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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들 - 박선화 한신대 교수

지구빵집 2023. 7. 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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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들

 

경향신문 박선화 한신대 교수

 

자랑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인정욕구의 발현이다. 과하면 흉하지만 적당한 수준의 ‘상호인정 품앗이’는 사회적 윤활유로 기능하는데, 굳이 안 해도 되는 자랑이 있다면 운동과 독서가 아닐까 싶다. 과시하지 않아도 전달되고, 때론 타인이 더 정확하게 노력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라서다.

 

어떠한 성분과 품질의 식재료를 섭취하고 얼마나 운동을 했는지 자랑하지 않아도 혈색이나 신체의 상태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몸 관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더욱 잘 파악할 것이다. 몸은 몹시도 정직해서 단 1g도 이유 없이 증감하지 않으며, 물만 먹고 찌는 살이나 운 좋게 생기는 근육 같은 것은 없다. 독서도 비슷하다. 과시하지 않아도 언어와 태도를 보면 알 수 있고, 지식과 통찰력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잘 파악할 것이다. 정신도 몸만큼 정직해서 꾸준한 학습과 자기성찰의 노력 없이는 성장과 성숙에 한계가 있고 도태되기도 쉽다.

 

어린 시절 왕성하게 뛰놀며 생성된 근력이 평생 건강의 중추가 되듯, 일찍부터 형성된 풍부한 독서습관은 분명 더 깊이 있고 유연한 사고와 지적 능력 향상으로 사회적 기회와 경쟁력을 제공한다. 나이 들수록 질적 요소가 중요한 것도 공통점이다. 젊은 시절엔 고루 잘 먹고 많이 움직이면 충분하지만 점차 정제와 절제의 노력이 필요하듯 다독(多讀) 이상으로 양서(良書)의 정독은 중요하다.

 

얼마 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독서가 매력 있는 중장년이 되게 만드는가”란 주제가 이슈가 되었다. 매력 있는 사람의 요건은 다양하다. 외모나 재능, 언변 같은 타고난 요소도 있고 재력이나 스펙 같은 후천적 요소도 중요하다. 그러나 젊음이라는 가장 강력한 매력을 상실하고도 꾸준히 빛을 발하는 것은 폭넓은 지식·경험을 통한 균형감과 시야, 고착되지 않은 정신의 유연성이고, 독서는 이런 매력의 형성에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인지 다독하는 모든 중년이 매력적이진 않지만 나이 들어도 매력 있는 이들의 다수는 분명 다독가가 많아 보인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은 타인과 세계에 대한 이해다. 이유를 모르고 던져진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부터,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 이해하기 어려운 무수한 것들이 왜 존재하고 사회에 어떤 기능과 역기능을 하며 어떻게 현명하게 대응해 나가야 하는지까지 이해하는 데 양서만 한 길잡이는 없다.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를 갖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경험이다. 하지만 유한한 시간과 제한된 공간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서는 좋은 책과 영화, 예술 같은 간접 경험과 선대의 지식을 통해 무수한 관계의 시뮬레이션을 학습하며 검증할 수밖에 없어서다. 체험의 한계는 있지만, 다행히 모든 노력이 그렇듯이 독서 역시 시간과 공력을 크게 배신하지는 않는다.

 

꾸준하고 올바른 운동으로 단련된 신체일수록 소화할 수 있는 옷이 많아지듯, 책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독서가 주는 큰 선물이다. 책꽂이의 책과 지식이 쌓이는 만큼 선민의식과 불통이 커진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지식은 음식량과 같아서 섭취할수록 증가하지만, 과식과 편식이 건강에 해가 되듯 편중된 과지식 또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잘못된 운동이 몸을 망치듯 자기 과신에 빠진 독서는 사고를 왜곡시키고 위험한 언행으로 이끌기도 한다. 무능한 옛 선비들이 책만 읽으며 현실에 무지한 삶을 살았던 것처럼 장서 속에 고립된 영혼도 많다.

 

운동도 독서도 방법일 뿐 목적이 아니다. 운동의 미덕이 허물어진 몸과 불필요한 군살들을 정리하며 건강을 되찾아주는 것이듯, 독서의 가장 큰 미덕은 자신의 내면과의 갈등과 헛된 욕망을 성찰하게 해 더 행복하진 않아도 더 불행한 사람이 되지 않게 도와준다는 점이다. 이 풍진세상에 그것만으로 충분한데 장서와 독서량을 자랑할 필요가 있을까. 

 

 

 

자랑하지 않아도 충분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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