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간혹 슬픈 생각이 훅하고 밀려 든다.

지구빵집 2019. 7. 1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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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말했다. "이런 게, 이게 바로 일상이야."

 

늘 운동하는 사람은 그나마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정해진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는 사람이 단순함으로 인해 누리는 좋은 점이 많아 보인다. 오히려 열심히 일을 하고, 정신없이 바쁜 사람보다 훨씬 감정에  있어서나, 생활에서도 여유를 가지고 있다. 현실을 보면 정확히 맞는 말이다. 돈은 삶에서 생기는 주름을 좍 펴주는 다리미고, 부자는 여유 있게 일어나 느긋하게 출근하고, 조금만 일한다.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유행이다. 확실한 작은 행복은 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누리는 행복이지, 없는 사람이 엄청 노력해서 누리는 작은 행복은 사실 누릴지 안 누릴지도 확실하지 않은 행복이다.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대부분 큰 행복도 소유하고 있다. 매일매일 일하고, 여유를 갖고, 다시 땀 흘리며 운동하고, 몰입하는 과정은 왠지 좋은 방향으로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인가 잘 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 아침 일찍 달리기 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간다.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책을 읽으며 아이가 깰 때를 기다린다. 아이는 정오가 돼서야 잠이 깨나 보다.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한다. 계란을 두 개 풀고, 매운 고추 가루를 풀고 콩나물을 얹어 라면을 맛있게 끓여준다. 오늘 삼겹살 구워 먹는 모임이 있는데, 아직은 연락이 오기 전이니 열심히 집안일을 한다.  

  "고기가 맛있다. 와서 상추 하고 먹고 가, 자식아." 그가 문자를 보냈다.

  늘 신경 쓰는 걸 감추려고 막 대하듯이 말한다. 여자가 가끔 보여주는 소극적 일탈이다. 한 번도 깍듯한 예절을 놓치는 사람이 아닌 여자는 반듯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 사람이 조금이라도 맘대로 하고 싶다는 표현이 바로 저런 거다. 말이라도 좀 막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표현이다. 늘 귀엽다. 두려움이 많은 여자는 거침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더욱 조심하고 있다는 의미다.

여름이 막 시작되어서 햇살은 뜨겁다. 구름은 아주 낮게 도로에 주저 않아있다. 오랜만에 먼지 하나 없는 날씨라 하늘과 구름 대비가 선명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선배 집에 처음 방문이라 임아트에 들러 화장지와 와인을 한 병 산다. 주위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데 기본만 잘하고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사소한 배려조차 빠뜨리는 법이 없다. 집에 도착하니 동료 여럿이 와 있다. 얼마 전에 집을 짓고 주인집으로 사는 선배네 집이다. 그는 선배가 텃밭에서 막 뜯어온 고추와 상추를 씻는다. 일을 깔끔하게 잘하는 그는 꼼꼼하게 상추를 씻고 있다. 남자는 옆에 다가가서 본다.

"이런 게 바로 일상이야. 일상이 사소하다고 말은 하면서 넌 무언가 대단한 게 있다는 생각을 하네?" 그가 말했다. 

남자가 며칠 전에 일상을 같이 하지 못해 침울해하는 글을 보고 여자는 남자를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말한다. 

"일상을 함께 못해 화난 걸 봤구나?" 남자는 말했다. 

남자와 여자를 이어주는 유일한 선은 함께 보는 책과 글쓰기였다. 늘 남자가 쓴 글을 잘 읽는 그는 가끔 자기 생각과 다르다든지, 아니면 혹시라도 자기와 닮은 사람이 나오는 글을 보고 이야기한다. 남자는 그런 반응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리는 사람이다. 아무 반응이 없는 일은 섭섭한 일이다. 

"기대할 특별한 일은 없어, 이 사람아. 아무리 나와 일상을 같이 한다고 해도 특별하게 생각할 일은 없다는 말이야." 여자가 말했다.

"몰라, 그건. 한 번도 우리는 일상을 같이 한 적이 없어. 그냥 해보고 싶어. 우리 일상이 어떤지 시험해 보고 싶어." 남자가 말했다.

"시험이라고? 인생이 시험이냐? 해보다 말고, 아니면 말고 하게? 너나 나나 둘 다 모르고 있어도 괜찮아. 당연해. 무얼 알려고 하는데?" 여자가 말했다. 

"알고 싶다는 게 아냐? 일상을 함께 할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야." 남자가 말했다.

"하여튼 네 궤변은 내가 한 번도 당할 수가 없구나. 그렇다고 내가 지는 건 아니야." 여자가 말했다. 

마치 사람이 죽을 때처럼 눈꺼풀이 감기고 훅하고 잠으로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눈꺼풀이 움직이며 눈을 떠보려고 애쓰다가 눈이 떠지는 얼굴을 바라보고 싶었다. 일상에서는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방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몸을 씻고, 잠드는 순간을 보고 싶었다. 사소하고 하찮은 일상을 보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 일상생활에서 보는 구부리고 엎드린 자세와 막 입는 옷차림과 움직이는 몸과 얼굴 표정을 보고 싶었다. 여자와 함께 잠자리에 들거나, 씻거나, 함께 일어나는 일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가장 단순한 일이라서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왜 그런지 가끔 그를 만나러 가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게 분명해서 나도 그 자리에 끼고 싶어 나갈 때 바람처럼 슬픈 생각이 훅하고 밀려든다. 더 이상 열심히 살기에 지치고, 만약에 내가 버티고 간다면 또 얼마나 가야 할지 서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노력한다고 해서 원하는 사람이나 물건을 다 얻을 수는 없다. 슬픈 생각에 더 이상 빠져들기 싫어, 생각을 멈추고 먼산을 바라보고 차창으로 하늘을 바라보지만 그럴수록 침울한 마음은 강해진다.

남자는 삶을 단정히 한다든가, 훌륭한 태도를 키우든가 하는 노력도 하기 싫어졌다고 말했다. 달리기도 모르고 특별히 갖고 싶던 욕심도 없던 때가 그리운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남자는 번아웃은 아니지만 스스로 지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빨리 달리고, 아주 먼 거리를 달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손을 뻗어 무엇인가 움켜쥘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강렬한 삶을 살아온 여자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건지, 아니면 원하는 모든 것을 갖고 싶은 건지 남자는 의자에 기대 눈을 감는다. -見河- 

 

갈현동 동료 집에서 바라본 과천 시내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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