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내 인생 구하기, 동기부여는 운동처럼 계속하는 것.

지구빵집 2021. 12. 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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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구하기, 동기부여는 운동처럼 계속하는 것. 

 

유튜브에 나오는 동기부여나 부에 대한 영상을 발견하면 y2mate에서 영상의 공유 주소를 넣어 mp3 파일로 만들어 USB 메모리에 담아 운전 중에 듣는다. 마치 팟캐스트를 듣는 일처럼 한다. '내 인생 구하기'를 유튜브 '책 읽기 좋은 날' 채널에서 다운로드하여 들었다. 작가가 글을 참 잘 썼다.

 

운전하면서 듣는 내내 웃음이 나고(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인지), 쉼표가 많이 들어간 긴 문장의 구성은 탁월하다. 욕은 제대로 임팩트 있게 해야 효과가 있다. 동기부여는 운동이나 밥 먹는 것처럼 의식하지 않고 생각 없이 언제나 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야 집중을 잘할 수 있다. 다른 길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나를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내 인생 구하기입니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 '시작의 기술'의 저자 게리 비숍의 두 번째 최신작인데요.

 

"내 목표는 딱 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바로 당신 그게 전부다 당신이 이 책의 내용을 애인, 배우자, 아버지, 엄마, 친구, 상사, 전남편, 전 부인에게 적용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면 완전히 헛다리를 짚었다.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고 당신에 관한 책이다."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합니다. 사이사이 고민도 하고 유명하다는 책도 들춰보고 원대한 계획도 종종 세워 보지요. 하지만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이기고 말아요. 또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기 때문에, 누군가 믿음을 배신했기 때문에 신세를 망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듯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그 파괴적인 악순환이 정말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붙잡고 늘어진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요. 이 책은 인생이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는 것 같긴 한데 뭐가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좀 부정적인 인간이긴 하지' 싶다가도 정작 어떤 지점에서 자기 파괴적인 생각을 하는지, 어느 과정이 문제인지 끝내 발견하지 못한 채 몇 번 되짚어 보다 뭉개 버리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변화의 계기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기 수양이란 해야겠다고 말한 일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해보는 것

 

"내가 옳다고 느끼고 싶은 인간의 욕망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인생을 들여다보니 대부분은 썩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내가 어떤 노력을 하든 인생의 특정 영역에는 늘 어떤 불가피함이 있는 것 같았다. 불룩한 뱃살, 텅 빈 통장, 몇몇 인간관계, 젠장, 그동안 그렇게 부지런하게 일했는데 통장 잔액은 아직도 마이너스라고? 토니 로빈스 (라이브 코치로 임명 안 미국의 저술가 겸 강연가)처럼 개인용 헬리콥터, 제트기, 잠수함은 대체 언제 생기는 거야? 왜 제대로 된 변화를 한 번도 만들어 내지 못했을까?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늘 돈이 모이지 않는 걸까? 살 빼는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왜 늘 잠깐밖에 살을 빼지 못하는 걸까?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잘 되다가 망했다가 다시 잘되다가 망했다가를 반복하며 결국에는 출발했던 그 자리로 되돌아왔다. 심지어 오락가락을 반복하다가 출발점보다 더 뒤로 밀려난 적도 있었다. 계속해서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다는 것을 아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도 바보 천치는 아닌데 말이다. 뭘 잘못했는지 뻔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늘 하던 일들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 패턴을 멈추기에 나는 무력해 보였다.

 

젠장, 대체 이게 뭔......?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면서도, 뭔가가 나를 낚아챈 것처럼 늘 하던 대로 하고 있었다. 적자에 허덕이고 파괴적인 옛날의 행동으로 되돌아갔다. 여기서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당신 자신에게도 두 가지 질문을 해보라. 당신은 그 일을 왜 하는가? 자신에게 늘 내놓는 뻔한 답 말고, 더 깊이 들어가 보라. '생각'하라. 계속 이대로 산다면 어디로 갈 거 같은가 정말 어디로 갈 것 같은가?

 

미래에 대한 엉성한 개념 말고 땅에 발을 딛고 서서 지금 사는 대로 살면 당신은 어디에 이를지 생각해 보라. 어떤가? 답하기 힘든 질문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바로 이런 식으로 파고들어야만 자기 방해의 덫에서 풀려날 수 있다.

