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지구빵집 2021. 7. 21.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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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 

 

1. 객관성이라는 환상 초월하기

 

p.29: 근래 들어 심리학자들이 '소박실재론(naive realism)'을 자주 언급한다.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세상을 주관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고 여기는 매우 유혹적인 발상(=착각)을 가리킨다.

 

p.37: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사물이나 상황을 자기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이 논리적 비약은 '허위 합의 효과(false-consensus effect)'라고 명명한 현상을 빚어낸다. 이는 자신의 믿음이나 견해 또는 행동이 실제보다 더 많은 합의 내용과 일치한다고 믿는 것을 말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특정한 견해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 견해나 취향이 반대의 견해나 취향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p.60: "네가 혐오하는 것일지라도 네 이웃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율법의 전부이고, 나머지는 모두 이것을 해설하는 것이다." - 유대교의 현인 힐렐(Hillel)

 

2. 상황이 발휘하는 힘 이해하기

 

p.82: 미국인이 소득신고를 할 때 서류양식 하단에 '이상과 같이 정직하게 진술합니다'라고 쓰게 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보고서 상단에 그 문장을 쓰게 했다. 즉, 보고 내용을 적기 전에 일종의 정직성 서약을 하게 한 것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정직성 서약을 나중에 할 때 성적을 부풀린 비율이 79퍼센트인 데 비해 서약을 먼저 했을 때는 그 비율이 37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p.84: "권장하는 행동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고, 권장하지 않은 행동은 쉽게 하지 못하도록 만들라." 예컨대 권장하는 행동은 커다란 공을 내리막길에서 굴리는 것처럼 쉽게 만들고, 권장하지 않는 행동은 커다란 공을 오르막길에 굴려 올리는 것처럼 어렵게 만들라는 뜻이다.

 

p.87: 절반의 사람들에게는 큰 스푼과 함께 큰 그릇을 주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작은 스푼과 함께 작은 그릇을 주면서 각자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먹게 했다. 큰 그릇을 받은 사람들은 작은 그릇을 받은 사람들보다 절반이나 더 먹었다.

 

p.95: 효과적인 행동은 행동 관성(behavioral momentum)을 활용하고 점진적인 진행의 힘을 이용할 때 최대로 발휘된다. 긴 편지를 쓰거나 책을 한 권 쓰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일단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한결 쉬워진다. 어떤 영감이 떠오르길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일단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친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몇 개의 문장이나 문단으로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쉽게 술술 풀린다.

 

3. 언어 자체가 지혜의 바탕 p.112: 이민법 개혁을 놓고 보면 미국 영토 안에서 합법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채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을 '불법 외국인(illegal alien)'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증명서가 없는 노동자(undocumented worker)'라고 부를 수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미국이 전쟁부(Ministry of war)를 국방성(Ministry of Defence)으로 바꾼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늘날 미국의 지도자들이 '고문(torture)'이라는 용어 대신 '선진 심문(enhanced interrogation)'이라는 용어를 쓰고, '민간인 사상자(civillian casualties)'라는 용어 대신 '이차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는 용어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계획이나 정책이나 제안에 붙이는 이름이 그것을 생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긍정적인 느낌을 가질지 아니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질지, 어떤 행동을 선호하거나 싫어할지,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긴급성을 부여할 것인지 등을 판가름하는 데 영향을 준다.

 

p.131: [평균 이상 효과(above-average effect)]

 

"조심하는 운전자는 조심성에 가중치를 두고, 성질 급한 운전자는 속도에 가중치를 둔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가 자기 동네에 제일 멋진 개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에서다."

