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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러너스

다시 쓴 안산 마라톤 참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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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쓰는 습관을 벗어나자고 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 글쓰기는 자기 연민의 과정을 밟아 치유 혹은 사고의 궤적을 따르게 해 준다. 거기서 멈추면 더 이상 발전이 없다. 때론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야 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이 되는 글로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유명한 카피라이터도 다 그런 과정을 거쳤다. 

 

군더더기가 없어도 너무 없는 글, 빠른 속도감은 있지만 전부 우연으로 만들어 버리는 글, 함께 이해하는 게 아니라 혼자 이해한 글을 쓰는 일을 멈추고 싶다. 아래는 이전에 올린 '지평선과 수평선이 함께 맞닿은 곳을 달리다. 안산 마라톤 참가' 글을 카페에 올린 시점에 수정하여 다시 쓴다. 오감을 느끼게 하는 글이라 마음에 들지만 대회장 풍경도 빠졌고, 재미있는 낚시 이야기도 빠졌다. 주장이 많다. 한 가지에 집착한다. 다시 쓰니 보기에, 입맛에, 주변 묘사가 조금 좋아진 느낌이 있다. 


 

지평선과 수평선이 동시에 맞닿은 곳, 안산 마라톤 대회 기록 정리

 

고구려마라톤, 서울마라톤, 청남대 울트라, 긍정의 힘 대회를 나갔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회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가면 대부분 삶에 새로운 충전 기회가 된다. 한마디로 업된다.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을 높이는 기회를 준다. 사적인 훈련과 의지를 공적으로 인정받는다. 꼭 다른 사람의 인정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럴 시간에 스스로 더 훈련에 몰입하고 달리는 일에 충실하면 된다.

 

여름 내내 열심히 훈련한 선배가 산악회 일로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대회 이틀 전에 연락이 와서 훈련 삼아 나갔다. 오늘 대회는 '안산 마라톤'이다. 대부도 포도 축제 중에 열리는 대회다. 장거리 훈련을 못했으니 당연히 욕심부리지 말아야 하고, 완주한다는 마음으로 달리기로 했다. 걷지 말고 즐기면서도 어떤 구간은 가장 빨리 달리기로 했다. 2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큰 대회는 선수 모두가 경쟁적이다.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즐기는 일은 생각지도 못한다. 나중에 이런 일들이 아쉽다. 어떤 대회라도 삶과 마찬가지로 좀 더 여정을 즐겼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지방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는 경쟁이 없다. 평화롭고 여유 있고, 아기자기하고 즐겁다. 마치 아이 때 해가 질세라 신나게 뛰어놀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부도 포도 축제 중에 열리는 안산 마라톤 대회가 그랬다.

 

아들이 어렸을 때 대부도 방파제와 섬 곳곳에 자주 갔다. 바다낚시 카페 회원으로 활동했고 많은 낚시꾼과 어울렸다. 3교대를 하던 아내가 아침에 들어오면 아들을 데리고 먹을 것을 챙겨 바다로 갔다. 낚시도 하고, 등갈비를 구워 먹고 오후에 돌아왔다. 낚시를 가르치는 시간을 아들은 늘 재미있어했다. 불가사리를 잔뜩 잡아 방파제 위에 널어놓기도 했고, 우럭 새끼를 잡으면 바로 바다에 다시 돌려보냈다.

 

나이가 비슷한 한 분과는 각별히 친해 가끔 둘이 낚시를 다녔는데, 인천 공항이 있는 영종도 을왕리 거북바위로 학꽁치를 잡으러 갔다. 바다에 사는 고기들은 모두 잡히는 어종과 시기가 다르다. 학꽁치는 여름에 볼 수 있는 입에 뾰족한 침이 길쭉하게 나와있는 생선이다. 편안하게 머무를 장소를 잡고, 보리와 어묵을 섞은 밑밥을 앞에 뿌리면 학꽁치가 몰려든다. 새우 미끼를 달고 찌를 노려보면 긴 학꽁치가 물 위에서 춤을 춘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에, 은빛 학꽁치가 푸드덕거리면 반짝임에 눈이 부신다. 그렇게 한두 시간을 낚시해 10마리 정도 잡아 투명한 학꽁치의 내장을 청소하고 회를 뜬다. 싸 온 김밥에 얹고 초장을 뿌려 먹으면 기가 막히다. 오징어도 그렇지만 바로 잡으면 살 색이 투명하다.

