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김훈 작가의 강연 - 한담 - 에서 공감가는 부분 발췌

지구빵집 2015. 3. 14.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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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의 강연 내용중 공감 가는 이야기만을 요약 정리하였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두고두고 보아야 겠다.


강연 전문은 여기 http://m.biz.chosun.com/svc/article.html?contid=2014103103307 에서 볼 수 있다.


● 생고생이라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될 쓸데없는 고생을 말 때문에 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과 글을 쓰면서 살아온 생애가 어떤 때는 진땀이 나게 뉘우쳐질 때가 있다. 쓸데없는 말, 하나 마나 한 말, 아니한 만 못한 말, 동어반복, 중언부언, 이런 말들을 끝없이 지껄이며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개념어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다. 개념어가 아닌 말들, 그러니까 삶의 일상성, 생활의 구체성, 삶의 육질성과 닿아있는 말들을 가지고 글을 써보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개념어라는 것은 삶의 구체성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고 권력화된 언어인 것이다. 개념이 설정한 틀 안에 들어오지 않는 모든 구체성을 제거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나로서는 개념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 인간은 일방적으로 아름답거나 추한 것이 아니고 여러 모습이 매장터에 섞여서, 그 전체가 인간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 머릿 속에 질서나 시스템이 들어있는 사람들은 시스템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잘라 버린다. 가지런함만 유지한다. 나는 그 가지런한 것은 알겠는데, 그런 가지런함으로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는 잘 알 수가 없다. 우열의 관계를 말하는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가령 나의 무질서와 계통 없음을 말하는데, 누군가 인간의 신념에 대해서 묻는다면, 나는 신념을 가진 자의 편이 아니고 의심을 가진 자의 편인 것 같다. 신념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구태여 내가 어느 편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의심을 가진 자들 쪽에 더 많은 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 이런 자리에서 말을 할 때 혹은 글을 쓸 때 자기가 읽은 책을 들이대는 사람을 나는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다. 책을 갖고 와서 여기에 이렇게 돼있다고 하는 사람을 보면 답답한 생각이 든다.


● 심지어 친구 아버지 첩이 어느 다방 마담인지도 알고 있었다. 특징적인 차림이 있었다. 머리를 한 쪽으로 몰면 하얀 목이 보였다. 핸드백, 단추가 달려서 열면 딱 소리가 나는 게 있었는데, 거기서 우리한테 돈을 꺼내서 주고는 공부 잘해라 그러고는 딱 하고 다시 닫고는 옆구리에 끼고는 가고 그랬다. 옥색 구두 같은 것 신고. 그런 기억이 난다. 


● 나는 인간에게 삶 이상으로 중요한 게 없다고 본다. 살아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 다만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을 추호도 자랑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 중에는 책을 한 권도 보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래도 훌륭한 인품을 갖고 있다. 나보다 넉넉하고 너그럽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부하들을 잘 통솔하고, 훌륭한 사람이 많다. 모자람 없이 잘 산다. 책을, 글자를 꼭 들여다봐야만 훌륭한 인간이 된다고 할 수는 없다. 삶의 현장에서 배운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 나는 정의라는 것은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의 바탕 위에다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것이지 거꾸로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정의나 신념의 바탕 위에 사실을 세우려고 하면 다 무너져 버린다. 사실의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언론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 세월호 사건에 대해 내가 전에 무슨 TV하고 전화로 얘기하면서 자본주의 전체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 있어서 지금 질문한 것 같은데. 그 안에는 수많은 자본주의와 권력 사이에 결탁한 세력이 저지른 많은 범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가치를 반성하는 계기가 돼야만 우리가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나는 나의 내면을 드러내기 위해 글을 쓴다. 내면을 드러내서 그것이 남에게 이해를 받을 수 있으면 소통이 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와 남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이다. 나와 남의 차이를 확인하는 것도 크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반드시 소통이 되고 너와 내가 얼크러져야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 너와 내가 소통이 안되고 피차의 차이와 상이점을 아는 것도 아주 고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배경이다. 


● 마찬가지로 나는 훌륭한 소설가가 되겠다고 목표를 설정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다만 나의 내면을 표현하겠다는 목표를 추진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다. 왜 글을 쓰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나의 글로 남을 설득하고 진리를 얘기하고 나의 명석함을 증명하려는 이런 욕망이 나는 없다.


● 소설에서의 문장은, 첫 문장이 힘이 있어야 한다. 칼의 노래의 첫 문장인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의 힘은 간단명료함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어+동사’다. 아름다운 수사학에서 힘이 나오는 게 아니다. ‘주어+동사’의 놀라움이 거기에 있다.


● 러나 첫 문장의 힘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는다. 두어 페이지 넘어가면 이 힘이 빠진다. 그럼 또 강한 문장을 갖다놔야 한다. 그럼 거기에 의지해서 십여줄이 나가는 것이다. 중간중간에 힘찬 문장을 박아놔야 한다. 문장 하나 가지고 오래 가지를 못한다. 첫 문장으로 끝까지 우려먹고 살 수는 없다.


● 한국 문학의 특징은 단절에 있다. 비극적이다. 이광수, 염상섭, 채만식 등 기라성 같은 선배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는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다 박물관에 가있고 연구자들만 읽는다. 세대가 단절된 것이다. 그러니 상을 논할 때가 아니고, 글읽기의 세대가 단절된 것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


● 인생에서의 가치가 무엇이냐. 이것은 참 어려운 건데. 누구나 다 다른 가치가 있겠지만, 나는 남한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사람들이 히어링 기능이 거의 없다. 토킹만 있고 채팅만 있고 듣기가 안되는 세상이다. 듣는 사람은 없이 떠드는 사람만 있다. 사방에서 떠드는데 아무도 안 듣는다. 담벼락에 떠드는 듯한 소음이 가득차 있다. 우리 사회의 언어가 타락한 모습이다.


● 얼마 전에, 책 읽은 얘기 또 하면 안되는데, 니체를 읽었더니 이런 얘기가 있더라. ‘정의로운 사람은 빠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정의로운 자는 스스로 서둘러 판단하는 것을 삼간다. 정의로운 자는 남의 말을 경청하는 자이고, 정의로운 자는 남에게 친절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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