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오랜 시간 만난 친구들이 모두 모였다. 다 큰 대학생 아이를 데리고 먼 데서 수원까지 모였다. 나를 비롯한 몇 놈은 혼자 왔다. 모임 후 집까지 돌아가야 하는 긴 일정이 있는 놈도 있다. 특별히 기념할 만한 것도 없다. 딱히 볼 이유도 없지만 그래서 딱히 만나면 늘 즐겁다. 이들이 없는 날들이, 새해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끝까지 오래 건강하게 살아남기를 바란다. 중학교부터 만났으니 38년 동안 보았고, 대학교 때 만난 놈들은 30년째 보고 있다.
세월을 누가 짧다고 하나. 재보기나 했나? 세월이 그렇게 단순하게 길이를 말하는 식으로 길고 짧다고 말하는 게 의미가 있나? 세월은 들어있는 무게에 관한 일이다. 무엇이 들었냐도 상관이 없다. 모든 삶이 녹아있는 세월은 절대 짧지가 않다. 우리가 채워 넣고 있고, 끊임없이 채워 넣은 무게에 관해서만 의미가 있다.
내 친구인 남자의 와이프가 그 여자의 친한 친구이다. 와이프는 딸 두 명을 데리고 나왔다. 그 여자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적당히 건배도 하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든 소맥 두 세잔을 하고 나서 와이프에게 갔다. 앞에는 두 딸이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다. 간간이 남편인 놈에게 소식듣고 지내는데 이렇게 만나 마주하고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와이프는 반갑게 옆에 앉아 이것저것 물어본다.
"늘 그렇지 뭐. 너는 잘 지내지? 그 여자 만난다며? 남편이 가끔 이야기해. 같이 달리기도 한다며?" 궁금한 게 많다고 했다.
"여자 하고는 연락 자주 하니?" 가끔은 서로 연락하고 지낸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말하기가 거북했다.
"그 여자가 중요하게 생각 안 하니 나도 중요하게 생각 안 하려고 하는 중이야. 하하" 억지로 말했다. 와이프는 그게 거짓말이란 걸 알고 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너무 익숙하게 많이 봐서 그렇다. 남자의 알 수 없는 집착, 이유 없는 무한한 애정과 몰입을 알고 있는 와이프다. 가끔은 남편을 통해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썩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혹시 이 와이프란 사람이 우리를 멀리 떼어 놓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내 친구를 향한 끝없는 헌신과 애정에 비해 친구는 늘 덤덤했다. 아마도 와이프는 나를 보면서 자기에게도 저런 헌신적인 애정을 좀 바라기도 했을 터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향해 있다는 사실이 실어서 그와 나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건강은 어떠니?" 얼굴에 살이 많아 보였다. 슬픔은 얕고, 인내가 깊은 얼굴에 웃음 짓는 표정은 무어라 설명하기 힘들었다.
"그냥 가끔 보는 거지 뭐." 남자는 무덤덤 하게 이야기한다.
"애들 참 잘 키웠다. 고생 많이 했겠다. 힘들었겠네. 이젠 너의 삶을 살아도 돼."라고 말했다. 와이프의 눈에 눈물이 모이는데 애써 고개를 돌린다. 나도 눈물이 약간 나는데 참을만 했다.
"애들이 희망이야. 애들 때문에 살아. 아프긴 아픈데 지낼만해." 와이프는 애써 웃으며 이야기한다.
여기 앉자마자 소주를 한잔 따라준 작은 딸에게 5만원짜리를 꺼내 용돈을 준다. 나는 딸 애들이 모를 수도 있는, 아니 모르는 이야기를 했다. 왠지 알고 있으면 하길 바랬다. 어쩌면 와이프란 여자가 다 이야기했을지도 모른다. 실제 나를 만나 얼굴을 보며 이야기 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저씨가 소개해준 아빠하고, 그 여자가 데리고 나온 엄마와 결혼 한 거야." 하고 말했다. 예쁜 딸이이의 눈이 동그래진다. 정말이예요?
"맞아, 그때가 크리스마스 이브지? 그 날 너는 아빠를 데려오고, 그 여자는 엄마를 데려왔었어." 여자는 잠깐 그 날을 회상하듯 멈칫하며 이야기 했다.
"니들 엄마 아빠는 되고, 나는 안되었어. 하하" 무엇이 좋은 지 남자는 떠벌리고 있었다. 남자는 인제 그만 하기로 한다.
"잘 지내, 정말 건강해야 해. 네가 어떤지 몰라, 그리고 남편한테 묻지도 않아. 내가 좀 그래. 다음에 다시 보자. 애들이 참 너 닮아서 이쁘다. 너 정말 대단해."
마지막 인사를 하는 동안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나간 날들을 기억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나중에 친구를 만나서 그 녀석의 와이프 이야길 했다. 와이프는 9년 전에 유방암으로 판정을 받았다. 약물치료를 받고, 수술을 하여 완치되기까지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올해 암이 재발했다고 한다. 다시 또 치료를 받으러 다닌다고 했다. 힘들겠다고 했더니, 이미 달관한 놈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좋은 일은 알아볼 새도 없이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어쩌다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그런 녀석이다.
수원 우만동 본갈비에서 그다지 맛이 없는 갈비를 먹었다. 순전히 사주니까 먹은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약간의 이익을 본 놈이 사준다고 해서 먹은 거다. 대구로 가는 친구 놈의 차 시간은 연장되었고, 몇 놈은 인덕원까지 왔다. 사조 참치 들러서 빛깔 좋은 참치회를 먹고 새벽이 다 되어서 한 녀석은 용산역으로 가고 나머지는 각자 집으로 헤어졌다.
아침 11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아침을 먹고 대공원 산책과 국립 현대 미술관 과천관을 구경했다. 리프트는 겨울에 절대 타지 말 것! 너무 추웠다. 2017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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