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오랫동안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잘 얻는 것을 보면 억울한 심정이다.

지구빵집 2019. 5. 1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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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의 학교 시절은 즐겁지 않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마찬가지였다. 강하게 옭아 맨 모든 환경은 보기에도 답답하고 견디는 학생들은 전력을 다해 버티는 일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모의고사 4일간 시험이 끝났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당구를 치러가거나 만화를 보러 가거나 뿔뿔이 흩어진다. 남자는 책을 꺼내 공부하기 시작한다. 시험이 끝나는 날은 남은 오후를 쉬어도 될 법도 한데 그는 항상 남아서 책을 본다. 혼자 있는 게 좋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 남과 다른 버릇은 성인이 되어 직장을 다녀도 마찬가지다. 남들 다 쉬는 금요일 저녁부터 항상 야근이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무실에 나와 책을 보거나 밀린 일을 한다. 남들보다 느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 두 세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쫓아가는 방법은 그들이 하지 않을 때 부리나케 일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은 원하는 것을 오랫동안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쉽게 잘 얻는 것을 보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가족관계나, 줄을 잘 서서 얻는 것이나,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인정 따위 같은 것들은 사실 엄청 노력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그런 것조차도 거저 얻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사소한 것이 있겠는가마는 적어도 남들 다 누리는 것들은 남자도 노력하지 않고, 대충 살아도 좀 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옛날보다는 딱히 분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은 많이 줄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쉽게 얻어질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덜 노력하고, 그 노력에 맞는 만큼만 갖게 되는 게 차라리 속은 편했다.

  언제부터인가 정확히 달리는 날이 많아질수록 남자는 갖고 싶은 게 생겼다. 그건 유형의 가치일 수도 있고, 아니면 무형의 성취 같은 것일 수 있다. 처음으로 달리기 모임에 나가 함께 달리기를 시작했을 때 남자는 판교 회사를 다니면서 창업을 준비했다. 나이는 50대 초반이니 아직도 회사를 다닌다면 짧게 잡아도 5년은 더 다닐 수 있는 나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남자는 많이 변했다. 달리기가 일부분 그를 변하게 만들었지만, 남자 전체를 바꾼 게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남자를 바꾸는 것은 대부분이 여자의 일이었다. 남자는 배우고 또 배웠다. 무엇이든 제 손으로 익혀야만 직성이 풀리는 남자는 숨겨진 비밀을 찾아내고, 배우고, 닮아가고, 달리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달리기에 대해서나, 명상과 수련에 대해서나, 사람들의 관계에서나, 글을 쓰는 일에서나, 자기를 관리하는 일에서 남자는 그의 노력을 조금도 아끼지 않았다. 무턱대고 시작한 그의 삶이 무턱대고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이야기하는 듯 보였다. 아마도 그가 마지막 걸어야 할 길이 있다면, 남자가 원하는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희망도 없고, 무엇인가 갖고 싶은 것도 없는 남자에게는 대단한 변화였다. 하루하루 새로운 아침이 의미가 없는 사람에게 일상이란 그저 그런 일이다. 대단한 일도 아니고, 대단한 집중을 발휘해 처리할 일은 더더욱 아닌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가 늘 변하는 사람이란 것을 스스로 알아가고 있다. 

  남자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은 자신이 지금부터라도 이루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명확히 설명은 할 수 없었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포함되어 있지만,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은 없다. 그게 부라면 부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도 모른다. 타인을 위한 필요한 지원을 할 만큼 여유가 있기를 바라지만, 그게 어디인지는 모른다. 마음을 쏟아부어서라도 기분 좋게 만들 수 있는 일인데, 어떤 마음을 갖고 싶어 하는지 알 수는 없다. 지난 시간이 남아 돌 정도로 충분하였듯이 남은 시간은 더 많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반드시 얻고 싶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천성이 게으른 남자는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지만, 한 번 하게 되면 불타오르듯 하는 사람이라서 두렵기도 하다.-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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