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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법칙 39. 싸워서 질 바에야 항복을 선택하라. 전략적 후퇴.

지구빵집 2020. 3. 1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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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법칙 39. 싸워서 질 바에야 항복을 선택하라. 전략적 후퇴.

 

힘이 약할 때는 절대로 명예를 위에 싸우지 말라.
대신 항복을 선택하라.
항복은 당신에게 회복할 수 있는 시간과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시간,
상대의 힘이 약해지기를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상대가 당신과 싸워 이기는 만족감을 누리게 하지 말라.
항복할 거면 일찌감치 하라는 뜻이다.
왼쪽 뺨을 때리거든 오른쪽 뺨까지 내밀어서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라.
항복도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절대 간과하지 말라.

 

  현재 힘이 약한 상황은 죄가 아니다. 상황을 잘 이용하면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다. 밀로스(에게해에 펼쳐진 키클라데스 제도 가장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그리스에 속한 섬)가 처음부터 항복을 했다면 밀로스 사람은 교묘하게 아테네에서 아테네 사보타주를 가하거나 동맹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모두 확보한 뒤 아테네가 약화되면 동맹을 파기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몇 년 뒤 아테네는 약해졌다. 운이란 변하게 마련이며 강자도 때로는 몰락하는 길을 걷는다. 항복은 엄청난 힘을 은폐해준다. 적을 달래서 안주하게 만들면 당신은 힘을 회복하고, 적을 약화시키며, 복수를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런 시간을 희생시켜가며 절대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명예를 구하려 하지 말라.


약자는 자신이 그래야 할 순간에 결코 허리를 굽히지 않는다. -레츠 추기경(Cardinal de Retz, 1613~1679)


  명심하라. 자신이 가진 권위를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제일 쉽게 항복 전술에 기만당한다. 당신이 겉으로 복종 의사를 표현하면 상대방은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고 느끼게 된다. 상대가 자기를 존중한다는 사실에 만족하기 때문에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은 이후 반격이나 브레히트(1947년 미 하원 반미활동위원회가 주도한 허리우드 공산주의자 조사를 받음)가 사용한 위원회에 대한 비웃음과 같은 간접적 조롱의 손쉬운 표적이 된다. 자신의 능력을 긴 안목으로 파악하고, 결코 장기적인 운신의 폭을 희생시켜 순교라는 단기적인 영예를 추구하지 말라.

  항복을 함으로써 사실은 당신이 상황을 통제하게 된다. 당신의 복은 상대를 진정시키고 상대가 당신을 물리쳤다고 믿게 만드는 더 큰 계획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정복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복 전술에 있는 본질이다. 당신은 내적으로 견고하지만 외적으로는 굽히고 있다. 분노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 상대는 당황하게 된다. 그 결과 더 큰 폭력으로 반응하게 될 가능성도 제거된다. 당신은 항복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여 상대를 쓰러뜨릴 반격을 계획할 수 있게 된다. 난폭한 자나 공격적인 자를 상대로 한 지능적인 싸움에서는 항복 전술이 최고 전술이다. 항복 전술은 큰 자제력을 요구한다. 진짜로 항복하는 자는 자유를 포기하며 패배로 인한 치욕으로 무너진다. 당신은 단지 겉으로만 항복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동물이 자신의 안전을 위해 죽은 척하는 눈속임과 같다.

  권력은 항상 흐른다. 권력 게임은 본래 유동적이고 끊임없는 투쟁의 장으로, 권력을 가진 자는 언젠가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당신의 권력이 잠시 약해졌을 경우 항복 전술은 당신이 가진 힘을 키우는 완벽한 방법이다. 항복은 당신 야망을 은폐해준다. 항복은 권력 게임의 핵심 기술인 인내심과 자제력을 가르쳐준다. 또한 행복 전술은 당신을 억압하는 자가 갑자기 쇠퇴하기 시작했을 때 반격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를 제공한다. 만약 당신이 도주하거나 맞서 싸울 경우 당신은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대신 당신이 항복한다면 당신은 마지막에 승자가 된다.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고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내 오른편 판을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희를 억지로 5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10리를 동행하라. -마태복음 5장 38~41 절


  항복과 달리 순교는 까다롭고 정확하지 않은 전술이며, 죽음으로 대항하고자 하는 공격만큼이나 폭력적이다. 죽어서 신앙이나 저항정신을 일깨운 유명 순교자에 비해 아무런 감화도 남기지 못한 채 목숨만 잃은 사람이 수천 배는 더 많은 게 현실이다. 비록 순교가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한다고 해도,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 여부를 미리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변변치 못한 권력이나마 죽은 사람은 아예 누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순교자는 자기중심적인 교만으로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에 사람 눈에 추종자들보다 자신의 영광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당신은 그날이 올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항복하라.

 

 

1945년 8월 14일, 일본 항복 소식을 전해 들은 뉴욕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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