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우리는 무엇인가 뒤에 남긴 것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지구빵집 2022. 8. 4.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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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는 꼭 지키고 싶던 것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벚꽃 날리는 주말 농장, 목공을 배워 만든 좌탁, 살아온 세상 다 들어 있는 부품 박스, 짧지만 집중하며 대화하는 시간 같은 것들, 이제는 다 잊어버렸다. 남자는 늘 새로운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잊히는 것들이 싫었고, 가지고 있어 봐야 파도처럼 항해를 느리게 만드는 것들, 기억같이 아무런 힘도 없는 것들까지 전부 버리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작든 크든 변화를 환영하고 변하는 것들과 함께 지내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실패와 변화를 마주하는 두려움은 두려워하고 피해야 할 게 아니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은 늘 뒤에 남겨진 것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허공에 뿌려진 씨앗으로부터, 숲 속의 관목과 낙엽에서, 지난 기억을 발판으로, 무엇이 되었든 뒤에 남겨진 것들,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전혀 쓸모없이 되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우린 앞으로 나아간다. 깊고 푸른 강물이 이전에 흐르던 물을 밀어내니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고, 하늘 높이 치솟는 분수의 물줄기는 한 번도 같은 모양을 보여준 적은 없다. 아무리 같은 시간을 날마다 보낸다고 해도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날은 없다.

 

우리는 품격 있는 사람이라서 언제나 왕처럼 대접받거나 왕처럼 행동했고,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탁월해서 모든 일을 완벽하게 했다. 이게 문제였다.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 되었고, 원래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은 예외 없이 구질구질하다는 것을 받아들였어야 했다. 사랑은 언제나 완벽하게 참혹한 모습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누구나 시작할 때는 결말을 예측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떻게 끝날 지 모르는 삶은 늘 아름답다. 남자는 언제나 예측하지 않으려고 했다. 

 

5학기째 머물던 IC PBL 준비실을 떠나 사업단 사무실로 옮겨야 하고, 아이들 작품과 개인 짐을 구분해 가져 갈 것과 남길 짐을 정리해야 하고, 외주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개발이 완료된 러닝 시스템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야 한다. 변화는 좋은 것이라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남자는 조금은 엉망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삶을 인정하기로 하고 좀 더 여유 있게 지켜보기로 한다. 사람은 깨달을 때가 되어야, 적당히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인 뒤에 깨닫기도 한다. 여자가 살림을 현저하게 소홀히 하거나 스스로 가진 판단 기준에 따라 어리숙한 행동을 해도 괜히 시비를 걸지 않기로 한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일에서는 관심도 없고 잘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항상 남겨진 집안일과 B급들이 만들어 내는 무거운 분위기를 온전히 감당하기로 한다. 남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포기한다거나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모두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남자는 어제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로 결심했다. 지난날보다 더 변화하고 더 성장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남자가 갖고 싶은 것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여자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아들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스스로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이 되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남자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전보다 더 나아지는 게 무엇인지, 무엇인가 뒤에 버린 것으로 성장하는 게 어떤 의미인지, 스스로 아주 조금씩 눈에 띄지 않아도 삶이 나아진다는 것이 어떤 기분인지 잘 아는 사람이다. 그 기분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남자의 정원에 활짝 핀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모두 11그루인가 12그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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