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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버리는 글쓰기-나탈리 골드버그. 다른 세계에 발 담그기



좋은 책을 참 오래도 읽는다. 특별히 집중하지도않으면서 기다리는 일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 제품 판매하는 일, 사무실 옮기는 일, 공기청정기 메이커 교육, 사무적인 서류처리와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일이다. 하나씩 성취는 하지만 그가 오지 않는다면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그는 내가 기다리다 지쳐서 나가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누구나 한계를 가지고 있다. 나도 내가 언제까지 잘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명상과 연습도 참 소용없다. 어떻게 보면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글쓰기는 누구나 다 가져야 하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분야의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무슨 일을 하든 꾸준히 하는 운동은 누구에게나 도움을 준다. 운동을 한다고 무슨 다른 분야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당한 시간을 내어 빠뜨리지 않고 정해진 시간을 달리고, 들고, 구부리고 반복적으로 움직여 땀을 흘리면 되는 일이다. 글쓰기는 다른면이 있다. 쓰는 일 자체가 노동이라는 것은 여느 일과 다름없지만 완전히 다른 일이 된다. 자기를 버려야 하고, 자기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하고, 내면의 욕망이라든가, 수치스런 경험, 심지어 드러내기 싫은 일조차도 글로 옮기는 일이다. 이게 어떻게 운동과 닮아 있다는 말인가? 완벽하게 다른 분야의 일이 아닌가? 

일반사람은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거나 하는 작가는 자기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생각만 하고 지내는 보통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세상 도처에 존재하는 평범하지 않는 이야기를 들추어 피곤하게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사람과 맞서 싸우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글쓰는 작업은 지극히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익숙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인 경우도 많다. 위태로운 줄타기이며 퇴폐를 상상하며 흔들리는 상태에서 진행되는 작업이기도 하다. 

문득 작가는 글쓰는 작업에 익숙한 사람이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수, 상인, 교사, 영업사원 처럼 자신의 작업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 분야의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과 같다. 그러니 작가가 되려는 사람은 자기가 하려는 일을 그만두고 작가에게 익숙한 일을 꾸준히 해야한다. 사람들이 즐거운 시간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는 때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 하고 공감하고 즐겁게 떠드는 시간말이다. 그러니 글쓰기가 즐거운 일이 되려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지내야 한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같은 일을 해야한다. 취미로 한다면야 별 문제는 없지만 말이다.

괜히 글쓰기에 천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일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광고하는 일이야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가장 우선해서 하는 일이다. 그래야 힘이 생기고 돈이 되니까 말이다. 일정한 양의 투입이 없이는 출력이 나오지 않는 일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분명히 사람마다 직업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무엇이든 그 일에 쏟아야 하는 게 현실이다. 생업으로 하는 일을 바꾸면 모를까. 이런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현재 두 발을 딛고 선 세계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른 세계에도 발 하나를 담그고 있어야 한다. 누구나 하나에 집중하고, 깨어 있고, 현재에 존재하고, 살아있다.

책에 나오는 좋은 글을 옮긴다.

"글의 구조는 반드시 유기적이어야 한다!"

"결국 시의 짜임을 내면화한 결과 내가 종이 위에서 말을 쏟으면 그 말은 시가 되어 나왔다."

"그래, 맞다. 구조 짜기다. 구조는 이 책에서, 그리고 이 책 밖에서 찾아낸 위대한 발견이다."

"완전히 몰입해서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글을 어떻게 짜고 있는지 이해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내면의 절차를 거쳤는지 발견했다. .....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책을 얼마나 안 읽는지, 읽는다 해도 정독은 하지 않는지를 알고서 깜짝 놀랐다. 정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맛있고 부드러운 껌을 입에 털어넣고 질감이나 맛과 향을 느끼지도 않은 채 삼켜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바로 그것이 글을 쓰는 원래의 목적이다. 삶의 진정한 모습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일반화하지 않기 위해서다."

