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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두려움 없이 대담하고 과감하게 삶을 살아간다.

지구빵집 2020. 8. 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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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운전면허를 땄다. 1종 보통이다. 1종 보통면허 운전 범위는 승용자동차, 승차정원 15명 이하 승합자동차, 승차정원 12명 이하 긴급자동차, 적재중량 12톤 미만 화물자동차 등이 있다. 적어도 운전으로 밥벌이는 할 수 있다. 남자는 아이에게 도로 주행을 가르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운전면허학원에서 6시간에 24만 원을 들여서라도 연습을 하라고 했지만 알바를 하느라 새벽에 들어와 오후까지 잠을 자는 아이는 시간 내기가 어려웠다. 서둘러 주행 연습을 하고 싶은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친구에게 폼을 잡고 싶은 마음이었다. 며칠 후에 군대에서 휴가 나오는 친구를 데리러 가고 싶어 했다.  

  평일에 잠깐 시간을 내어 자동차에 태우고 열쇠를 주었다. 액셀 페달은 자주 밟으니 바깥쪽에 있는 거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가 사고를 내지 않고 다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가르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안산 학교까지 운전을 하고 다녀왔다. 그런대로 당황하거나 급하지 않게 운전을 잘한다. 2시간 동안 운전을 맡기고 돌아왔는데 원래 하면 안 되는 거였다. 아이가 운전하는 데 보험을 들지 않았다. 하루라도 보험에 가입하고 주행 연습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남자는 허술하기 그지없다.

  며칠 후 자동차를 렌트한다고 했다. 자기에게 필요한 일을 잘하는 아이에게 렌트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알려주지 못했다. 사실 잘 알지도 못한다. 자동차를 빌리고 오는 날 사람도 아니고 차도 아닌 멀쩡한 벽에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렌터카 회사에서는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여차저차 이유를 듣고 처리한 비용이 250만 원이 나왔다. 아이는 무엇을 배우든지 참 과감하게 배운다. 아이가 힘들게 번 돈 반과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비용 반을 내어 아이 혼자 마무리를 지었다. 내색은 안 했지만 아이도 꽤 씁쓸한 표정이다. 어떤 일을 하게 되면 반작용으로 또 다른 어떤 일이 생긴다.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한다.

  남자는 솔직히 대담하게 살아가는 아이가 부럽기만 했다. 아이가 가진 가능성이 부러운 게 아니라 가능성을 행동으로 즉시 옮기는 용기와 자신감이 부러웠다. 아이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조금도 기죽거나 두렵지 않아 보인다. 아이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마냥 행복한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열한 전쟁터도 아니며, 우리 존재 자체가 기적이면서 온통 아름다운 그런 세상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태어난 아이처럼 보인다. 드넓은 바다, 높은 파도가 일렁이고, 천둥 번개가 사방에서 번쩍이고, 지도도 없고 나침반이 고장 난 배를 타고 아이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부모가 자식에게 영원히 잘해야 하는 이유가 이 험한 세상에 불러온 죄라고 한다. 아이를 낳은 대가로 부모는 죽을 때까지 아이에게 값을 치러야 한다는 말이다. 남자는 어떤 일이 생겨도 아이를 비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의 일에 가능하면 관심을 갖지 않으려 한다. 좋은 사이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떤 관계라도 좋은 관계나 서먹한 관계로 되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다. 얼핏 보면 한 번의 선의로 아니면 역겨운 행동 하나로 관계가 좋아지거나 나빠진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런 것이 아니다. 즉, 관계란 긴 시간 동안 깊은 의식과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고차원적인 감정이다. 

  아이는 남자와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문제는 여자와 좋은 관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언제든 아이는 좋지 않은 관계에 대해 청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오죽 알지 못하면 항상 자신을 지켜보고 생각하라고 하겠나. 남자가 지켜보는 여자와 아이는 부모 자식 간에 별로 볼 수 없는 대화를 자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아이를 가르치는 여자의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의무감을 강조한다든가, 고생을 강조한다든가, 희생 없이 얻을 수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초등학생에게 강요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는 청소년기를 지내고 여러 가지 사고를 치고 남자와 여자는 중학교에서 2번 고등학교에 3번 아주 멋진 일로 불려 다닌다. 그리고 여자가 아이에게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었다.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든가, 아이와 신뢰관계가 없다든가, 아이에게 필요한 용돈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진전이 되어 마찬가지로 남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신문 칼럼에서 사방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참견하고, 사소한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쉽게 분노하는 사람에게 예민함을 내려놓자고 한다. 클래식 FM 라디오 방송에서는 예민함이 창조성의 근원이고 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는 능력이라서 예민하고 선세함을 가져야 한다고 나온다. 남자와 아들은 섬세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여자에게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감동이나 놀람, 장난과 유머,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고, 글로 소통하고,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운 것들을 남자와 아이는 함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아이가 언젠가, 아니 되도록이면 일찍 무상(無常)*에 대해 깨닫기를 바랐다. 무상을 이해하면 잘 인내하고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일찍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모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음식, 관계, 사랑, 우정, 친구, 돈, 부, 사람, 지식, 그릇, 만물, 사상, 의지, 느낌까지도 지나가 버린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와 남자 사이에 있는 그 어느 것도 머물지 않고 아무것도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이가 이해하길 바랐다. 자신과 우주와의 합일, 우주와 자연 같은 전체만이 영원한 것(사실 이것도 아니지)이고 모든 생명과 삶 같은 부분은 죽음과 파괴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을 조금은 이해하길 바라지만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은 없다. 머물러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무상(無常) 또는 비상(非常)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멸(生滅)하며 시간적 지속성이 없음을 말한다. 즉 영원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명제로써 무상을 설명한다. 

 

거침없이 항해하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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