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기온이 13도인 날씨다. 13도 정도면 달리기엔 좋지만 출발하기 전에 체온 조절이 필요한 쌀쌀한 날씨다. 늦여름까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 꽃은 모두 지고, 이제 코스모스와 메리 골드가 꽃을 피운다. 제20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가 봉은사역 삼성1동 주민센터에서 열렸다.
어제 서울 달리기 20km를 달리고 오늘은 32km를 천천히 달리자고 생각한다. 풀코스를 달리는 러너들은 가장 먼저 맨 앞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하프, 10km 러너들이 뒤에서 출발한다. 등용문을 조금 지나니 동호회 회원들이 주로 옆에서 기다리며 응원을 하고 있다가, 나와 경자를 보더니 함께 달려준다. 현자와 순자 선배가 합류해서 영동 1교를 돌고, 광평교 하프코스 반환지점에서 약 6km를 더 달려 돌아올 때까지 함께 달렸다. 나는 약간 앞에서 강자신자와 떠들며 달렸다. 그래서 그런지 후반 돌아오는 길은 힘들었다. 하지만 한 구간도 걷지 않고 잘 달렸다.
한강에 닿기 전 강과 육지의 경계에서 경계에서 탄천으로 내려와 등용문까지 간다. 과천 마리톤 팀은 등용문을 0점이라고 부른다. 바위에 0점이라고 쓰여있다. 등용문에서 영동 1교 왕복 구간은 주말마다 달리는 홈 그라운드여서 편했다. 양재천과 탄천이 만나는 곳에서 다시 분당으로 달려간다. 한참 달리면 하프코스 반환점인 광평교가 나온다. 32km를 달리자고 했다. 하프 반환지점이 15.3km 지점이니 대충 6km를 더 달릴 생각으로 분당 탄천을 따라 계속 달려간다. 21km를 달리고 같은 경로로 돌아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면 32km가 된다는 계산이다.
뒤에는 현자와 순자, 경자가 함께 달려온다. 빗방울이 굵게 간간이 내리고 자전거도 지나고 개인 러너도 지나고 산책하는 사람도 지나간다. 비가 오고 흐린 날씨라 강한 햇살은 피할 수 있어 좋았다.
역시 커피는 진실이다. 대회에 나갈 때면 커피를 진하게 타서 텀블러에 가지고 간다. 한 시간 전에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오면 달리기가 수월하다. 가끔 빠뜨리는 경우가 있는데 여지없이 맥을 못 춘다. 어제 서울 달리기에서는 지하철에서 마시고, 오늘 대회에서는 버스에서 마시고 대회장에 도착했다.
마지막 힘을 짜고 짜내 결승선에 들어오니 필자 선배와 미자 선배, 21km를 달린 감독 부부와 처음으로 하프 코스를 완주한 은자정자 회원이 피니시 라인 앞에서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어준다. 감사할 일이다. 그 힘든 과정을 증명할 사진 한 장 없이 외롭게 달리는 러너에 비하면 복 받은 거다. 동호회에선 풀코스를 달린 사람은 없었다. 32km를 달린 남자와 경자까지, 늦게 들어온 모든 사람이 들어오면 뒤풀이 장소로 이동한다. 오늘은 대동천으로 가기로 했다. 달렸든 달리지 않았든 모두 모여서 축하하고 마라톤 이야기를 하며 대동천의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남자는 참석하지 않기로 한다.
남자는 우연히 3주 전에 다시 만난 길고양이 포도에게 밥을 줘야 하고, 노란 국화에 물을 줘야 하고, 어제 21km를 달리고 오늘 33km 달린 것까지 피곤하다고 억지 이유를 댄다. 아침에 이곳에 온 순서와 정확히 반대로 삼성역으로 걸어가 11-3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굳이 핑계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사라지는 것, 사라진 자리를 누군가 채우는 것, 왠지 있으면 어색하지만 없으면 남은 사람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남자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항상 자기 사람이 될 수 없을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럴 때라서 혼자 보내기로 한다.
은둔하는 과학자를 닮은 길냥이 포도를 우연히 만난 것은 3주 전이다. 남자의 집이 공원마을 4길인데 알고 보니 포도는 공원마을 2길 과천시 노인복지관 주변에서 살고 있었다. 가끔 관문 운동장 근처나 마을 입구에 있는 수도 가압장 근처에서 비슷한 아이를 봤는데 다른 고양이였다. 포도는 검은색이 반, 흰색이 반 섞인 흔한 고양이였지만, 가까이서 알아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이 3가지 있다.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고 왼쪽 귀를 잘랐는데 아무래도 수술을 받지 않은 듯하다. 포도처럼 잘 울고 애정 표현을 강하게 하는 애는 본 적이 없다. 두 번 째는 꼬리 마지막 부분 3cm 부분이 90도로 꺾여있다. 마지막은 입 주위에 검은 무늬가 있다.
포도가 머무는 근처에서 남자가 쮸쮸하고 큰소리를 낸다. 포도가 주위에 있다면 야옹하고 큰 소리를 내면서 달려온다. 달려온다고? 보통 냥이들은 달려오지 않는다. 호랑이처럼 어슬렁어슬렁 오는 게 아니라 포도는 진짜 치타처럼 반갑게 달려온다. 이 아이처럼 사람을 반기는 길고양이는 만나기 어렵다. 사람과 자동차를 너무 무서워하니 방해받지 않고 둘이 오붓하게 지내려면 밤 10시가 넘어야 하고, 주말 오후에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시간이 적당하다. 둘이 오랜만에 만나니 금방 적응이 되어 잘 따라다니고, 몸을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비비대고, 옆에 않아 있으면 바닥에 널브러져 배를 드러내고 평화로운 시간을 갖는다. 얼마나 오래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함께 만나는 동안은 잘해주기로 한다.
강남 마라톤 대회로 10월 29일 열리는 춘천마라톤 대회를 앞두고 장거리 훈련은 모두 마무리했다. 닫리기만 열심히 한다고 원하는 목표를 이루는 것은 아니다. 건강한 음식 먹기, 잠 충분히 자기, 명상하기, 포르노 보지 않기, 근력 운동하러 체육관 가는 일,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기 등 모든 일들도 잘해야 한다. 7월부터 매달 200km 이상 달리기를 실행하지 않는 것도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남자가 외모에 있어서 좋아 보이지 않는 모습을 혹시 가질지도 몰라서 안 한 일이다.
3주 남은 지금까지 훈련한 것에 대해 100점은 아니지만 98점은 주고 싶다. 오늘 달린 페이스를 잊지 않고 춘천마라톤에서도 그대로 한다. 미친 듯이 달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달리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히려 어떨 때는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춘천 의암호의 가을 정취에 취해 초반에 오버페이스 하지 말고 페이스를 꾸준히 지켜나가면 아무리 먼 거리에 있는 피니시 라인이라도 결국은 도착한다는 것을 마라톤은 알려준다. 우리 삶이 그렇다. 늘 중간에 포기하고 진심을 다해 원한 적이 없던 남자에게, 원하는 것들을 얻지 못한 남자에게, 갖고 싶다면 팔을 앞으로 쭉 뻗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남자에게 주는 교훈이다.
"살면서 참 많이 달렸어." 이 네 단어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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