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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기술 One Art, 엘리자베스 비숍

지구빵집 2021. 6. 30.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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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기술 One Art, 엘리자베스 비숍 

 

상실이란 그 자체로 고통일 수밖에 없다. 비숍은 더 많이 떠 빨리 잃어보라고 권하지만, 사실 무언가를 읽는다는 자체가 매우 부당하고 힘든 일이다. 비숍은 삶 자체가 상실이라고 한다. 흔히 돌아가신 분 장례를 치른 후 3일째가 되는 날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임종한 날로부터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의식은 49제, 사십구재(四十九齋)다. 이런 의식은 비단 죽은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산 사람이 충분히 슬퍼하며, 고인을 기억하고 슬퍼하는 과정에서, 사람을 놓아 보내며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한다. 산 사람을 위한 상실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애도 작업'이라고 한다.

 

상실을 피할 수 없는 인간이라면 상실의 순간에 더 많이 슬퍼하고 충분히 기억하게 될 때 비로소 상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 눈물이 되었든, 술이 되었든 충분히 아파하라는 이야기다. 무엇으로든 충분히 기억하고 소모하고 분비하고 내뱉는다면 산 사람은 가벼워지니 사는 데 도움이 된다. ㅅㅂ.

 

잊기 위해 기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충분히 기록하고 글로 남기면 잊고 지내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영화 <엘리자베스 비숍의 연인>은 비숍이 브라질에서 거주한 15년에 초점을 둔다. 비숍이 그곳에서 동성연인인 로타를 만나 함께 지냈다. 비숍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안정감과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비숍의 시처럼 그녀의 삶은 상실로 가득했다.

 

비숍은 어려서부터 자의와 상관없이 큰 상실을 경험한다. 생후 8개월 만에 건축가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다섯 살 때는 엄마가 정신병원으로 실려 간 후 다시 보지 못했다. 그녀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자라났지만 상실의 트라우마로 병약한 아이로 컸다. 이후에도 상실은 끝나지 않는다. 대학 때 사귄 남자는 청혼했다가 그녀에게 거절당한 뒤 자살하고, 그녀가 사랑했던 브라질 연인 로타는 우울증과 약물 중독으로 자살한다.

 

상실로 가득한 삶을 살았던 그녀가 천식, 우울증, 알콜중독 등에 시달린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비숍은 친구인 시인 로버트 로웰에게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묘비명을 써달라고 할 정도로 외로운 삶을 살았다. 그러니까 이 시에는 비숍이 경험한 모든 상실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이 시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 문 열쇠를 잃은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일 것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더 많이 잃고,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할 것

장소들, 이름들, 여행하려고 했던 곳들

그것들을 잃는다고 큰 불행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어머니의 시계를 잃어버렸고, 보라, 내가 사랑했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마지막에서 두 번째 집도 사라졌다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두 도시도 잃었다, 멋진 도시들과 내가 소유했던

더 넓은 영토들을, 두 개의 강과 하나의 대륙을

그것들이 그립긴 하지만, 그렇다고 재앙은 아니었다

 

설령 당신을 잃는다 해도(농담하던 목소리와

내가 사랑하는 몸짓을) 나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리라

상실의 기술은 분명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것이 당장은 불행이라고(그렇게 쓰라!) 여겨질지라도

 

- 엘리자베스 비숍 "한 가지 기술" (류시화 옮김) 

 

 

Elizabeth Bishop in Brazil, 1954. Credit...Estate of Elizabeth Bishop 이미지 출처: https://www.nytimes.com/2017/03/01/books/review/elizabeth-bishop-biography-miracle-for-breakfast-megan-marshall.html

 

참고  

A Former Student Approaches the Life of Elizabeth Bishop 사진의 출처이기도 

상실의 시대를 사는, 한 가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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