 

우리는 수백만 가지의 소소한 방법으로 자기 삶의 훼방을 놓기 일쑤다. 문제를 인지해야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자기 방해가 아주 파괴적인 행동을 낳기도 한다는 것 역시 제대로 알아야 한다. 자기 방해는 결혼 생활을 파탄내고, 가족들을 찢어놓고 술, 도박, 섹스 중독에 빠뜨리고, 바람을 피우게 만든다. 멀쩡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을 쓰레기로 만드는 온갖 유해한 행동을 유발한다.

 

당신만큼 당신의 인생을 처참하게 박살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그렇게 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바란다고 말하는 것과 정반대인 행동 패턴에 갇혀 있다. 근시안적 자기 대화와 뻔하디 뻔한 삶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행동 패턴에 발목 잡혀 있다. 삶이 제 궤도에 오른 것처럼 보일 때가 아무리 많았어도, 결국은 궤도를 벗어난다. 우리는 기껏 쌓아 올린 것을 무너뜨려 버린다.

 

그렇다. 당신에게는 미룰 수 있는 일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삶을 다시 제 궤도에 올릴 방법을 찾다가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지력 내지는 수양 내지는 다른 무엇(정신력은 언급조차 하고 싶지 않다.... 웩)이라고 했다. 이런 용어들은 내 삶에서 진짜 변화가 결여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나 도움이 될 뿐인데 말이다. 의지력이 대체 뭐란 말인가 느낌? 감정? 기분? 수양은 또 뭔가? 생각인가? 행동인가? 아니면 이것도 느낌인가? 어디 자동차 뒤꽁무니에나 붙일 표어 같은 답은 내놓지 마라. 생각을 좀 하라.

 

우리는 한번 의문을 가져보지 더 않고 이런 류의 말들을 사용한다. 당신 인생의 진짜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 그런 식의 얄팍한 사고로 스스로에게 이유를 댄다면 눈곱만큼의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당신의 뒤로 미루는 성향을 극복하려면 자기 수양 같은 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지금 알았다고 해서 실제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여전히 그 자리에 갇혀 있다. "아하, 작가 양반 그래도 나는 그 자기 수양 책을 샀답니다 그 책을 읽을 거예요...... 다음 주에."

 

그렇다. 당신에게 미룰 일이 하나 더 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패턴은 계속 반복된다. 만약 당신의 앎이 아무런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당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게 실제로 아는 게 아닐 것이다. 자기 수양이란 스스로 하겠다고 말한 일을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을 때조차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조차 긍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때 행동이란 행동하는 척이 아니다. 그러니 만약 에너지가 솟거나 긍정적 기분이 들거나 열정이 생길 때까지 혹은 당신의 차크라(요가에서 말하는 신체 에너지가 모이는 곳)가 선명한 노란색으로 빛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면 그렇게 실컷 기다려라. 아주 긴 기다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떨까? 오히려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면?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애초에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 따위는 없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설명에 동원되는 용어에 불과하다.

 

정말 존재하는 것은 가끔씩 특정한 일과 관련해서 할 일을 미루는 누군가다. 누군가 가끔 똥을 싼다. 하지만 스스로를 '똥싸개'라고 부르지는 않지 않는가? 따라서 "나는 할 일을 뒤로 미루는 사람이에요."라고 말할게 아니라 "나는 할 일을 뒤로 미뤄요."라고 말해야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게 당신이 하는 행동에 불과하다면, 다른 행동을 하면 된다. 이것은 건강상의 특징이나 질병 내지는 당신이 갖고 있는 무언가가 아니다. 망할 놈의 병이 아니다.

 

"더 이상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는 우리 자신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 빅터 프랭클

 

우리는 그냥 망한 걸까? 당신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으려고 끊임없이 씨름하고 있으나 그것들은 자꾸만 꿈틀꿈틀 빠져나가서 스르르 손에서 벗어나는 느낌이다. 틈날 때마다 다시 덤벼들지만 체중감량이든, 연애든, 커리어든 빛이 보이는 듯하다가도 금세 모든 게 무너져 내린다. 마치 '당신 자신'이라는 패턴의 갇혀 버린 듯하다. 익숙하고 되풀이되는 빌어먹을, 최악의 적이 다시 등장했다. 당신 자신 말이다. 모든 게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뻥! 당신이 수류탄을 투척해 버린다. 그러는 당신을 당신 자신도 멈출 수가 없다.

