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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바람대로 변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지구빵집 2018. 4. 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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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바람대로 변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동호회 회원의 부친상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이나 화장장, 공원묘지에 가면 이상하게도 강렬한 성욕을 느끼게 된다. 굳이 복장이나 여자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분위기에 가까운 이야기다. 강렬하게 삶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솟아나는데 그게 어쩌면 성욕이라고 표현하고 싶기도 하다. 사실 죽음이란 모든 욕구와 욕망하는 대상의 상실이다. 죽음은 자고 먹고 섹스하는 것을 하나도 할 수 없게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생각하는 모든 욕구와 충족에 대한 강렬한 욕망이다. 겉으로 표시되거나 드러나지 않는 욕망까지 모든 총합을 우리는 삶이라고 부른다. 모든 육체와 정신이 사라지고, 환한 불이 꺼진, 심장은 정지하고 피까지 굳어버린 죽은 욕망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 밑바닥부터 올라오는 성욕을 느낀다. 


"그래, 아직 난 아냐. 아직 나는 꺼지지 않았어, 난 살 거라고, 살아 있을 거라고!" 


나의 인식은 강하게 반발한다. 반발의 표현이 섹스의 욕망으로 분출되는지 모른다. 특히 상갓집의 분위기가 좋다. 소란하지 않고, 매우 슬프지만 않다면 한참 동안 있어도 싫증 나지 않는다. 죽음을 가장 가까이에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곳에 가면 삶이 주는 위안과 이기적인 욕망의 정화를 경험하기도 한다. 주기적으로 가는 일이 자주 생겨도 좋을 것이다. 그게 우리 집안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꽃으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플로리스트 누나를 만났다. 하시는 일이 많다. 꽃 사업운영, 교회 꽃장식, 결혼식장 세팅, 강의 등 꽃으로 하는 모든 일을 하시는 누님이시다. 동그란 얼굴에 표정이 늘 밝은 누나다. 


"일 좀 줄이시고 같이 달려요." 내가 말했다. 사실 자주 만나지 못하고, 친분도 없어서 잘 알지 못하니 의례적인 말이었다.


"내가 일해야 일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일을 줄 수 있거든요."


쉴 수 없다고 한다. 누나는 애써 핑계를 말하거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는 분이다. 항상 그대로 말씀하시는 분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늘 미스테리한 분이시라 그런지 늘 궁금하긴 하다. 


"손이 얼마나 억센지, 꽃을 다루는 사람이 아냐. 함 바바라." 


얼마전 횟집에서 미나리 삼겹살집으로 메뉴를 바꾼 순진 누나가 말했다. 


말없이 손을 들어 보여준다. 손이 상처투성이다. 손목까지 상처가 많았다. 아무는 상처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딱정이가 선명하다. 밴드와 반창고가 붙어 있다. 항상 밝은 얼굴만큼 손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모양이 이상해진 발레리나의 발이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가 하는 일을 꼭 좋아할 필요는 없다. 좋아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현실이 싫다면 미친개처럼 날뛰거나, 욕을 하고 신을 저주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모두를 받아들여야 하는 때가 반드시 온다. 사실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울한 말을 요즈음은 왜 자꾸 떠올리는 지 알 수 없다.


"제가 꽃을 매일 만진다고 손이 아름다울거라고 착각하진 마세요. 참 어려운 일을 겪은 거예요.  셀 수 없이 많은 작업을 하고 있고, 손이 익숙해져야 원하는 경지에 다다라요. 축구선수나 발레리나의 발, 요리를 하는 순진 씨도 그렇고요. 당신도 많은 시간을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 같은데 진짜 그런 거죠? 멈추지 말고 하길 바래요. 원한다면요."


누나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어지러웠다.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속이 편안한 사람이다. 악을 쓰고 바둥거리는 일에 흥미가 없다. 사실 지금은 어떤 일에도 흥미가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사람이다. 거리에서 부지런히 다니며 일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냥 나는 참 편하게 회사에 다니며 그럭저럭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도 언젠가는 늙고 꺾인다.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것 중에 진짜 아름다운 것은 하나도 없다. 사실 전부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 전부일지도 모른다. 대가나 장인처럼 삶에서 무엇인가 이룬 사람만이 안다. 사실 그건 전달해 줄 수 없는 일이다. 오직 느낌에 도달해 본 사람만 알고 비밀스럽게 구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 발톱이 빠질 때까지 달려보라는 말이 실감이나 날까? 자기 발톱이 빠져봐야 아는 일이다. 그렇게 자기 발톱이 수없이 빠져서 최고가 되었는데 그걸 누구에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지 방법만 알려줄 뿐이다. 뛰고 점프하고 달리고 꽃으로 일하라고 말이다.


언제든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분간은 최대한 예쁘고 단정하게 입고 다니려고 한다. 출근할 때 항상 생각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기분은 아무렇지도 않아. 조금 침울할 뿐이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지." 라고 말하게 된다.


주말 내내 내리는 비는 오란비처럼 많이 쏟아졌다. 낮에 밀린 일을 하느라 조문 시간은 밤 늦게 가게 되었다. 어제 이발을 했고, 나름 깔끔한 복장을 갖추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깔끔한 복장이래봤자 검은색 셔츠에 진한 감청색 상하 양복이 전부였다. 검은양말, 검은구두까지 상가집은 늘 검은색으로 통일된다. 


"도착하자마자 가는 모습 보여주려고 언제 오느냐고 물어본 거니?" 


현관 입구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는 여자를 잠깐 보고 보냈다. 여러 선배님과 인사하느라 가는 줄도 몰랐다. 나는 앞으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물질기반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을 줄이고 싶었다. 그러니까 먹고 살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일을 되도록 일찍 그만두고 싶었다. 그게 또 여자를 만나는 일이라면 나는 줄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시간, 세월을 뛰어넘으려는 바보 같은 짓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머하니? 일하는 중이지? 봄날이 너무 좋다. 이 말을 할 사람이 필요했어. 오늘 하루도 빛나는 날! 끊는다." 


자기 할 말만 한다. 하여튼 좋았다.


이상하게 가끔 하는 대화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특별히 적어 놓지 않으면 무엇을 이야기 했는지도 모른다.


삶에서 우리의 바람대로 변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이라도 가질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의 의지와 바람과 같은 방식과 행위로 성장하는 사람의 모습을 알아볼 수 있을까? 자기를 스스로 빛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을 가질 수 있을까? 그게 친구든 연인이든 직장 상사든 상관은 없다. 누군가와 만든 추억 때문에 평생이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은 또 흐르고 모든 아름다운 것도 소멸한다. 누구나 변하면서 한평생을 산다. 함께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모든 걸 얻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이 감사하고 고마와 한 적이 없었다. 모든 날이 아름다웠다. 앞으로도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다. 생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변했다. 만나는 날이 늘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변했다. 처음으로 가야 한다. 처음 생각했던 마음이 남아 있다면 바로 그곳으로 가야 한다. 누구나 이야기하는 새로운 세상은 아무 의미가 없었고 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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