 

연구자들은 이런 발상을 지지하는 또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평균 이상 효과는 협소하게 규정되는 특성('키가 크다, '약속 시간을 잘 지킨다' 등) 보다 복수의 해석이 가능한 특성('재능이 많다', '감수성이 풍부하다' 등)에서 한층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운동을 잘하는지, 예술적인 감성이 풍부한지, 이타적인지 따질 때 서로 다른 '판단 대상'을 염두에 두며 대부분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대상을 선택한다. 이렇게 보면 사람들이 자기를 평균 이상으로 평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기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굳이 따지자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기 힘이 미치는 영역 주변에서 자기가 살아가는 여러 가지 삶을 조직한다. 다들 자기가 성공을 누리며 계속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을 선택해서 그 안에서 살고자 한다. 예를 들어 또래보다 힘이 세고 강한 청년은 축구를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으로 선택하고,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것을 특히 강조하는 운동 세상에서 살아간다. 이와 대조적으로 덩치가 왜소한 사람은 테니스나 배드민턴을 선택하며, 이들의 운동 세상에서는 손과 눈의 조응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친다.

 

마찬가지 이유로, 훌륭한 시민의식의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다. 훌륭한 시민의식이란 납세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자기가 가진 재산을 잘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자기가 신봉하는 대의를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자기가 생각하기에 정부가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떨쳐 일어나서 저항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쏟으면서 살아간다. 제각기 다른 이 사람들은 모두 적어도 자기가 설정한 기준에서는 '평균 이상의 시민'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p.142: 대부분의 사람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선택하기 위해 숫자를 더하거나 곱해보지 않고 자기에게 주어진 원래 수치에만 초점을 맞춘다. 마찬가지 이유로, 애플 아이팟과 같은 고가 제품 역시 통화가치가 작은 화폐로 가격이 매겨져 있을 때(예컨대 가격표에 멕시코 화폐 단위로 6,395페소라고 매겨져 있을 때) 보다 통화가치가 큰 화폐로 매겨져 있을 때(예컨대 가격표에 영국 화폐 단위로 318파운드라고 매겨져 있을 때) 사람들의 구매 성향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분모 무시(denominator neglect)'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고 싶다면 예컨대 '1년에 365달러'라는 식으로 분모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낫다. 반대로 강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면 '1일에 1달러'라는 식으로 분모의 규모를 줄이는 게 낫다. 전략적으로 적절한 규모의 분모를 선택할 때 나타나는 효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한 연구에서 응답자들은 전체 1만 명 가운데서 1,200명을 사망으로 이끈 어떤 질병이 100명 가운데 24명을 사망으로 이끈 질병보다 더 위험하다고 대답했다. 치사율이 2배나 높은데도 말이다.

 

p.151: 경기가 마음먹은 대로 잘 풀리지 않을 때 코치는 선수에게 '발뒤꿈치를 들고 발을 빠르게 놀려라, 허리와 어깨를 쫙 펴라, 경기를 잘 풀어나갈 때의 모습과 자세를 취하라' 등을 지시한다. 그야말로 '진짜로 이뤄질 때까지 진짜로 이뤄진 것처럼 행동해라(Fake it till you become it)'의 테니스 버전인 셈이다. 아무리 최고의 선수라 하더라도 패배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상대가 대담한 플레이로 압도해버린다는 말이다. 이 충고는 테니스를 비롯한 운동 종목들의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모든 곳에서 통한다.

 

4. 행동이 정신을 지배하는 원리 알기

 

p.178: 만일 발달이 되는 행동(initial action)이 태도와 가치관에서의 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면, 그 초기 행동을 촉발하는 데 사용되는 유인책은 지나치게 무겁거나 심각하면 안 된다. 예컨대 집안일하기, 피아노 연습하기, 율법 공부하기 등이 '내면화'를 이끌길 바란다면 가볍게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순히 동기를 부여하거나 어떤 압박을 주거나 합리화의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면, 약할수록 좋다. 예를 들어 아이가 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도록 하거나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하고 싶다면, 아이에게 엄청나게 큰 보상을 주겠다고 하거나 무서운 위협을 가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할 때 아이가 당신의 말을 따르긴 하겠지만, 그 일을 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야만 하는 것으로 바라볼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묘한' 압박과 '부드러운' 유도는 사람들에게 자기 행동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믿음과 선호를 반영한다고 느끼게 할 수 있지만, '명백한' 압박과 '강한' 유도는 반대의 효과를 부를 수 있다. 순전히 압박이나 구속 때문에 자기가 그 행동을 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수학 문제 풀이 게임을 하면서 학생이 답을 맞힐 때마다 점수를 주어서 나중에 어떤 상품과 교환할 수 있도록 설정한 실험이 있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이 포상 점수 제도는 효과를 발휘했다. 이 제대롤 도입했을 때 아이들은 수학 게임을 더 많이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에서 보자면 이 제도는 실패했다. 이 제도를 없애고 나자 아이들은 그 제도를 도입하기 전보다 수학 게임을 더 적게 하게 됐기 때문이다. 원래 흥미롭고 재미있었던 일이 점수를 따기 위해서 하는 따분한 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5. 시야의 열쇠 구멍 넓히기

