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수달이 돌아왔다 / 염형철(사회적협동조합 한강 공동대표)
최근 몇달 사이 서울시 하천 곳곳에서 수달이 촬영되고, 분비물·발자국 같은 흔적들이 확인됐다. 일부 하천 구간이 아니라 본류와 지류 여러 곳, 사실상 서울시 전역에서 수달이 나타난 것이다. 지난 넉달간 시민모니터링단인 ‘수달언니들’이 조사해서 밝힌 반세기 만의 경사다.
수달은 귀엽고 순해 보이지만, 하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다. 육지의 호랑이 역할인 거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수달의 귀환은 서울 하천들의 자연성이 다소나마 개선됐다는 뜻이다. 수달은 하천에서 생활하는 유일한 포유류, 멸종위기 1급 동물이자 천연기념물 330호다. 육지생태계가 도로와 개발로 단절되어 대형 동물들이 돌아오지 못한 반면, 하천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수달이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 사는 수달들의 삶은 팍팍한 상태였다. ‘수달언니들’의 조사에 따르면, 수달들은 한강 본류와 주요 지천들에서 서식하지 못했다. 수달은 야행성이고 눈이 퇴화한 상태라 물의 진동을 느껴 물고기를 몰거나 사냥해야 하는데, 직선으로 정비되고 깊이 준설되어 있는 곳에서는 수달이 먹이를 잡기가 어려웠던 탓이다.
그래서 수달들은 근래 하천 정비 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생태공원이나 지천의 수목 지역에서만 발견됐다. 수달의 활동 영역이 하천을 따라 수컷은 14~15㎞, 암컷은 7~8㎞까지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서울의 수달들은 매우 열악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수달들의 먹이 섭취도 양호하지 못했다. 농촌 지역의 수달들에 비해서 분비물의 양이나 내용물의 종류도 부실했다. 게다가 스티로폼이나 플라스틱이 똥 속에 자주 섞여 나왔다. 플라스틱을 먹이로 착각하거나 먹이와 함께 섭취한 것일 텐데, 이들은 소화기관을 막거나 기능을 떨어뜨릴 것이다. 플라스틱으로 고통받는 바다의 거북이나 새들의 상황이 수달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시다시피 우리의 하천엔 온갖 쓰레기가 유입되고, 곳곳이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지 않는가.
3월22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물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물 순환을 보호하기 위해 각자의 역할을 다짐하는 날이다. 물 순환에서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단계를 하천이라고 할 때, 우리의 하천과 수달을 생각해보는 일의 의미는 적지 않다.
우리나라 하천의 가장 큰 특징은 폭이 매우 넓다는 데 있다. 여름철에 내린 많은 비가 한꺼번에 흘러가야 했기 때문이다. 외국 하천, 특히 유럽 하천들에 비하면 하천 폭은 몇 배에 달한다. 서울시의 경우 하천부지는 도시면적의 10.3%를 차지하고, 전국으로 따져도 약 5%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평지에 있고, 산악이 아닌 곳의 5분의 1에서 7분의 1을 차지한다.
우리의 하천은 격렬한 존재 형태 때문에 홍수관리와 수량 확보에 어려움을 주었지만, 덕분에 좁은 국토와 비싼 토지가격의 대한민국에서 엄청난 면적의 공유지로 남아 있게 됐다. 더구나 이들 하천은 산에서 바다, 도시와 농촌 구석구석까지 연결되어 있어, 백두대간의 생명들이 서해까지 오갈 수 있는 생태축이 될 수 있고, 시민들이 일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녹지로서의 가치도 크다.
서울 하천에 수달이 돌아왔다. 하천을 잘만 관리하면 메트로시티인 서울조차 야생동물들이 함께 사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수달이 살 수 있는 도시는 사람도 살기 좋은 도시가 될 것이다. 더욱 다양한 생태는 경관이 되고, 자원이 되고, 이야기가 되고, 문화가 될 것이다. 하천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수달이 살 수 있도록 하천 정비 방식을 바꾸자. 수달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그들의 공간도 보호해주자. 플라스틱이 덜 들어오게 하고, 들어온 것들을 주워내자. 물의 날을 맞아 하천 청소를 하고, 수달의 멋진 모습을 떠올려보자. (2021.3 .18. 한겨레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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