 

한참을 낚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언젠가 한 번은 낚시꾼 상갓집에 갔단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곳에 온사람 모두가 낚시꾼이라고 했다. 자기도 나중에 똑같이 된다는 생각에 낚시를 그만둔다고 했다. 나도 아이가 자라면서 낚시를 접었다. 사실 한 가지 일만 죽을 때까지 하다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진짜 암담한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글과 문헌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두려워 말라'는 글이라고 한다. 성경에는 '두려워하다' 또는 '두려워하지 말라'와 같은 표현이 자주 나온다. 특히, '두려워하지 말라'는 명령형으로 자주 사용되며, 365번 나온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로는 번역본마다 더 적은 횟수(약 60회, 약 71회 등)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오상아(吾喪我)'라는 말은 장자의 제물론에 나오는 핵심 개념이다. 말 그대로 "자신을 장례 지냈다"는 뜻으로, 현재의 '나'를 극복하고 '깨달은 나' 또는 '참 나'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사람은 누구든지 현재 자신의 모든 환경을 떠나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다. 달리기가 매혹적인 이유는 항상 달리고 나면 새로 태어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두려움을 벗어던지는 일은 아니라서 오상아의 참뜻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긴 거리를 달리면 무언가를 많이 내려놓는 후련함이 있다.

 

어제도 아니고 바로 오늘 달리는 주로는 시화방조제 안쪽에 다시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바다 가운데 길고 긴 도로를 왕복하는 주로다. 코스도에도 명확하게 나오는데 주로 양 옆은 바다와 연결되지 않았지만 바다다. 일직선 주로에서 멀리 앞을 보면 주로가 닿은 지평선과 바다 위의 수평선이 한 점으로 모이는데 멋진 풍경이다. 주로 전 구간에 아무것도 없다. 날씨가 좋아 뜨거운 빛과 함께 달리는 일이 걱정이 안 된다. 딱 두 시간 정도만 밖에 있으면 된다.

 

오늘 대회에는 커뮤니티에서 10명이 참가했다. 가을 마라톤 시즌을 준비해 열심히 훈련한 동료들이라 딱히 신경 써야 할 것은 없다. 대회장은 먹을거리와 볼거리가 넘쳐났다. 대부도 포도와 샤인머스켓을 파는 부스가 많았고, 시장 상품권 5,000원을 참가자에게 지급해 시장 먹거리 촌에서 즐기고 있었다. 마라톤에 입문 후 지금까지 어떤 대회에 나가도 선배들은 무대를 구경하거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오직 달리기만 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회원들은 대회에 나가면 젊은 러너들처럼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무대 공연을 관람하고, 경품 추천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한마디로 축제를 즐기는 기분으로 대회에 참가한다. 모든 경직되고, 흐트러지지 않는 것들은 부서지고 무너진다. 변화란 정확한 게 아니라 명확한 것에 가깝다. 어떤 모습들이 이전 기준에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삶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정을 즐기는 모습인지 아닌지의 문제다.  

 

현자영자와 15km까지 페이스 6분 20초로 함께 달렸다. 호자도 역시 어제 소백산을 다녀왔고 뒤풀이하느라 많이 힘든 모양이다. 이제부터 혼자 달리라고 내팽개치고 1km 앞에 있는 선배 두 명을 향해 달렸다. 이때부터 힘을 낸다. 5분 20초 페이스로 5km를 달려 따라잡고 신나게 피니시라인을 향해 달렸다. 용자한자 선배처럼 꾸준히 훈련하는 사람을 앞서기는 힘든데, 초반에 힘을 많이 아껴둔 이유로 가장 먼저 결승점에 들어왔다. 2시간 06분 36초다. 오늘 대회에 나갔던 선수들에게 연락해 기록을 모아 본다. 한 동안 이런 작업을 안 했더니 방법을 잊었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버릇을 들이는 일은 중요하다. 물고기가 계속 헤엄치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기록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매일 업무 일지를 적고 나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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