 

p.212: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400년 전에 이미 확증편향의 원천을 설명했다.

 

사람은 일단 어떤 의견을 가지고 나면 이 의견을 찬동하거나 뒷받침하는 모든 것을 찾아서 이 의견에 마구 갖다 붙인다. 그리고 그 의견과 반대되는 주장이나 사례가 아무리 많고 또 중요하더라도 그저 무시하고 경멸하거나, 몇 가지 차이점을 들어서 그런 것들을 기각하거나 제쳐놓는다. 목적은 단 하나, 이 거대하고 치명적인 선입견을 무기로 삼아서 이미 내려져 있는 권위를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p.217: 지혜로운 사람이 내리는 판단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이 편견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법을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꾸준하게 실천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다만, 판단의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으며, 자기가 지지하는 견해나 제안에 문제를 제기하는 정보를 의식적으로 찾을 필요가 있다. 특히 그 견해나 제안이 자기 견해나 취향과 딱 들어맞을 때는 더 그렇다. 예를 들어 '채식을 하면 과연 건강이 좋아질까?' 같은 질문을 받을 때 당신은 건강한 채식주의자를 떠올리려고 할 것이다. 특히 당신이 채식주의자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채식주의자도 생각해보고자 노력해야 한다. 통계학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끌어내려면 건강하지 않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건강한 채식주의자의 비율이 채식주의자라는 울타리 밖에서 건강하지 않은 사람 대비 건강한 사람의 비율보다 높은지 따져보아야 한다.

 

p.218: 수백 년 동안 가톨릭 교회는 어떤 순교자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는 결정을 할 때 이런 절차를 채택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1587년에 신앙촉구관(promotor fidei)을 임명했는데, 이 사람이 하는 역할은 후보자의 특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즉, 해당 후보자가 신앙과 인류에 기여한 정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후보자가 수행했다고 이야기되는 기적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어떤 사안에 대해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도록 하는 이른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을 설정하는 것은 현명한 방책이다.

 

p.221: 잡지 <디스커버>가 비행기 승객은 비행기에 탈 때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하며, 비상착륙이라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탈출할지 예행연습을 해야 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은 적이 있다. 왜 그래야 할까?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비행기 추락 사고나 불시착 사고를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 가운데 90퍼센트가 사고가 나기 전에 비상구를 통해서 탈출하는 경로를 머릿속에 입력해두고 있었다는 연구가 이미 그전에 나와 있었다.

 

90퍼센트라는 통계수치가 매우 인상적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떠오른다. 여기에는 당시 그 비행기 사고에서 사망한 사람들에게는 비상구를 통해서 탈출하는 경로를 머릿속에 입력해두고 있었는지 어쨌는지 물어보지 못했다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망자 가운데서도 90퍼센트가 그런 내용을 분명하게 기억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비행기 승객이라면 누구나 승무원으로부터 그런 정보를 듣게 되어 있지 않은가?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지만, 사망자 가운데서 90퍼센트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죽음을 더 많이 불렀다는 뜻이 된다.

 

p.224: 세상에 미신이 많은 이유는 이용 가능한 정보가 불균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꿈을 꾼 직후에 그 사람이 죽었다면, 그 꿈은 확실히 또렷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어떤 꿈을 꿨는데 현실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 꿈은 금방 잊힌다. 꿈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믿음도 그렇다.

