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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의 서재

죽음이 물었다. 아나 아란치스 지음, Ana Claudia Quintana Aran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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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탄생에 대해 모르듯이 죽음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 오히려 죽음의 물리적인 특성 자체를 두려워한다기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더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차갑게 식은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상태가 자기에게 온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인다. 반면 죽음으로 이르는 과정 -노화, 치매, 요양원 등 우리가 정상적인 경로라고 생각하는-은 주위에서 흔하게 마주칠 수 있는 장면이라서 그 과정은 오싹하게 선명하므로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죽음이 물었다' 이 책은 브라질의 완호의료 전문의 아나 아란치스가 쓴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완화의료에 대한 이야기와 죽어가는 환자 본인과 주위사람의 애도, 죽음이 주는 의미, 잘 죽는 방법에 관해 쉽고 명확하게 설명한다. 죽음도 태양과 같이 너무나 명백해서 오히려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더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길은 쉽지 않다. 살아갈 때와 똑같은 수고가 필요한 일이다.  

 

완화의료란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증상, 특히 통증을 환화 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에 관한 의학이다. 신생아실에서 돌봄으로 인생이 시작하는 것처럼 인생의 마지막에는 완화의료 전문가가 돌본다. 완화의료자를 흔희 안락사 시켜주는 의사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완화의료는 오히려 안락사를 막아준다. 통증이 없어지고 증상이 좋아지면, 환자는 죽음을 찾아가는 일에 집착하지 않는다.

 

죽음이라는 시련이 오면 우리는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이라는 5단계를 밟는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관찰한 죽음의 5단계는 환자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삶의 마지막을 모두 정리하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모두의 희망이지만 인생의 처음과 마지막 순간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WHO (세계 보건기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정의: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과 관련된 문제에 직면한 환자와 그 가족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접근으로, 조기 진단과 정확한 평가, 통증과 기타 신체적 문제, 심리 사회적, 영적 문제의 치료를 통해 고통을 미연에 방지하고 완화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법이다. 

 

 

Ana Claudia Quintana Arantes - JDM Profissionais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주는 고통은 죽음이 진행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병에는 확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에 고통이 수반된다. 하지만 고통은 절대적이고, 유일하며, 완전히 개인적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유일하다. 통증도 저마다 유일하다.

 

환자들을 아무리 관찰해도 그들이 어디에서 평화를 발견하는지, 얼마나 많은 죄책감이 혈관에서 콜레스테롤과 함께 흐르는지, 얼마나 큰 공포를 마음에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외로움과 방치로 마음이 병들어 있어도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

 

공감은 위험을 지니고 있지만 연민은 그렇지 않다. 맹목적 공감의 위험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자동차에 백 마일을 갈 수 있는 연료가 들어있다고 하자. 만일 그 차로 백 마일을 간다면 돌아올 연료가 남지 않는다. 공감은 타인의 입장이 되었다가 자신의 입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에 오염될 위험을 막아준다. 공감은 소진될 수 있지만 연민은 무궁무진하다. 연민이 타인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책임감 있게 스스로를 돌보지 않으면서 타인을 돌보는 행위는 분명 위선이다.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환자에게는 고통을 이해해 주고, 의미 있는 무언가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지금 지나가는 나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시간에 관한 한, 우리가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통해 끊임없이 쌓아갈 수 있는 체험뿐이다. 죽음의 과정에서 우리는 살아 있아 있었던 기간, 즉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쓸지 스스로 의식하고 결정할 수 있었던 때와 멀어지게 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던 것들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리란 인식을 동반한다. 일반적인 치료 과정에서는 환자가 자신에 관한 단순한 것들을 이해하는 데 10년은 족히 걸리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죽음의 시간이 오면, 모든 걸 이해하고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결정하는 속도가 빨라지는 듯하다. 마지막 인상이 가장 오래간다. 상실에 임하여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나중에 남길 인상을 결정한다. 병에 걸리면 시간에 대한 인식이 건강했을 때와 확연히 달라진다. 기다리는 시간들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진다. 가장 힘든 일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한 어머니가 죽어가는 자식에게 "이제 가도 돼"라고 말하는 순간은 인간이 신성한 존재가 되는 순간이다.

