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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권여선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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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첫문장 : 나는 오래전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상상한다.


P. 12 그의 삶의 갈피갈피에도 의미 같은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었겠지. 없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삶에도 특별한 의미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에도, 언니의 삶에도, 내 삶에도.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거라고. 무턱대고 시작되었다 무턱대고 끝나는 게 삶이라고.


P. 35 열일곱살 6월까지도 나는 내가 이런 삶을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이런 삶을 원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살고 있으니, 이 삶에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이 삶을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러나, 선택한 적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P. 67~68 다언만이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나 또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더 치명적인 쪽은 나일 수 있었다. 다언은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 나는 자문했다. 나 또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조이스에 빠져 「레몬과자를 파는 베티 번 씨」라는 시를 쓰던 그 시절로. 그럴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인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P. 145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식당 주방에서 일한다는 그들 남매의 엄마는 난쟁이였다. 선우를 좀더 가혹하게 눌러놓은 것처럼 작았다. 그 엄마를 보자 이상하게도 내가 앞으로 어디를 찾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내가 살아갈 방향도 정해졌다.

 

P. 198 나는 궁금하다. 우리 삶에는 정말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 아무리 찾으려 해도, 지어내려 해도, 없는 건 없는 걸까. 그저 한만 남기는 세상인가. 혹시라도 살아 있다는 것, 희열과 공포가 교차하고 평온과 위험이 뒤섞이는 생명 속에 있다는 것, 그것 자체가 의미일 수는 없을까.

 

p179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느 사건이에요,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는 초라하든, 한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P. 63 다언만이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나 또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더 치명적인 쪽은 나일 수 있었다. 다언은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P. 64 내가 다언에 대해 아는 건 오직 한 가지, 한일 월드컵이 있던 그 해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이 결코 그녀에게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뿐이다.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사실뿐이다. 끔찍한 무엇을 멈출 수 없다는 것, 그 무엇이 끝없이 진행된다는 것,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P. 86 엄마가 엄마 스스로를 바꾸지 못해 언니의 이름을 바꾸려 했다면 나는 언니의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해 나 스스로를 바꾸기로 했다. 엄마가 말렸더라도 나는 감행했을 것이지만 엄마는 말리지 않았다. 말리기는커녕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토록 돈에 무서운 엄마가 선뜻 수술비를 대주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P. 57 그러나 우리는 천천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눈앞에 임박한 대입시험의 생생하고 폭력적인 부담감이 모든 정서적 충격을 녹여버렸다. 그래, 몇명이 사고를 당하고 유학을 가고 전학을 가고 이런저런 이유로 떠난 것뿐이야. 그래도 우리는 여기 그대로 남아 있잖아? 죽을 맛이야.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 사는 게 이게 뭐냐. 이게 사는 거냐. 그런 식으로 그 사건은 우리에게서 끝이 났다.

 

P. 67 다언은 내가 계속 시를 써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다언만이 뭔가를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 나 또한 뭔가를 잃어버렸다. 오히려 더 치명적인 쪽은 나일 수 있었다. 다언은 자신이 뭘 잃어버렸는지 분명하게 자각하고 있는 데 반해 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다언을 관찰하고 다언의 말을 들으며, 이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고 저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관대한 척 고개나 끄덕이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다언에게 내 속을 들키자 발끈하여 그녀를 공격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나는 자문했다. 나 또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P. 93 나는 사물들을 누르거나 밟거나 던지곤 했다. 필연적으로 그 사물들은 보드랍고 물렁하고 깨지지 않는 것들이어야 했다. 그 이유는 내가 부딪치거나 깨지는 소리를 도저히 듣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콱, 퍽, 와작하는 소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끔찍한 공포에 휩싸였다. 나는 그 소리를 귀로 들을 뿐 아니라 눈으로 보았다.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단단한 것과 부딪쳐 깨지는 소리를 들으면 저절로 눈에 힘이 들어가고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눈앞에 파열음과 굉음들이 만들어내는 타는 듯한 지옥도가 펼쳐졌고 그 한영을 보는 내내 피처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P. 179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 저쪽,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 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 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래 다져진 땅 같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다언의 관념은 곱씹고 또 곱씹어 어떤 날도 들어가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노인들의 그것보다 더 무섭고 더 죽음에 가까운 듯 보였다.

 

결국 죽음은 죽은 자와 산 자들 사이에 명료한 선을 긋는 사건이에요,라고 다언은 진지하게 말했다. 죽은 자는지 나머지는 이쪽, 이런 식으로, 위대하든 초라하든 한인간의 죽음은 죽은 그 사람과 나머지 전인류 사이에 무섭도록 단호한 선을 긋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지라고, 탄생이 나 좀 끼워달라는 식의 본의 아닌 비굴한 합류라면 죽음은 너희들이 나가라는 위력적인 배제라고, 그래서 모든걸 돌이킬 수 없도록 단절시키는 죽음이야말로 모든 지속을 출발시키는 탄생보다 공평무사하고 숭고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다언은 책을 읽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오래 다져진 땅 같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죽음에 대한 다언의관념은 곱씹고 또 곱씹어 어떤 날도 들어가지 않는, 그래서 오히려 노인들의 그것보다 더 무섭고 더 죽음에 가까운 듯 보였다. 죽음은 우리를 잡동사니 허섭스레기로 만들어요. 순식간에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


언니,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망루가 불타고 배가 침몰해도, 이 모두가 신의 섭리다,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있어야 신을 믿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렇게 말할 수 없어요. 섭리가 아니라 무지예요! 이 모두가 신의 무지다, 그렇게 말해야 해요! 모르는 건 신이다, 그렇게………

 

[작가의 말]


사람이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 을 수 없다는 걸,
그게 당연하다는 걸 아는데,
저는 그게 가장 두렵고,
두렵지만, 두려워도삶의 실상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삶의 반대는 평(平)인 것인가,
그래서 나는 평하지 못한 삶의 두려움을 쓰고 있는 것 일까,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현실 속 수많은 불평(不平)한 삶들은 이야기가 되고,
사에 대한 두려움과 삶으로 인한 고통 들은 의미를 띠게 되는 것일까,
모든 생명은 각자 의미심장하게 굴곡지고,
그 유일무이한 무늬가 우리를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것일까,
삶이 결코 평범하지도, 평화롭지도, 평온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늘 당연하면서 놀랍고,
이상하면서 또 궁금하고,
두려우면서 매혹적이어서,
우리는 자꾸 삶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는,
도저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그 불가능한 생을 생각하면,
그러나 그 불가능함과는 별개로,
모든 사람과 모든 생명이평범하고 평화롭고 평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부디 단 한번만이라도이 세상에 어떤 생명 하나가,
그게 날파리 한마리라 하더라도,
평범하게 태어나, 평화롭게 살다, 평온하게 죽은 적이있기를,
단 한번이라도
한번만은 그 불가능한 삶이 존재했기를 기도하게 되는 이 마음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 불가능한 갈망 때문에,
이 갈망이 거대한 화폭의 틀처럼평하지 못한 삶의 다채로운 풍경들을 단단히 잡아주고,
팽팽히 당겨주기 때문에,
낱낱의 삶, 낱낱의 이야기 들은 모래처럼덧없이 흩어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일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삶이 평하기를,
덜 아프기를, 조금 더 견딜 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당신의 평하지 못한 삶의 복판에,
아프고 무섭고 견디기 힘든 삶 한가운데,
곱고 단단하게 심어놓으면 어떨까,
그러면 그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한그루 이야기가 될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당신을 상상합니다.
사랑보다 어려운,


2019년 4월권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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