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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 - 만해 한용운 시

지구빵집 2022. 5. 8.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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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 그러라고 해서 그런다. 지금은 양광모의 '한번은 詩처럼 살아야 한다'를 두고 잔다. 오랜만에 맘에 드는 시를 알았다. 한용운 시인의 '쾌락'이란 시다. 한용운 시에서 당신, 그대, 님이 의미하는 게 조국이라고 배웠다. 아름다운 언어와 절제된 단어, 선을 넘지 않는 욕망으로 무생물에게, 개념이나 관념에 의미를 부여하고 마치 살아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처럼 시를 쓴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좋아하는 책, 강아지, 고양이, 책상, 달리기, 술 같은 것들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서 한용운의 시가 나올 것 같은가? 꾸며서 치장하고 화장하고 변장을 해서라도 그런 시가 나올까? 블랙 스완이 언제든 나타나도 가장 먼저 발견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쾌락

 

한용운

 

님이여 당신은 나를 당신 계신 때처럼 잘 있는 줄로 아십니까

그러면 당신은 나를 아신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나를 두고 멀리 가신 뒤로는 나는 기쁨이라고는 달도 없는 가을 하늘에 외기러기 발자취만큼도 없습니다

 

거울을 볼 때에 절로 오던 웃음도 오지 않습니다

꽃나무를 심고 물 주고 북돋우던 일도 아니합니다

고요한 달그림자가 소리없이 걸어와서 엷은 창에 소곤거리는 소리도 듣기 싫습니다

가물고 더운 여름 하늘에 소낙비가 지나간 뒤에 산모롱이의 작은 숲에서 나는 서늘한 맛도 달지 않습니다

동무도 없고 노리개도 없습니다

 

나는 당신 가신 뒤에 이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쾌락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따금 실컷 우는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 수감 시절의 한용운의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출처 : 미디어 붓 mediaboot(http://www.mediaboot.co.kr)

 

 

http://ichn.co.kr/jjt/15

 

 

 

참고

한용운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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