 

p.228: 중요한 정보가 눈에 보이지 않도록 숨겨두는 또 하나의 보편적인 사회적 현상이 있는데, 행동과학자는 이것을 '다원적 무지(pluralistic ignorance; 다수의 무지)'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행동하는 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내릴 부정적인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해서 자기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감정, 즉 본심을 숨길 때마다 나타난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생각과 겉으로 드러나는 공개적인 행동 사이에는 틈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틈은 잘못된 기준을 한층 더 강화하고, 따라서 개인이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기가 한층 더 어려워진다. 이렇게 해서 집단 전체는 개별 구성원이 실제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남는다.

 

... 다원적 무지는 직업적 피로도를 인식하는 데에도 작동한다. 사람들은 남들이 볼 때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를 별다른 스트레스나 회의감 없이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비칠 때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직무에 대한 회의감이나 어려움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문제가 있다고 느끼게 된다. 즉, 자기는 다른 동료들만큼 직무를 잘 해내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직무의 스트레스를 한층 더 높이고, 결국에 가서는 자기가 그 직무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기에 이른다.

 

p.233: 획일적인 생각을 몰고 오는 이 두 가지 원천에 맞서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단순한 가르침이 준비되어 있다. 첫째, 자기 검열과 맞서 싸우려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걸 말해봅시다"라는 말로 회의를 시작해선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을 오히려 막아버린다. 참석자에게 각자 논의해야 할 사항을 쪽지에 적게 하고 이걸 모두 모은 뒤에 누군가 한 사람이 큰 소리로 읽는 게 훨씬 낫다. 이렇게 해서 제시된 사실, 선택 사항, 고려 사항 등을 놓고 토론을 벌이면 문제를 한층 입체적으로 다룰 수 있고 논의가 더 풍부한 정보로 채워진다. 또 전체를 소그룹으로 나누어서 논의를 진행하고, 이 논의의 성과를 공유하면 토론을 설익은 채로 좁은 범위에 가두는 오류를 피할 수 있다.

 

둘째,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지식 효과(knowledge effect: 배경지식이 상황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를 극복하는 일은 한층 더 어렵다. 사람들이 각자 감추고 있는 정보가 결국 나올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고 회의를 장시간 하는 방안도 시도됐지만, 이 방법도 도움이 되지 않음이 밝혀졌다. 다양성이 발현될 가능성을 키우겠다는 의도로 회의나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의 수를 늘리는 방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전문가를 논의에 참여시키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때도 각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정보(즉, 숨어 있는 정보)를 찾아서 내놓도록 함으로써 전문적인 지식과 다양한 견해가 한자리에 놓이도록 할 때만 최대의 효과가 발휘될 수 있다.

 

6. 이 방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인가

 

p.249: 부가 사실은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는 상대적인 크기라는 사실에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문예비평가 헨리 루이스 멩켄은 이런 점을 잘 포착해서 부를 "아내의 여동생의 남편보다 적어도 100달러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부유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정의했다.

 

p.255: [정점과 종점 규칙(peak-end rule)]