 

배우자랑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일고 여덟 마디만 주고받고 나면 갑자기 지옥이 펼쳐진다. 누구든 좀 나타나 트럭으로 이 똥 좀 치워줬으면 싶은 것이다. 그러다가 당신은 진정이 되고 상대도 진정이 된다. 그러고 나면 서로 웅얼거리듯이 사과의 말을 하고 피자를 시킨다. 상황은 해결되고 두 사람은 잊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잊지 않았다. 다음 사건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그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다음 사건 또 다음 사건. 이제 당신들은 화해의 피자를 주문하는데 한 달에 10만 원을 쓰고 있고, 당신들 엉덩이는 마트에서 사 온 에어매트리스 보다 더 빨리 부풀어 올라 펑퍼짐해진다. 이제는 그걸 갖고 싸운다.

 

그래서 당신은 마음을 다잡고 의지력과 자기 수양이라는 쌍둥이 악마를 다시 불러 낸다. 이번에는 조금 더 열심히 노력하고, 조금 더 신경 써서 먹고, 일주일 만에 운동장 두 개에 심을 만큼의 케일을 먹어치운다. 그런 다음 어느새 당신이 먹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피자가 다시 마법처럼 손가락 사이에 들려 있다. 페퍼로니와 치즈를 잔뜩 올린 피자 조각이 아무도 모르게 숨어든 도둑처럼 당신 입속으로 들어간다. 이제 문제는 피자가 됐고, 전선은 새롭게 형성된다.

 

한번 생각해 보라. 그 누구도 아닌 잠재의식 속 당신이 인생의 목표를 자기 방해와 회복의 반복으로 설정한다면, 하지만 당신의 삶이 지금 이렇게 된 것이 당신이 딱 맞는 사람을 못 만난 것, 딱 맞는 커리어나 열정을 찾지 못한 것, 용기나 자신감, 똑똑한 돌파구를 보유하지 못한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면 어떨까?

 

당신이 당신 자신에게 설명하는 그 어떤 이유와도 별 관련이 없다면, 당신의 삶이 실은 끈질기게 같은 결과를 내게 끔 꽤나 의도적이고 소름 끼치도록 친숙하게 설정된 장치라면, 그 대화의 덫에 집어넣은 사람이 바로 자신인데도 당신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고, 그래서 평생을 엉뚱한 곳만을 들여다보며 해답 같은 걸 찾고 있다면, 그런데 그 모든 것은 잠재의식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그 덫을 빠져나올 수 없다면?

 

"상상력과 의지력이 서로 충돌하고 적대적 일 때 이기는 쪽은 늘 상상력이다. 예외는 없다." 에밀 쿠에

 

19세기 심리학자 쿠에가 상상력이라고 말한 것이 실은 잠재의식이다. 그가 의지력이 라고 말한 것은 의식적이고 인지적인 사고다. 이 둘이 충돌하면 잠재의식이 이긴다. 언제나 이긴다. 잠재의식이 늘 이긴다면, 자기 방해와 회복이라는 똑같은 게임을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냥 망한 걸까? 물론 이 말이 처음에는 상당히 우울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인간이 어떻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바로 생존력 덕분이다.

 

살아남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

 

흔히들 믿는 바와는 정반대로 생존하는 것은 가장 강한 놈도, 가장 적합한 놈도, 가장 똑똑한 놈도 아니다. 그렇다면 살아남는 놈은 누구인가? 예견자다.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예견하는 놈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고 그래서 살아남는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예측과 생존의 명수라는 사실이다. 그게 바로 인간이라는 종이 여태까지 사라지지 않으니 유일한 이유다. 우리는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것을 예견한 덕분에 그에 맞춰 적응하고 안전을 확보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뭐가 좋은지 나쁜지 옳은지 그른지 효과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 끊임없이 점수를 매기고 기억한다. 잠재의식이라는 창고의 이 거대한 기억들을 저장해 두고 지침으로 삼는다.

 

당신은 앞서간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 평생을 걸어왔고, 만사가 흘러가는 곳으로 이끌어줄 익숙한 답안지를 찾으려 했으며, 익숙하게 봐온 삶을 따라 살았다. 월요일이 다 똑같게 느껴지는 이유는 월요일 아침이 오기도 전에 이미 하루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예측 지상주의는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 데이트에 변변치 않은 옷차림으로 약속 장소에 늦게 나타났던 그 사람이 생각나는가? 당신의 예측은 "음, 예의가 없군. 저런 사람과 평생을 산다고 상상해 봐 절대 안 되지. 잘 가세요." 그걸로 끝인가? 상대는 15분 늦게 나타났고 운동화를 신고 있었을 뿐인데 당신은 이미 결론이 났다고? 그렇다. 예측 능력은 생존 기회를 높여준다. 이 경우 당신은 결혼이나 장기적인 관계로 발전하기 전에 시간낭비 정신력 낭비에 불과한 사람들을 빨리 솎아내고 싶은 마음뿐이다.