"누군가 열심히 글을 써서 출판까지 할 수 있다고 쳐도 무언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것만이 우리의 무릎을 꿇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뼈대는 이미 설정해 놓았다. ..... 하지만 그녀의 여정은 글을 쓰는 동안 서서히 밝혀질 것이다. 이처럼 글쓰기는 모험이며, 발견의 행위이다."


예술은 고통이라고? 하지만 사실이었다. 그런 경우를 수도 없이 봐 왔다. 작가들 중에는 그걸 깨달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우리는 왜 멈추지 않았을까? 그들은 모두 글쓰기의 달콤함을 맛보았던 것이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불꽃, 그 대가로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다. 그건 바로 혼란과 고립이었다. 

(중략) 

"안녕하세요, 저는 엔지니어입니다. 일 년에 4만 6천 달러를 버는데요, 글쓰기를 해서 그 정도를 벌려면 얼마나 연습을 해야 할까요?" "그냥 하던 일 계속 하세요." 나는 그에게 말했다. 만약 그 학생이 다시 와서 그런 소리를 하면 등골이 오싹해지도록 이렇게 꽥 하고 소리를 지르며 말할 것이다. "출세도 없어! 장담도 못해! 자격증도 없어! 보상도 없어!" 

결국에는 모든 걸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글쓰기를 그래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당신은 아무 지표도 없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해골만 가득한 길 위에 서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여정을 떠났고, 다시 돌아오는 데 성공했다. 몇 번이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당신의 안내인이 되어 주겠다. 

경고도 했으니 이 말도 덧붙여야겠다. 자신의 근본을 알고 싶고, 자신이라는 지긋지긋한 노란색 우비를 벗고 죽음의 어두운 얼굴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면 바로 지금, 되돌아갈 수 없는 절의 묵직한 대문이 끼익하고 열리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입장하라. -'들어가며/경고' 중에서


"나탈리, 플롯은 일어나는 일이야. 어떤 여자가 차를 마시는 장면은 한 문장이면 족해. 플롯은 독자가 더 읽고 싶게끔 만드는 행동들의 연속이야. 독자를 유혹하는, 숲 속 미지의 세계로 더 깊이 유인하는 빵 조각 미끼 같은 거야." (중략) 나는 여기서 그녀의 말을 멈췄다. "있지, 케이트, 사실 우리 인생도 그래. 우리는 어딜 향해 나아간다고 착각하지.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삶을 보면, 가게를 둘러보다가 갑자기 생각 속으로 들어가고, 그러다 갑자기 '목마르다.'라는 욕구가 생기잖아." 

바로 그때, 종업원이 디저트 메뉴를 건넸다. 메뉴에 뭐가 쓰여 있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휘핑크림을 올린 풀, 삶은 보리, 견과류와 얇게 썬 초콜릿? 대체 누가 이 레스토랑을 추천했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코를 찡긋했다. 둘 다 디저트는 먹지 않았다. -구조 짜기, '우리 함께 플롯을 짤까요?' 중에서


...눈물, 콧물을 다 쏟았다. 휴지도 없었고, 내가 대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도 없었다. 잭 캐루악의 글귀가 떠올랐다. "상실을 영원히 받아들여라."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답은 그 외에는 없었다. 내 슬픔은 내가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있다는 데 있었다. 좋은 경험은 놓치고 싶지 않았고, 나쁜 경험은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된다고 두려워하면서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경험들, 순간들, 모든 지나간 일들, 알게 모르게 움켜쥐고, 갈망하고, 씨름하던 모든 것들. 내가 사랑한 모든 것과 사랑하지 않은 모든 것들. 글쓰기가 나를 통해 움직인다는 사실과, 그 밖에 다른 것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의 대비가 나를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가고 없었다. 좋았던 나날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안에 간직됐다. 

(중략)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왜가 아니라 무엇을'. 이것은 내 글쓰기 피정에서 일어났던 무엇이다. 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오직 글만이 우리의 마음을 활짝 열어 개개인의 고통을 세상 만물 공통의 고통으로 만들어 준다. 모든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더 펑펑 울었다. 모든 인간은 다 그랬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인간이라면 느끼는 괴로움을 느꼈다. -에필로그, ‘글쓰기 피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