심리학 연구 결과는 여행의 양과 질 사이의 선택에 대해서 명백한 해답을 제시하는데, 바로 '기간은 짧아도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최고'라는 것이다. 2주라는 긴 기간이었지만 집에 돌아왔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지 않는 휴가였다면, 평소의 휴가와 달랐다는 느낌을 전혀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면 곧바로 해변이 펼쳐져 있어 상쾌한 바닷바람을 들이마시던 일, 저녁에 일몰을 배경으로 느긋하게 산책하면서 느끼던 기분, 럼주 칵테일을 홀짝이면서 라이브로 음악을 들을 때의 기분, 그리고 한르에세 나팔리 해안의 풍경을 내려다볼 때의 기분, 이런 것들은 평생 가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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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회상할 때, 그게 고통이었든 즐거움이었든 간에 오랜 기간 기억에 남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는 대개 절정의 순간과 마지막 순간의 각인이다. 이런 발상을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는 소설 <불멸(Immortality)>에서 다음과 같이 한 줄로 멋지게 포착했다. "기억은 영화가 아니라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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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쾌락을 관리하는 데 응용할 때의 교훈은 명백하다. 예를 들어 휴가 계획을 세울 때는 더 높은 품질의 경험을 누릴 수 있다면, 그 대가로 여행 기간을 짧게 잡아도 손해를 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만일 휴가의 최고 이벤트를 마지막 날 잡는다면 금상첨화라는 것이다.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적어도 빠듯한 비행기 시간에 맞추려고 허겁지겁 뛰어다닐 게 아니라 여행의 마지막을 유쾌하고 즐거운 일정으로 잡아야 한다. 예를 들면 일몰을 바라본다든가 멋진 브런치를 즐긴다든가 하는 식으로. 마찬가지 이유로 유쾌하지 않은 잡일을 할 때는 가장 힘들고 지루한 일을 맨 나중으로 미룰 게 아니라 먼저 해치워버리는 게 낫다. 마지막 일을 그래도 조금은 즐거울 수 있는 일로 배정하면 좋을 것이다.

 

p.260: 경험 구매는 남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서, 마음에 품고 있는 기억 속에서, 개인적인 성취감이나 한층 고양된 자기 정체성 속에서 기쁨이 지속될 뿐만 아니라 한층 커진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험프리 보가트는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대사를 건넨다.

 

"우리는 앞으로 언제나 파리를 함께 가지고 있을 거야."

 

경험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 남지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나쁜 요소들은 지워지고 좋은 요소들은 더욱 아름답게 포장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캠핑 여행을 갔다고 하자. 그런데 낮부터 시작된 비가 밤새 내렸으며, 싸 가지고 간 음식은 곰이 몽땅 먹어치워 버렸고, 멀지 않은 곳에 텐트를 친 커플은 밤새 악을 써가며 싸웠다. 하지만 이 여행은 시간이 흐른 뒤에 '지옥 같은 캠핑'이 아니라 '지옥 같았지만 유쾌했던 캠핑'으로 기억된다.

 

경험 구매가 물질 구매보다 더 지속적인 만족을 주는 것은 기억의 따뜻함이나 적응에서의 차이만이 아니다. 비교에 의해 기쁨이 줄어드는 일이 경험 구매에서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과 비교할 때 또는 내가 예전에 샀던 물건과 지금 팔리고 있는 물건을 비교할 때는 기쁨이나 만족이 줄어들 수 있지만, 좋았던 경험의 기쁨이나 만족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신제품 노트북을 샀다고 하자. 그런데 포장을 뜯자마자 당신이 아는 사람이 같은 가격으로 프로세서 속도도 더 빠르고 램 용량도 더 크고 해상도도 더 좋은 노트북을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얼마나 짜증이 날까? 다른 사람이, 특히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자기를 능가한다는 사실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또 그 신제품 노트북을 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비슷하거나 더 싼 가격에 더 좋은 노트북을 판다는 광고를 당신은 틀림없이 보게 된다. 이때 당신은 좀 더 기다렸다가 살 걸 그랬다고 후회를 하게 된다.

 

