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세상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해 정의하기를 좋아하는 게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이것은 무엇이다.'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 두어야 뇌가 편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정의는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은 것들의 정의에 기반한 정의를 갖게 마련이다. 사과는 붉고, 달콤하고, 아름다운 과일이라면 우리는 붉은 것과 달콤한 것과 아름답다는 의미를 웬만큼은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아직 삶이나 영혼, 사랑, 운명에 대한 정의는 누구도 분명히 내릴 수 없다. 설명에 필요한 기반이 되는 표현이 진부하거나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단어들이 사용되어 허약하기 때문이다.
가족의 정의를 보면 "가족은 부모·자식·부부 등의 관계로 맺어져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이다. 인류 발생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발생된 가장 오랜 집단이며, 어떤 사회·시대에나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이다. 이 같은 보편성과 영구성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그 형태나 기능면에서 다양성을 보여준다."라고 나온다. 현대 사회에서 보면 진부하고 허약하기 짝이없다.
남자는 오늘따라 오전에 일찍 나와서 리필스테이션 디스펜서 개발 회의를 마치고 어드벤처 디자인 실습에 사용할 부품을 주문하고, IC-PBL 4주 교육에 필요한 미세먼지 센서 디지털 회로설계를 한다. 강의 준비로 분주하다. 강의 자료를 만들고, 실시간 온라인 강의 공지를 올리고 빠뜨린 부품을 몇 가지 구매요청서를 작성한다. 자료를 만들면서 동시에 블로그에 포스팅 하는 과정을 꾸준히 한다. 혼자서 시간을 많이 들이고 어렵게 하는 일라도 남들에게 보일 때는 아주 쉬운 일처럼 보여야 한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 쉬워 보이는 일은 그 사람이 잘하기 때문이다. 얼마나 연습을 하고 능숙하면 마치 보는 사람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까.
오후에 친구 부친상이 있어 청주에 다녀와야 하기에 마음도 몸도 서두른다. 건강하던 아버지를 갑자기 잃은 친구는 몹시 힘들어 한다. 친구는 부모없는 불쌍한 고아가 되었다. 남자는 보통 청주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면 부모님에겐 연락도 하지 않고 다녀오지만 앞으로는 어림도 없다. 부모님은 점점 아이가 되어간다. 두 분이 동시에 많이 늙고 계시다. 엄마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누군가 보살펴주기를 바라는 아기처럼 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다리와 허리가 아프셔서 힘겹게 걷고, 아직도 모든 일에 참견하시고, 잔소리를 하시고, 고집부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따듯한 봄날이 햇살이 노란 빛으로 물드는 4시쯤 사무실을 나와 청주로 간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내려간다. 도로를 달릴 때 지평선이 보이는 고속도로를 지날 때 기분이 좋다. 땅 끝이 저 멀리 보이고 넓은 대지를 비행하는 기분이 든다. 차와 함께 날아가고 싶다. 착륙을 하든, 땅에 꼬라박든 말이다. 성모병원 장례식장에는 8시에 모임 친구들 몇 명이 모이기로 했으니 제법 여유가 있어서 집에 들르기로 한다. 20년 전만 해도 언덕 위에 8층짜리 성모병원이 우뚝 서 있어서 찾기도 쉽고 하얀 건물이라 눈에 잘 띄었지만 지금은 그 뒤로 산이 하나 없어지고 아파트가 들어서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장례식장에는 몇 번 와 본 적이 있다. 청주 중심을 통과하고 충주와 진천으로 빠져나가는 대로변에 있어서 그런지 자주 오게 된다. 하지만 밤늦게나 새벽에 택시 잡기는 쉽지 않다.
연락도 없이 집에 도착하니 아버지와 엄마는 다른 방에서 따로 쉬고 계신다. 인사를 하고 티비를 보는 둥 마는 둥 시간을 보낸다. 남자는 상갓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해서 두 분이 저녁을 차려 드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무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밖에 꺼내 놓은 지 한참 되어서 많이 신 김치를 자르고, 명색이 소고기 안창살을 냉동실에서 꺼내 자르고 김치찌개를 끓인다. 점심때인지 모르지만 먹다 남은 고기 몇 첨을 다시 데운다. 큰 누나가 사다 보관한 건지 냉장실에 자반고등어가 있어서 깨끗이 닦고 토막을 내어 하나씩 비닐에 담아 냉동실에 넣고 한토막을 굽는다. 저녁상을 차려드리고 식사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다 화장실 청소를 한다. 변기를 닦고, 세면대를 수세미에 비누칠해 닦는다. 때가 가득하고 얼룩으로 어두웠던 세면대가 하얗게 반짝인다.
남자를 포함한 다섯 남매가 부모님 두 분 보살피기가 많이 힘들다. 자식들은 부모님이 애써 보살피며 기르고 가르친 양으로 따져봤을 때 배우자 복이 없어보인다. 어디서부터 꼬인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차라리 다들 혼자였다면 더 잘 되고, 많은 일이 쉽게 풀렸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솔직함이란 실행하기에 어려운 일이어서 집 문제나 배우자 관계에 대해 쉽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오로지 문제는 다섯 남매의 몫이고 해결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 운이 따르는 일도 문제지만, 특정한 한 가지 일에 지독하게 운이 없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스스로 만든 문제이고, 감당하며 사는 게 인생이니 어쩔 수 없다. 앞으로 더욱 어려운 일이 많아질 것은 뻔한 일이다. 돈은 행복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문제를 해결해준다. 적어도 돈 걱정은 안 하게 해주니 말이다. 늦게나마 남자가 잘 한 생각이 있다면 바로 돈을 버는 일에 욕심을 내기로 한 일이다. 다 떠나서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대개 더 많은 성취를 이루고, 들이는 시간에 비례해 지식과 능숙함이 늘어난다.
남자의 큰누나 이름은 김애란이고 간호 전문대학원을 나온 남매중에서 가장 예쁘기로 인정을 받은 맏이다.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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