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의 서재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지구빵집 2021. 12. 15. 10:34
반응형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미치코 가쿠타니 저/정희진 해제/김영선 역 | 돌베개 | 2019년 10월 04일 | 원서 : The Death of Truth 

 

한나 아렌트는 1951년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전체주의 지배의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 당원이나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사실과 허구의 차이(경험의 실재성), 진짜와 가짜의 차이(사고의 기준)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썼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의 정치와 문화 풍경을 오싹하리만치 잘 보여주는 듯이 들린다. 

 

우리는 정책과 사안에 대해 논쟁할 수 있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논쟁은 분열을 일으키는 수사와 거짓말로 감정과 두려움에 원초적으로 호소하기보다는 공통된 사실에 기초해야 한다. 객관적 진실만이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우리가 공무원이 거짓말하는 걸 통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물을지, 또는(피로감에서건 정치적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건) 진실을 외면하고 진실에 대한 무관심을 정상화할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다.

 

인터넷 시대에는 데이터 과부하로 인해 가장 번쩍거리는 것, 다시 말해 가장 큰 목소리, 가장 충격적인 견해가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아 조회수를 늘리고 입소문을 타게 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정보들을 받아들여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으로 쪼그라들고 있다. 사람들은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사소하고 공공연한 일들로 인해 무감각해져 책임 있는 시민의 역할을 잊고 살아간다.  

 

거짓과 혐오가 일상이 된 이유를 저자는 아래와 같은 주제를 통해 많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데 가만히 보면 사실 지금 가장 만연한 문화적 특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성의 쇠퇴와 몰락 - CNN의 진실 지상주의 캠페인 

새로운 문화 전쟁 - 포스트 모더니즘, 해체주의 비판

자아와 주관성의 부상 - 나르시시즘 부상, 자아 급부상, 과학을 비하하기

실재의 소멸 - 초현실과 혼돈의 부상

언어의 포섭 - 언어가 분명하지 않으면 진실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존 르 카레)

필터 버블, 저장탑(사일로 효과), 부족 - 소셜미디어

주의력 결핍

프로파간다와 가짜 뉴스

남의 불행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들. 

 

재미있게 읽었지만 어려웠다. 진실을 찾기 힘든 예를 미국 대통령 선거와 트럼프의 당선을 예로 많이 든다. 저자의 지적에 공감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저자 : 미치코 가쿠타니(Michiko Kakutani): 1998년에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수상한 문학비평가이자 서평가. 「워싱턴포스트」「타임」을 거쳐 1979년 「뉴욕타임스」에 합류해 1983년부터 2017년까지 서평을 담당했다.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알려져 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 수전 손택, 노먼 메일러 등 유명 작가를 향해 독설과 혹평도 서슴지 않는 날카로운 비평을 던져 ‘1인 가미카제’로도 불린다. 2017년 1월에는 책을 주제로 퇴임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과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가쿠타니의 두 번째 책으로, 「뉴욕타임스」를 떠난 후에 출간한 첫 책이자 여러 작가와 예술가들의 인터뷰를 묶은 『피아노 앞 시인』(The Poet at the Piano) 이후 30년 만에 발표한 정치·문화비평이다. 

 

프란시스코 고야. 진리는 죽었다. 1810~1814년

 

책에서 옮김.

 

‘진실의 쇠퇴’(truth decay)라는 말이 ‘가짜 뉴스’와 ‘대안 사실’ 같은, 이제는 익숙한 어구가 포함된 탈진실 시대의 어휘 목록에 합류했다. 랜드연구소는 미국의 공적 생활에서 “사실과 분석의 역할이 줄어드는” 현상을 가리켜 이 말을 썼다. 가짜 뉴스만이 아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백신 접종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가짜 과학, 홀로코스트 수정주의자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활성화하는 가짜 역사, 러시아의 인터넷 트롤들이 만들어내는 페이스북의 가짜 미국인, 그리고 봇(bot)이 만들어내는 소셜미디어의 가짜 팔로어와 가짜 ‘좋아요’도 있다. p.11

 

달리 말하면, 트럼프는 언어를 실제와 정반대 되는 의미로 사용해 혼란을 일으키는 오웰류의 요술을 부린다. “전쟁은 평화다”, “자유는 노예상태다”, “무지는 힘이다” 같은 식이다. ‘가짜 뉴스’라는 말을 가져와 뒤집어 이용해서 자신에게 위협이 되거나 호의적이지 않다고 보는 언론의 평판을 떨어뜨리려 할뿐더러, 러시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조사가 “미국 정치 역사상 최대의 마녀사냥”이라고도 했다. 정작 트럼프 본인이 언론, 사법부, FBI, 정보부서 등 자신을 적대한다고 여겨지면 어떤 기관이든 수차례 공격해왔는데도 말이다. p.88

