영동 1교에서 모였다. 한강 철교까지 정확히 20km 거리를 달렸다. 마음이 만들어 내는 기분이나 상황에 따른 감정만 잘 다스린다면 좋지 않은 날은 없다. 모든 날이 좋은 날이란 말이다.

 

느긋하게 달리는 희자와 늘 열심인 언자 선배, 함께 달린 지 꽤 되는데 실력이 도통 늘지 않은 석자(집중하지 않으려고 함)와 한강 철교까지 함께 달렸다. 한강은 늘 푸르고 강물은 윤슬로 반짝인다. 양재천과 탄천이 합쳐지고 그 줄기가 다시 한강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낚시꾼도 많다. "다시 뛰지 않을래?"라는 표어로 서울마라톤 대회가 진행 중이라서 한강에는 대회 티셔츠인 흰색, 검은색 뉴발란스 기념 티셔츠를 입고 뛰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멋지다는 말은 할 필요가 없다. 원래 러너는 다 멋지다. 필자 감독은 못 뛰는 사람을 보고 달려야 더 오래 잘 달리고 기록도 좋다고 말했다. 달리기에도 모든 러너에게는 기대와 태도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발전하는 러너라면 명심할 일이다. 특히 태도는 모든 것을 결정한다. 태도는 그 사람의 본질에 가깝다.

 

세계적인 어떤 회사는 면접을 볼 때 면접자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종업원을 어떻게 대하는지 태도를 보고 합격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2015년 개봉한 인턴 영화에서 해서웨이 대표는 은퇴한 벤(로버트 드니로)이 들고 다니는 손수건,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말투, 무엇보다 상대방이 해답을 스스로 찾게 하는 기술과 같은 모든 태도가 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앞에 페이스 메이커나 잘 달리는 사람을 보고 달리면 중간에 퍼지거나 무척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느린 사람들과 함께 목표한 곳까지 달리고 다시 돌아올 때 힘껏 달렸더니 너무나 편한 달리기였다. 탄천 주차장에서 왕복하는 내내 물당번을 한 종자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누군가 편하고 행복하다면 그건 희생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작은 도움으로 얻은 것이다. 늘 감사하면서 살기로 한다. 요즘은 새로운 습관이 불평불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늘 감사하는 일이다.

 

거리두기는 계속되고 여럿이 어디를 가든 불편하다. 일부는 당구를 치러가고, 바쁜 사람은 바쁜 일을 하러 간다. 우리는 청계산으로 놀러 가기로 한다. 결국 4명을 태우고 청계산 애마 오리로 간다. 이렇게 푸른 날 놀지 않는 사람은 유죄다. 옛골 등산로 입구에 있는 애마 오리 식당에 자리를 잡고 오리도 구워 먹고 소주 마시면서 놀다가 당구 치는 현자를 불렀다. 넓고 천정이 높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성자 선배가 보고 싶어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는다. 재활 치료 중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주 가까운 거리 너머의 상황은 알 수가 없고, 심지어 가까운 데서 일어나는 상황이나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다. 사람의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기다리면 전화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는데 상관없다.  

 

성자 선배는 사고가 나고 재활 지료를 받은 지 1년이 넘었다. 전화를 하니 받지 않아서 기다리는 데 선배 전화가 왔다. 남자는 갑자기 눈물을 왈칵 쏟는다. 남자는 할 말도 하나도 하지 못하고 웅웅웅 거리다가 "보고 싶어요 형님." 말만 하고 핸드폰을 옆에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 순자 누나, 필자 감독, 미자 누나와 현자는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며, 용기도 북돋고, 밀린 이야기를 나눈다. 슬픈 사람은 슬퍼한다. 성자 형님은 얼마나 술 한잔이 그립고, 한 패거리가 되어 놀러 다니던 우리들이 그리울까. 다시 꼭 만나서 서로 얼굴 보고 놀았으면 좋겠다.

남자는 술에 취했는지 아니면 성자 선배를 만나지 못해 슬퍼하는지 모르지만 사실 정신줄 놓았다. 성자 선배가 자주 온다면 남자는 글을 많이 올리기로 결심한다. 남자는 한다면 꼭 안 하는 사람이라 기대하지 않는 게 차라리 좋다. 월요일 사무실에 가니 아침 일찍 미자 선배가 글을 보내왔다. 남자는 현실을 살지 않는 사람이라서 늘 헤매는데 미자 선배는 늘 시인처럼 이야기한다. 그게 아름답다면 아름다운 모습이다. 

 

 

자기 자신답게 살라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 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 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법정스님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중에서.

 

 

미자 선배는 무얼 해서라도 위로하려는 모양이다. 겪고 보니 감정에 충실한 게 훨씬 더 우리를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고 자유롭게 만든다. 여자의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많이 슬퍼하는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이상하게 감정을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충분히 슬퍼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표현하는 것이 좋은 건 아니지만 표현하지 않는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으면 언젠가 존재를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 인정해 줄 수는 없다. 정신은 아득해진다.

 

느끼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울지 않으면 우리는 갇혀 있는 존재다.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빠져나갈 수 없는 존재다. 버리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감정이다. 감정을 모두 표현하고, 말하고, 떨치고, 두고 떠나는 일이다. 가져가지 않아야 한다. 감정을 가져가면 암 걸린다. 성자 선배는 한 번도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궁금한 걸 물어보면 "그건 말이지." 하면서 설명은 친절하게 했지만 어린 후배들 데리고 놀기에는 표현하기가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카페 방문자 목록에서 성자 선배를 보기는 오랜만이다. 오랜만은 긴 기간에는 쓰는 말이 아니다. 믿을 수 없는 기억에 따르면 일 년 하고도 2개월 만에 본다.   

 

 

동호회 처음 화면 챕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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