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돌아보는 법이 없는 사람이다. 지나온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지구빵집 2017. 12. 3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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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선인 수서역에서 학여울까지 가는 3호선으로 지하철을 갈아탔다. 지하철은 약간 붐볐지만, 자리가 나기도 했다. 대치역에 내려서 주변의 까르보네 스파케티 전문점으로 갔다. 여자는 옆에 있던 내 가방을 자기 맘대로 열어 역경잡설을 읽으며 이야기했다. 하는 일이 점점 많아진다고, 논문은 잘 썼다고, 아이는 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있는 옆자리에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여학생이 앉아 식사한다. 서로 얼굴만 바라본다. 파스타를 먹으며 바로 옆에서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소리로 이야기한다. 내가 옆 테이블을 보라고 눈짓을 하며 말했다. 


"이쁘지 않니?"


"그래. 네가 무슨 생각 하는지 알겠어. 괜찮아." 그녀는 항상 나보다 먼저 내가 할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내가 설명하기도 전이다.


"옆에 고등학생들은 참 이쁘게도 만난다. 우리 아들도 이렇게 이쁘게 사귀고 만나면 좋을 텐데. 이 녀석은 왜 그런지 모르겠어." 


"변할거야. 조용히 기다려. 데면데면해. 아이가 겁이나서 너에게 말을 걸거야." 친절하게 이야기 한다.

 

가게는 2명이 앉는 테이블이 5개니까 의자가 10개 정도 있는 작은 가게다. 처음 와 본 친구로부터 몇 단계를 거처 알게 된 곳인데 맛이 좋다고 한다. 토마토 파스타와  해산물 리조또를 시켰다. 여자는 파스타를 먹다가 반을 남겨 주었다. 요즈음 겪는 이런 식탐은 곧 없어질 거라고 했다. 자연스럽게 많이 먹게 된다. 몸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한다. 시간이 다 되었다. 집으로 가야 한다. 신호등까지 바래다 준다고 한다. 


"저기 진지방 순댓국에서 밥을 먹고, 여기 호프집에서 한잔하고 917번 버스 타고 가면 된다. 알았니?" 여자는 신이 나서 말했다.


"다음에 오라고?" 


"왜 네가 오지 그러니?" 그 여자가 나에게 와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겁이 많다. 모든 일은 피해야 하는 일이다. 아마도 그렇게 알고 있어야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비행기 조종사 면허, 대형버스, 트레일러, 기중기, 굴착기, 지게차 같은 중장비 운전면허를 따야겠어." 


"왜 그런 걸 따려고?"


"아니, 멌지잖아?" 한바탕 신나게 웃었다. 이제 신호등 있는 건널목을 건너야 한다. 파란불이 빠르게 들어왔다.

 

"잘 지내." 여자가 말했다.


"그래 또 봐. 시간 없어도 시간 내!" 남자가 힘주어 말했다.


"시간 되면, 너 말야." 오히려 나를 보고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한다.


신호등을 건넜다. 건너는 동안 뒤돌아보았다. 여자는 신호등 옆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을 흔든다. 한 번도 돌아보는 법이 없는 여자였다. 여자의 삶이 그랬다. 지나온 길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나이가 드는 건가? 기분이 이상했다. 횡단보도를 지나 반대편으로 와서 돌아았다.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가는 걸 바라보다니, 그렇게 오랫동안.


나는 큰 소리로 "잘지내!"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돌아서 간다. 나도 학여울역 주차장에 세워둔 차로 간다. 이 가을이 아주 길었으면 한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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