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그의 세계에 영원히 머무르지 못할지라도.
"남자는 달리가 좋아서 온 게 아니야. 달리는 일은 부수적인 일이었어. 나를 보러 온 거였어. 왜 그것을 몰랐을까?" 하고 여자는 생각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알긴 알았지만 억지로 그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의 세상에 머무는 일도 좋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그가 원한다면 언제라도 역시 그의 세상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다. 아직까지 나의 세계에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나고 오는 날은 깊은 안도감에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여러 일을 가르쳐 주었다.
달리기를 가르치고, 명상하며 자신을 살펴보는 법을 알려주고, 차를 마실 줄 알게 되고, 시를 읽어주었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힘든 일이었고, 그에게 어려운 일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긴 거리를 3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나도 하나의 사소한 인간이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듯 남자도 무엇인가 깨닫기를 바랐다. 여자는 여자대로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신경 쓸 일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 남자가 늘 모든 일을 잘 해내기를 바랐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길 바랐고, 겉으로 보기에도 제법 잘하고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남자는 더 이상 자기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남자는 필요한 것을 다 본 것처럼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좋은 관계 이상으로 더 좋아질 수 없는 거였다. 달리고,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며 지낸 시간이 좋았다면, 단지 마음에 들었다면 그것으로 가치가 충분하다. 아직까지는 다른 사람에게 많이 의지하지 않는 상태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거나 계절을 보내면 모두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우울한 마음으로 같은 시간을 보내면 세상 불행하고 원망스러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직은 보낼 계절이 많이 남았지만 여기서 보낼 계절은 아니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있다. 어떤 단체나 모임이든지 '좋은 사람들의 모임'은 없다. 무엇인가를 잘하거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관심사가 돈이든 운동이든 무엇인가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함께 할 뿐이다. 자전거를 잘 탄다든지, 부자라든지, 직업이 같다든지, 취미가 같다든지, 정치적 성향만 같다든지 하는 무엇인가를 같이 좋아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함께 하는 모임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은 전적으로 자신과 같이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개별적인 사람 하나하나가 자기의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대인관계도 원만하고, 집안에서도 인정받는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그가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우리 자신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상하기도 하고, 나약하고, 겁 많은 소심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달리는 일을 좋아할 뿐이지 다른 면에서는 좋은 품성의 사람 됨됨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착각을 한다. 웬만하면 다 좋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관계 맺는 것을 멈추고 일정 거리 이상으로 떨어져 있는 일도 필요하다. 거리가 있어도 좋은 관계가 언제든 좋은 관계다. 여러 사람을 보는 일은 좀 부담이었다. 단순해서 좋은 관계도 있지만 고귀한 삶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남자는 썩 좋아하지 않았다. 잇속을 차리는 사람은 누가 봐도 티가 난다. 헌신하거나 희생이 필요할 때 사람의 본성이 나온다. 늘 그런 문제로 티격태격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리는 일에 도가 튼 남자는 즐거워했다. 그럭저럭 인정도 받고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하며 지냈다. 물론 그가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도 잘하려고 했다. 사람들 속에서 절대 떠나면 안 되는 관계는 소수의 일이다. 소수의 일은 소수의 일로 남아 소수로 지내면 된다. 그가 얻어야 할 것과 함께 해야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얻어야 할 것은 꽤 많이 얻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남은 일이 있다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하면 된다. 꾸준히 하는 일이 필요치 않던 때가 있었던가. 신뢰가 무너지면 모두 무너지고, 신뢰를 잃으면 모두를 잃어버린다. 언젠고 오던 길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가던 길을 멈추어라. -見河-
관문사거리를 지나 과천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있는 과천 별양동 성당
체육공원에서 보면 밤에 종탑이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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