 

당신은 연애를 예측하고, 주머니의 사정을 예측하고, 날씨를, 정치를, 건강을, 커리어를, 온갖 것을 예측한다. 그 모든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당신은 이미 생각을 갖고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기계적으로 잠재의식에 따라 뚝딱 만들어진다. 심지어 인생에는 당신이 이미 시간낭비라고 결론을 내리는 바람에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일들도 많다. '뻔하잖아.' 예측을 통해 살아남고 싶은 욕망 때문에 당신이 하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당신에게는 늘 쓰고 싶은 책이 있었다.

예측: 나는 집필에 관해 아는 게 없다. 그러니 분명 실패할 것이다.

 

차리고 싶은 회사가 있었다.

예측: 너무 위험하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발리로 이민 가고 싶은 꿈이 있었다.

예측: 지금은 때가 아니다. 돈을 더 벌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커리어를 갖고 싶었다.

예측: 언젠가는 그런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힘들 것이다.

 

완벽한 연애를 원했다.

예측: 같은 실수를 또 저지를 수는 없으니 딱 맞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안 된다.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무의식적 촉발제 때문에 당신이 지워버린 가능성의 목록은 끝이 없다.

 

"너무 어려워 안될 거야, 못해, 내가 아는 걸로는 부족해, 소용없어, 그래 봤자 달라지지 않을 거야."

 

생존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지긋지긋하고 쓸모없는 똑같은 해결책만 주야장천 가져다 쓰면서 비교적 안전하고 길게 사는 것만큼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을까? 당신만의 오래된 감정, 오래된 불평, 오래된 경험을 가지고 말이다. 그게 바로 당신의 현실 없는 현실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거지, 안 그래?" 아니다. 내일은 징그러울 만큼 오늘과 똑같은 날이다. 그러나 인간은 재미난 동물이어서 종종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우리는 흥분을 원한다. 모험을 원하고 열정을 원한다. 인간은 바로 그런 것들이 교차하는 지점에 존재한다. 삶을 예측해서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더 나은 존재를 약속하는 새롭고 유혹적인 미끼에 갈증을 느낀다.

 

안전하고 확실하고, 생존 가능한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변화를 바라고 욕망한다. 하지만 판단을 최소화하고, 실패를 최소화하고, 진짜 변화가 가져올 혼란과 불확실성과 고통을 짓누르고 싶다. 결국에는 안전이 이긴다. 승자는 생존이다. 이걸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것을 바라면서 익숙한 것에 중독된 상태, 익숙한 것이 구정물처럼 우중충 하더라도 말이다. 결국은 이미 아는 것을 얻기에 당신은 원하는 것을 기꺼이 내놓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좀처럼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어떤 덫에 걸렸는지 제대로 목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덫이 초래하는 결과를 감당하며 살아갈 뿐이다. 지금까지 당신의 인생 전체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똑같은 공기방울 속에 가두려는 행동의 연속이었다.

 

기억하라. 어떤 식으로든 정말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결과를 보고 싶다면, 당신 쪽에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려면 뻔하디 뻔한 잠재의식을 직면해야 한다. 익숙하기 그지없는 정서적 정지 화면을 깨고 나가야 한다. 미지의 것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할 수는 없다.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들이 당신의 갈길을 결정한다.

 

우리에게 훼방을 놓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 방해가 우리 인생에 좋은 것이란 좋은 것들은 모조리 전복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의도적인 전복이다. 전적으로 우리가 의도한 바다. 당신은 아마 자기 방해의 사례를 떠올려 보려고 당신 인생의 퀴퀴한 복도를 오갔던 사람들을 훑어볼지 모른다. 언제나 남의 쇠락을 가늠해 보기가 나의 쇠락을 가늠하기보다 훨씬 더 쉽다. 친척 중에 약물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으로 고생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도박과 놀음 빚 때문에 저축도 집도 모두 날리고 가족까지 잃은 옛 친구가 있을지도 모른다. 쓰레기 같은 음식을 폭식하다가 몸무게가 대책 없이 늘어나 이제는 정말 목숨까지 의 위험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30대나 40대까지도 엄마 아빠와 함께 살며 현실 세계에서의 독립이나 성취, 성장을 회피하고 온라인게임 정복과 인터넷 포르노로 도피하기를 선택한 조카가 있을지도 모른다. 젠장, 이 중에 몇 가지는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 분명한 자기 방해 사례다.

