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지.
"너, 좋아 보여. 편안해 보이네." 여자가 말했다.
"그런가? 딱히 바뀐 건 없는데." 남자가 말했다.
"응, 여러 방면으로 다 좋아 보여. 멀리서 봐도 좋고, 가까이서 봐도 괜찮아 보여.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르지. 잘 생각해봐. 하하" 여자가 말했다.
"나쁘든, 좋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지. 만난다면 누구나 영향을 받지 않겠어? 특히 너를 만나는 사람은?" 남자가 말했다.
"놀리는건 아니지?" 그가 말했다.
"하하, 내가 왜? 살아있는 화석 알지? 종의 다양성이 비교적 적지만 진화의 결정적 증거이기도 하고, 진화가 직접 관찰 가능해진 현재에는 진화의 과정을 연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화석 말야. 내가 지금 그래. 너를 만나는 내가 바로 살아있는 화석이지. 안 그래?" 남자가 말했다.
그와 나는 자존심도 강한만큼 자기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다. 20대 초반, 설레고 떨리는 우리 마음을 매일매일 주체할 수 없던 시절에도 우리는 자신을 가장 사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비참하게 만든다거나, 지치고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면 결국 만나지 않았다. 그건 친구들끼리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이 있어서 소중한 줄 몰랐고, 친하면 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너무나 빨리 뒤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몰랐고, 우리 곁에 계속 머무를 줄 알았다. 그래서 사실 신경 쓰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서 변해가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사랑은 '틀린 사랑'이었다.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단계를 넘었고, 늘 변하는 모습이 그의 마음에 들게 하기 어려웠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모든 게 좋아졌다.
"왜 달리기가 좋아?" 그가 말했다.
"미친 듯이 질주해도 아무렇지도 않고, 죽을 때까지 숨찬 것도 좋고, 달리고 나면 시원하잖아!" 남자가 말했다.
"그렇구나. 달리기 뿐만이 아냐, 너라는 애는. 정말 대단해. 있지, 너를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하기도 하고, 가끔 두렵기도 해." 여자가 말했다.
"알고 있어.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가끔 조금은 슬프고 아쉽지만 지나간 거야. 자꾸 기억하지 마. 잊어버리자. 앞으로 그런 생각은 점점 잊힐거야. 안 그러니?" 남자가 말했다.
"그래, 알았어. 음, 요즘 자주 만나게 되네. 5일 동안 매일 널 만난 거 알아? 5일 동안, 일주일에 이틀 빼고 5일 동안 매일 어떻게든 만나게 되네?" 그가 말했다.
"정말? 그래? 왜 그렇게 자주 봤어? 다 적었어?" 남자가 말했다.
"자주 만나는 게 싫어?" 그가 말했다.
"그럴리가 있겠니? 헤어지는 게 싫어서 만나기 싫다면 이해하겠니?" 남자가 말했다.
삶을 자기 몸의 일부처럼 사랑하는 여자는 깨알같이 일정을 적는 습관이 있다. 무엇보다 아주 촘촘하게 일정을 유지하는 여자는 앞으로 일을 줄이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아마 그는 줄이지 못할 것이다. 줄인 시간으로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어떤 부분이 진공상태가 되거나, 움푹 파인 곳이 생기면 무엇이든 오목한 상처로 흘러와 채우는 게 우리 삶의 본성이다. 자연은 진공을 싫어하지만, 아주 빠른 시간에 진공을 채우기도 한다. 우린 서로 대등했다. 어느 한쪽이 비굴해지지 않아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연애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자가 남자를 생각하는 만큼 남자는 억지로 생각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상황이 좋았다. 자기가 좋아할 때 좋아하면 되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더욱 좋아하기로, 좋아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기로 했다.
"수요일은 아마 오전에 영화를 보러 갔어. 목요일은 회의가 있었어. 임원들이 모여서 사업회의 하느라. 금요일은 잠깐이지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가 만났어. 토요일은 모여서 공부하기로 한 날이니까 아침부터 점심까지 같이 있었어. 일요일은 특별 훈련을 마치고 뒤풀이까지 같이 있었어. 내 말이 맞지?" 여자가 말했다.
우리는 늘 변한다. 그것도 아주 일관성 있게 바꿔나간다. 스스로 자신감에 넘쳐 반짝반짝 빛나기도 했고, 이상하게 설레고 흥분한 몸으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기도 했다. 어떨 때는 자신 없고 주눅 든 여자처럼 보였고, 속으로 겁이 많아지거나 눈치만 보는 초라한 여자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밝아지거나 어두워지고, 빛나거나 초라해진다. 당당해지거나 소심해지기도 하고, 편안하거나 불안을 느끼기도 한다. 날 편안하게 해 주고 빛나게 해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걸 계속 상기시키고, 기억해주고, 더욱 빛나게 해 주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같은 말을 했다. "너 편안해 보인다, 좋아 보이네. 무슨 일이야?" 하고 묻는다. 스스로도 이미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나의 달라지는 모습을 사람들이 눈치채고, 좋아하는 모습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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