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가을을 오랫동안 보다. 국제 항공우주 방위산업 전시회. ADEX2017. 서울공항.

지구빵집 2017. 10. 23. 13:35
반응형

 

가을을 오랫동안 보다. 국제 항공우주 방위산업 전시회. ADEX2017. 성남 서울공항.

 

 

기억이란 무언가? 우리 뇌 신경망 속에 차지하고 있는 기억이 저장된 자리는 온전하게 있지 않고 편리한 대로, 의식하지 못한 채로, 왜곡하고 조작하고 부정하며 부단히 변화하는 생각들이다. 그런 기억의 집합체로서의 지나간 삶이란 얼마나 진실한 것인가? 기억을 믿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가능한 한 기억이 짧더라도, 가장 인접한 시간 안에, 뚜렷한 영상이 남아 있을 때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무수히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어제도, 아니 오늘 아침에도. 

 

느닷없이 전시회에 가자고 했다. 2년마다 열리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방위산업 ADEX(Seoul International Aerospace & Defence Exibition) 전시회는 표 구하기가 어렵다. 짙은 감청색 외투에 청바지가 잘 어울렸다. 원색 무늬의 스카프를 두르고 나왔다. 나는 반팔이 뭐냐? 학여울역에서 만났다. 그리고 서울공항 전시장으로 갔다. 간신히 입구를 찾아갔더니 사람이 정말 많았다. 전시장을 구경했다. 많은 방산업체들이 나와 있었고, 거기다가 외국의 내로라하는 항공 우주 관련 기업들까지 제품 무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비행기가 나는 모습은 처음이다. 예전에도 와 봤지만 전시장만 둘러보느라 활주로 가까이에서 직접 곡예비행을 볼 기회가 없었다. 바람이 많이 불어 비행기들이 그리는 태극무늬, 글자들, 색색의 연기들은 금세 흩어졌다. 서울공항 주변의 넓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가슴속까지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높은 하늘 끝으로 솟구치고, 때로는 급속하게 바닥을 향해 낙하하기도 했다. 우리 마음이 저렇게 요동치지 않나 싶다.  

 

1시까지 전시회 구경을 했다. 전시장은 A 전시장, B 전시장이 대기업들 전시장이고 C, D 전시장은 관련 산업 전시장이었다. 모두 구경을 하고 2시에 Black Eagles 곡예비행을 기다리며 푸드 트럭에서 한참을 기다려 슈림프로 점심을 먹었다. 활주로 주변의 콘크리트 바닥에 앉아서 햇살을 등지고 앉았다. 그다지 맛있지는 않았다. 여자는 속이 좋지 않아 내가 싸온 사과 2개를 연신 먹었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Black Eagles 곡예비행은 정말 멋졌다. 주변 하늘이 좁았다. 8대가 비행하며 하늘에 그리는 궤적은 모두 예술이었다. 바로 머리 위를 지날 때는 소리에 놀랐고, 마주 오던 비행기가 엇갈려 지나갈 때는 부딪힐까 봐 소리를 질렀다. 

 

서서히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모란역까지 걸어가 지하철을 탔다. 넓은 활주로와 공항은 가을바람이 가득했다. 같이 걷는 길의 나무들은 서둘러 잎들을 털어내고 있었다. 도심의 가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설사 오더라도 단풍이 아니라 괴사 하는 나뭇잎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을이 온 지 한참 되었다. 

 

분당선인 수서 역에서 학여울까지 가는 3호선으로 지하철을 갈아탔다. 지하철은 약간 붐볐지만 자리가 나기도 했다. 대치역에 내려서 주변의 까르보네 스파게티 전문점으로 갔다. 가방을 열어 역경 잡설을 읽으면 이야기했다.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고, 논문은 잘 썼다고, 아이는 잘 있다고... 우리가 있는 옆자리에 고등학생 남 여학생이 앉아 식사를 한다. 서로 얼굴만 바라보며 파스타를 먹으며 바로 옆에서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소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옆 테이블을 보라고 눈짓을 하며 말했다. 

 

"이쁘지 않니?" 

 

"그래.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어. 괜찮아." 여자가 말했다. 항상 나보다 먼저 내가 할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내가 설명하기도 전이다.   

 

"옆에 고등학생들은 참 이쁘게 만난다. 우리 아들도 이렇게 이쁘게 사귀고 만나면 좋을 텐데. 이 녀석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남자가 말했다.

 

"변할 거야. 조용히 기다려. 데면데면해. 아이가 겁이 나서 너에게 말을 걸 거야." 여자가 말했다.

 

가게는 2명이 앉는 테이블이 5개니까 의자가 10개 정도 있는 작은 가게다. 처음 와 본 친구로부터 알게 된 곳인데 맛이 좋다고 한다. 토마토 파스타와 리소토를 시켰다. 해산물 파스타를 먹고도 반을 남겨준 리소토를 먹었다. 이런 식탐은 곧 없어질 거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많이 먹게 된다. 달리기에 한껏 에너지를 써버리는 나의 몸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다. 시간이 어느새 다 되었다. 집으로 가야 한다. 내가 가는 곳까지 바래다준다고 한다. 

 

"저기 진지방 순댓국에서 밥을 먹고, 여기 호프집에서 한 잔 하고 917번 버스 타고 가면 된다. 알았니?" 

 

"다음에 오라고?"

 

"왜 네가 오지 그러니?" 

 

비행기 조종사 면허, 대형버스, 추레라, 기중기, 포클레인, 지게차 같은 중장비 운전면허를 따야겠다고 말했다. 왜 그런 걸 따려고? 아니, 멋지잖아?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이제 신호등을 건너야 한다. 파란불이다. 

 

"잘 지내." 

"또 봐"

"시간 되면, 너 말이야."

 

신호등을 건넜다. 건너는 동안 뒤돌아 보니 신호등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한 번도 돌아보는 법이 없는 여자였다. 여자의 삶이 그랬다. 지나온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이가 드는 건가? 그 여자도 늙는 건가? 기분이 이상했다. 반대편으로 건너와서 돌아다보니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가는 걸 바라보다니.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큰 소리로 "잘 지내!"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돌아서 간다. 나도 돌아서 학여울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간다. 이 가을이 아주 길었으면 한다. -見河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