 

하지만 좀 덜 분명한 사례는 어떨까?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면서 당신은  "나는 뭐 그렇게까지 자기 방해를 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당신에게도 나름의 콤플렉스가 있고 나쁜 습관도 있다. 회사에서는 더 좋은 실적을 내고 싶고, 훌륭한 배우자를 찾고 싶고, 왼쪽 발목 구석에 그 튀어나온 부분도 밀어버리고 싶다. 당신에게는 책을 더 많이 잃고, tv는 좀 덜 보고, 더 날씬해지고 싶은 목표가 있다. 하지만 들어보라. 내가 말하는 자기 방해란 저 사례들처럼 노골적인 경우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기 방해는 하루에도 사소한 방식으로 수 없이 일어난다.

 

자기 방해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시도 때도 없이 늘 자기 방해를 저지르고 있다. 아주 간단한 일, 예컨대 아침에 알람이 울리는 데도 계속해서 알람을 끄고 일어나지 않는 것도 자기 방해다. 항상 약속 장소에 약간 늦게 나타나는 것 역시 자기 방해다. 많이 늦지는 않아서 큰 문제로 비화하지는 않지만 되는대로 신발을 꿰차고 신발 끈도 묶지 않은 채 달려 나가 약속 시간보다 5분이나 10분 늦게 도착하지 않았는가? 이따금 아침을 건너뛰고 초코바로 대신하는 것도 자기 방해다. 늘 고질병처럼 질질 끌다가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어떻게든 일을 끝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끝내긴 끝냈으니 그 일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는다. 하지만 늘 벼랑 끝에 선 기분 아닌가? 그렇게 사는 게 당신은 어떤가?

 

인간관계에서도 아마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우고 오랫동안 앙금을 풀지 않고 감정을 숨기거나 당신의 감정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자기와 남들에게 가혹한 평가를 내리기도 하고 엄마, 아빠, 친구에게 마땅히 해야 할 만큼 자주 전화를 걸지 않을 수도 있다. 이건 자기 방해가 아닌 게 확실한가? 솔직히 말하면 이런 게 모두 인간관계를 약화하는 행동들이다. 이런 행동은 가장 아끼는 사람들과의 건강한 유대 관계를 조금씩 조금씩 좀 먹고 흔들리게 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그들에게 외면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는 아끼는 사람들과 단절된다. 그러면서도 내가 정당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정말로 정당할까? 내가 옳다고 느끼고 싶은 인간의 욕망보다 더 치명적인 것은 없다. 이런 행동이 어떻게 자기 방해가 아니란 말인가? 정반대의 경우로 미래의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겠다는 난해한 생각 끝에 충동적으로 바람을 피우거나 이혼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은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며 강박적으로 질투심을 불태우고 불만과 단절을 만들어내 인간관계를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 버리는 사람도 있다. 어쩌면 당신도 이런 일을 저질러 보았을지 모른다. 결과가 어땠는가?

 

자기실현적 예언(예언을 하고 나서 거기에 맞춰 행동함으로써 실제로 예언이 이루어지는 듯 보이는 현상)이라는 것은 생각만큼 불가사의하거나 멋진 일이 아니다. 자기실현적 예언은 때로 인간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붕괴시키기도 한다. 치과 예약을 한번 건너뛰고, 운동 계획을 미루고,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더 먹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그게 그렇지가 않다. 만약에 그게 더 큰 계획의 일부라면 어떨까? 그리고 당신은 적어도 의식적으로는 그 계획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자기 방해라는 것은 더 큰 무언가의 산물이고, 당신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마음이 만들어 놓은 덫을 빠져나오는 사람이 그토록 적은 데는 이유가 있다. 하루하루 살다 보면 이 덫이 그냥 괜찮아 보이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 인생 구하기 책 내용의 일부를 옮긴다.)

 

 

 

내 인생 구하기, 동기부여는 운동처럼 계속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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