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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인 묘지
- 채인숙
이방인들이 그들의 묘지로 당신을 데려 갔다
서둘러 이름을 새기고 하얀 나무 십자가를 세웠다
당신이 죽고서야 떠나 왔다는 먼 나라의 당신 이름을 보았다
남은 생은 무덤에 이마를 대고 살아 가야지
낡은 필름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묘지 위로 햇볕이 내려 앉았다
우리는 함께 잊자고 했다
잊을 수 있는 것들이 아직 있어서 좋았다
당신이 살았던 나라의 항구에는 계절마다 다른 꽃이 핀다고 했던가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에 지쳐버리던 아침,
계절이 바뀐다는 건 어떤 것일까 나는 생각하였다
화란의 말을 잊었으므로 돌아갈 수 없다는 편지를 쓰지 못했다
눈 먼 자바의 물소처럼 소리를 죽여 혼자 울었다
무엇을 위해 떠나왔는지
누구를 위해 돌아가야 하는지
세월은 이유를 남기지 않고 흘렀다
당신만이 유일했으나 당신만이 죽었다
묘비 위로 푸른 이끼가 지붕처럼 덮여 갔다
나의 위로는 모든 당신이었으나
당신의 위로는 언제나 당신 눈물 뿐이었다
*350년 동안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은 인도네시아에는 수도인 자카르타에만 5개 이상의 네덜란드 인 묘지(Makam Belanda)가 남아 있다.
(현대시학 2018년 5,6월호 발표작)
글: 채인숙 / 시인. 2015년 <실천문학> 오장환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라디오와 TV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였고, 인도네시아 문화 예술에 관한 칼럼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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