 

어떤 길이든 같은 곳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좋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결국 죽을 것이다. 우리가 정직하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죽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했든 못 했든, 사랑을 받았든 못 받았든 마찬가지다. 용서를 했든 못 했든 종착지는 같다. 살아 있는 동안에 우리는 어떤 것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것을 원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죽음의 경우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삶의 끝에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5가지 - Ana Claudia Quintana, 노인과 의사. 이미지는 https://www.revistaprosaversoearte.com/os-5-maiores-arrependimentos-no-fim-da-vida-por-ana-claudia-quintana-medica-geriatra/

 

 

언제라도 좋으니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때 구하라. p.157

 

살아오면서 많은 선택권을 누렸던 사람들은 죽음이 찾아왔을 때 후회의 영역에 들어서기가 훨씬 더 쉽다. 반면 그저 살아남는 것이라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대개 마지막에 이르면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들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는 확신을 갖는다.

 

진리는 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초월하여 진리를 '체험'할 때만 '영적' 진리와 접할 수 있다. '나는 신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신의 존재를 체험한 사람은 '나는 신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라고 말한다. 영성에 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은 초월의 체험을 삶 그 자체로 여기며 산다.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도,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설명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브로니 웨어의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이라는 책에서 죽음의 문 앞에 이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후회하는 다섯 가지에 대해 말한다. 다섯 가지 후회들 가운데 첫 번째는 다른 사람들이 내게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지 못했다는 후회다.(참고로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내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았더라면, 내 감정을 표현할 용기가 있었더라면,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고 지냈더라면, 나 자신에게 더 많은 행복을 허락했더라면...) 죽음을 앞두고 허비한 삶에 대한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바친 시간,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믿고 한 일에 들인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문제는 아무도 그런 일을 하라고 요구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원해서,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하거나 이기적인 이유 때문에 한 행동이라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이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기 위한 결정들을 (정작 그 사람들은 요구한 적도 없고 심지어 그 결정에 불만을 갖고 있는데도) 내려왔음을 깨닫게 된 이들은 후회로 인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은 아무리 모르핀을 많이 맞아도 여간해서는 진정되지 않는다.

 

돈 미켈 루이스가 쓴 '네 가지 약속'

 

1. 말을 조심하기. 지금은 좋은 말을 할 수 없네요.

2. 속단하지 말기. 미리 내려진 결론은 우리를 에워싸고, 질식시킨다.

3. 자기중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낮은 자존감은 왜곡된 형태의 자기 중심주의다.

4. 늘 최선을 다한다. 가끔 우리의 최선은 까다롭게 굴거나, 집에 틀어박히거나, 화를 내는 것일 수도 있다. 괜찮다. 기분 배지를 단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얻는 법을 배우는 데 공을 들인다. 삶에서 얻는 것들을 온전히 누리며 살기 위해서는 잃는 법을 알아야 한다. 모든 존재적 상실, 그것이 하나의 관계든, 직업이든, 확신이든 모든 상직적 죽음에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첫째, 자신과 타인에 대한 용서가 필요하다. 둘째, 그 상황에서 발생하는 좋은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셋째, 이제 끝나버린 그 시간에 당신이 의미 있는 영향을 미쳤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상실의 수용은 계속되는 삶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

 

인생을 살면서 만나는 상징적 죽음(사랑, 관계, 직업, 확신, 신념의 죽음 등)을 가장 잘 극복하는 방법은 그 안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를 원 없이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갈 길을 갈 수 있다. 관계가 주는 모든 것을 후회 없이 누렸다면 당신은 자유롭다. 당신을 붙잡는 것 혹은 마무리되지 않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그런 사람을 겪어내야만 했던 자신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정서적 불구자로 남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 체험은 어떤 방식으로든 당신을 더 낫고, 더 행복하고, 덜 원통하고, 새로운 관계를 더 잘 맺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스스로를 피해자로 만드는 것만큼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삶 속의 체험들을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지만, 사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체험 자체가 아니라 그 체험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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