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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나를 알아야 한다고, 나에게 오는 길을 알려줘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구빵집 2018. 4. 13.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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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와 관계를 규정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명확히 관계를 규정할 수 없는 일은 슬픈 일이다. 그렇다고 하더라고 미리 규정된 관계는 얼마나 절망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관계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능력이 없다. 관계는 무조건 피해야 하는 일로 알고 있다. 특히 새로 만나는 사람은 경계하고 또 경계하도록 훈련 받았다. 운명이란 언제나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오랜 시간을 한 사람 곁에 머물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간혹 인적이 드믄 곳으로 떠나 살아도 근처 일정한 거리 반경에는 항상 그 사람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 마디의 예고나 기척없이 일어날까. 그 사람도 끊임없이 지나간 시간을 간직하고 있다.

 

  그를 만나고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아름답다는 말이다. 강의 할 때든, 어디서도 기회가 되면 하는 말이다. 아름답다는 단어는 어디에나 잘 어울린다. 어울리는 만큼 가만히 보면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사람, 아름다운 풍경, 그림, 거리, 카페, 책, 나무, 시간 등 모두가 아름다워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사소하고 하찮게 생각하던 일상이 차곡차곡 포개져 아름다운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는 놀라운 경험의 연속이다. 그렇게 보아주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렇다. 

 

  좋은 관계를 맺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항상 서로 눈을 가린채 아슬아슬한 길을 걷는 일이다. 서로가 잡은 손이 없다면 너무나 무모한 행위다. 사실 좋은 관계란 사람을 믿고, 의지하고, 내맡기는 일이라서 한 순간 자신의 존재를 상실 할 수도 있는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부정하기 힘든 증거를 제시하고, 과감하게 선언하고, 진심으로 설득하는 일을 해 나가기는 쉽지 않다. 마음과 몸으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연약한 개인에게 버티기 힘든 일이다. 서로가 바라는 일이면서도 감행하기 어려운 일이 도처에 널려 있다. 진심으로 함께 하고 싶은 위험한 세상을 그저 바라보고 있다. 

 

  여자는 안 어울릴듯 보이는 일을 잘 어울리게 한다. 주로 걸어서 다니고, 택시는 거의 타지 않는다. 자기 차를 거의 운전하지 않는다. 늘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다. 특별한 식당을 가지 않는다. 그저 눈에 띄는 막연한 곳을 기대하지 않고 간다. 소란하거나 조용한 곳보다는 실내 천정이 높은 카페를 좋아한다. 빨간 정장을 입고 순대국을 먹는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음식을 시킬 때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킨다. 가끔 입는 청바지가 잘 어울인다. 평범한 체크무늬 옷을 잘 입는다. 애써 장식하지 않는다. 장신구나 스카프, 시계, 팔찌 같은 악세사리가 자주 바뀌지 않는다. 좋아하는 신발이 정해져 있다. 어깨부터 손가락에 이르는 길이는 길고 야위어서 가냘픈 팔이 예쁘다. 

 

  언제는 자기의 이런 모습을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마음속 상처가 자기를 할퀴는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이야길 했다. 용인된 폭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냥 참고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여자가 한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굳이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었다.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더 이상 모르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모두 알거나 전혀 몰라도 달라지는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너는 나를 잘 몰라. 아직도 나를 알려면 한참 멀었어!" 

 

  그에게 나한테 오는 길을 알려주고싶었다. 밤 길을 걸을때 하얀 조약돌이 이정표가 되듯 길을 보여주고, 어떤 길인지 설명하고 싶었다. 나의 모두를 받아주면서 다가오지 않는 일도 좋다. 그가 참을 수만 있다면. 아니면 같은 곳을 바라보는 단지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으로 있어도 좋다. 세세한 길을 알려주어도 올 지 안 올 지 모르지만 그 길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끝이 보이겠지만 그때까지는 함께 하고 싶다. 힘들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프니까. 

 

  그에게 들어오는 입구를 알려주었고, 가끔은 헤메게 만들었다. 그는 내가 자기를 조금은 건조하지만 고양된 모습으로 살도록 이끌어 주었다고 말했다. 고맙다며 여러 번 빚을 진 사람처럼 굴었다. 그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는 자기가 살아 온 세상과 많이 다르다고 했다. 그에게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사람도 잘 알고 있다. 문득 잘 찾아오고, 잘 달릴 수 있도록 신발을 사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72. 579 현관 비번. 문 비번-見河-

 

 

 

 

 

 

 

1072. 579 현관비번. 문비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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