 

“전통적인 제도가 신뢰를 잃으면서, 사람들의 소속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직장의 빈약한 유대관계는 불충분했다.” 사람들은 이에 대응해 생각이 비슷한 이웃, 교회, 사교모임 등 다른 단체를 찾아냄으로써 공동체 의식을 되찾았다. 이런 역학관계는 인터넷에 의해, 다시 말해 특정한 이념의 관점에 영합하는 뉴스 사이트, 특정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게시판, 관심사를 공유하는 편파적 저장탑 안으로 사람들을 한층 더 분류해 넣는 소셜미디어에 의해 빛의 속도로 증폭될 터였다. 밀레니엄 전환기에 이런 분열은 이념보다는 취향과 가치관에 대한 것이었으나 “정당이 삶의 방식을 대변하게 되고 삶의 방식이 공동체를 규정하게 되면서 모든 게 공화당 지지자 또는 민주당 지지자로 나눌 수 있는 듯이 보인다”라고 비숍은 썼다. 모든 것이란 의료보험이나 투표권이나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견해만이 아니라 쇼핑하는 곳, 먹는 것, 보는 영화의 종류를 또한 의미한다. p.99

 

레닌은 언젠가 자신의 선동적인 언어가 “증오와 혐오와 경멸을 불러일으키려고 의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어법은 “상대 계급을 납득시키는 게 아니라 깨부수려고, 적의 잘못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적을 파괴하려고, 적의 조직을 지구 상에서 전멸시키려고 의도한 것이었다. 이런 어법은 실로 적에 대한 최악의 생각, 최악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성격의 것이다.” 이 모두가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공격하면서 사용한 언어(“힐러리 클린턴을 가둬라”), 영국 브렉시트 운동의 과격한 지지자들이 사용한 언어, 대서양 양쪽 해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우파 포퓰리즘 운동이 점점 더 많이 사용하는 언어의 원형처럼 들린다. p.128

 

러시아의 소방호스 시스템이 풀어놓은 엄청난 양의 허위 정보는 트럼프와 그의 공화당 조력자들과 미디어의 기관원(apparatchik)들이 쏟아내는 좀 더 즉흥적이지만 마찬가지로 방대한 양의 거짓말, 추문, 충격적 언사와 무척 비슷하다. 이들은 사람들을 압도하고 무감각하게 만드는 동시에 비정상의 경계를 낮춰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정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모욕이 모욕에 대한 피로감에 밀려나고 이 피로감은 냉소주의와 권태에 밀려나, 거짓말을 퍼뜨리는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전 체스 세계 챔피언이자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러시아 지도자인 가리 카스파로프는 2016년 12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현대 프로파간다의 요점은 잘못된 정보를 전하거나 어떤 의제를 밀어붙이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의 비판적 사고를 소진시키는 것, 진실을 무효화하는 것이기도 하다.”p.134

 

가장 끔찍한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말, 그리고 심히 잔인한 말이 흔히 윙크나 조롱과 함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으면 흔히 그냥 농담이라고 대응한다. 트럼프가 공격적인 발언을 하면 백악관 보좌관들이 그가 그냥 농담을 하는 거라거나 그의 말을 오해한 거라고 말하는 것과 아주 비슷한 식이다. p.147

 

나는 이 책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제기한 문제를 공유하기를 절실히 바란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구할 수는 없어도 잠시나마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당대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사유의 정거장이다.

 

- 해제 -

 

미치코 가쿠타니는 진실이 있다고 믿으며, 트럼프 시대가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와 그 폐해를 성실히 보고한다. 공감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트럼프 보고서가 아닐 수 없다. (…) 이제 사람들은 ‘노오력’과 같은 자기 계발조차 불가능한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안다. 대신, 타인을 밀치고 혐오하고 ‘관종’이 됨으로써 자신을 실현하려고 한다. 트럼프의 의미는 이런 시대의 모델이라는 데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실천은 내 주변의 ‘트럼프들’과 싸우는 것이다. ‘우리 안의 파시즘’처럼 ‘내 안의 트럼프’도 극복해야겠지만, 아직은 트럼프들보다 트럼프들을 피해 다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희망적이라고 본다. 나를 포함해 우울증, 도시 탈출, “눈을 감고 살자”는 다짐, ‘욜로족’이 등장하고 있는, 이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 모두가 트럼프가 되기 전에 말이다. 이 책이 필독서인 이유다. - 정희진(여성학 연구자), 해제 중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거짓과 혐오는 어떻게 일상이 되었나.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