하지만 노트북을 살 돈으로 바닷가 여행을 갔다고 해보자. 날씨는 맑고, 그 동네에서 만난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하고 친근하다. 함께 간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누며, 모처럼 주어진 재충전의 시간을 만끽한다. 그런데 이렇게 휴가를 다녀온 뒤에, 지인 중 한 명이 같은 바닷가로 여행을 갔다 왔는데 그가 갔을 때는 날씨가 더 좋았고 더 좋은 호텔에서 더 멋진 요리를 먹고서도 당신보다 적은 비용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하자. 또는 여행사의 광고를 보고 당신이 지출했던 비용보다 싼 비용으로 그 여행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됐다고 하자. 여기에 대해서 당신은 얼마나 짜증이 날까? 짜증이 나긴 하더라도 노트북을 산 뒤의 경험만큼 짜증스럽진 않을 것이다. 당신은 노트북을 환불하고 싶다거나 당신이 미워하는 사람이 산 노트북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당신이 했던 여행의 경험을 다른 사람의 경험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p.263: 경험은 또한 더 지속적인 만족을 가져다주는 경향이 있는데, 경험이 사회적인 관계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경험을 자기 혼자만 가지고 있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 친구와 함께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하며, 취미가 같은 사람들끼리 콘서트를 보러 가고 하이킹을 가고 스포츠를 즐긴다. 심지어 혼자 식사를 하거나 혼자 여행을 한다 하더라도 이때의 경험을 곧바로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며 공유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물건보다 자기가 경험한 바를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이 공유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할 때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모두 즐겁다.

 

p.266: 우리 인간은 무언가 활동적인 것을 하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해지는 '활동적이고 목표지향적인 동물'이다. 루스벨트는 지혜의 이 중요한 요소를 포착하고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아들들에게도 끊임없이 "행동하라"라는 말을 했다. 심리학자이자 저명한 행복 연구가인 데이비드 리켄(David Lykken)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를 따듯하게 맞아주리라고 또 개인적인 행복을 한 차원 높여주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행동 대부분이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며, 또한 대개는 유용한 결과를 낳는 건설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어떤 행동을 하고 거기에 완벽하게 빠져듦으로써 기분 좋은 느낌을 경험할 수 있는 몰입 상태(flow state)는 행복을 주제로 하는 여러 과학 서적들에서도 주목했다. 행동을 취하지 않고서는 몰입 상태에 들어갈 수 없다. 이때의 행동은 굳이 정원을 손질한다든가 등산을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육체적인 활동이 아니어도 된다. 앉아서 하는 활동인 독서와 텔레비전 시청 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생각해보자. 육체적인 활동이든 지적인 활동이든 예술적인 활동이든, 적당하게 요령을 피우는 게 아니라 완전히 빠져들어 세상일에 역동적으로 끼어들 때 행복으로 가는 열쇠를 손에 쥐게 된다.

 

p.269: "기대가 축적되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이 촉진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탐구하고 획득하고 사용해서 '무지막지한 운명이 가져다주는 뼈아픈 시련'을 회피하고자 하는 충동은 진화라는 개념을 이치에 맞게 만든다. 학습을 통해서 어떤 신기한 것을 통달할 때의 기분 좋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푹신한 소파에서 일어나 모험이 넘치는 실외로 나아가게 하려고 뇌에 바치는 뇌물이다."

 

이것이 바로 '인생은 여행이지 목적지가 아니다'라는 흔한 인용구 뒤에 숨어 있는 심리학적 원리다. 진화라는 과정은 행동하면서 세상을 학습하는 것에 쾌락적인 보상을 해왔다. 행복을 증진하는 것은 곧 애써 노력하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는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인 보상을 얻거나 명예로운 호칭을 부여받는 것은 변변찮은 대체물일 뿐이다. 이 역시 쾌락의 쳇바퀴에 숨어 있는 심리적 원리다. 무언가를 획득하는 것은 만족스러운 일이지만, 획득물 또는 성취 그 자체는 빠르게 낡아 뒷전으로 밀려나며, 새로운 목표와 새로운 영역에 눈을 돌리고 도전하는 데 그다지 큰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일찍이 셰익스피어도 "얻은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기쁨의 본질은 그 과정에 있으므로"라고 말했다.

 

 

p.282: [행복에 관한 여러 지혜]

  • 같은 가격이라 하더라도 물건 자체를 구매하는 것보다 경험을 구매하는 것에 좀 더 비중을 둬라.
  • 즐거움이든 고통이든, 어떤 경험을 할 때는 감정이 최고조로 올라가는 지점과 그 경험이 끝나는 지점에 신경 써라.
  • 우울할 때는 소파에 드러누워 있지 말고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라. 물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행동이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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