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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이란 단어를 많이 쓰네? 나는 싫은데.

지구빵집 2019. 10. 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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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말 멋지게 완주했네? 뜨거운 날 힘들었지?" 남자가 말했다.

 

요즘 태풍이 자주 온다. 드넓은 태평양 바다 위에서 언제나 생겨서 육지까지 불어오고 사라진다. 관심을 갖게 되면 자주 오는 것이고 관심이 없다면 드물게 오는 것이다. 북서태평양에서 태풍 이름은 1999년까지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에서 정한 이름을 사용했다. 그러나 2000년부터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민들에게 태풍에 대한 관심과 경계를 높이기 위해서 각 태풍위원회 회원국이 제출한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각국 태풍위원회 회원국 14개 나라가 제출한 이름으로 변경하여 사용하고 있다. 태풍 이름은 각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총 140개를 모두 사용하고 나면 1번부터 다시 사용한다. 태풍이 보통 연간 약 25개 정도 발생하므로 전체 이름이 다 사용되려면 약 4∼5년이 소요된다. 태풍위원회 회원국에는 북한도 포함되어 있어 한글로 된 태풍 이름은 20개다. 한국이 제출한 이름은 개미, 나리, 장미, 미리내, 노루, 제비, 너구리, 고니, 메기, 독수리이고 북한이 제출한 이름은 기러기, 도라지, 갈매기, 수리개, 메아리, 종다리, 버들, 노을, 민들레, 날개까지 20개다.

 

국제평화 마라톤이 있는 오늘 아침에 태풍 '미탁' 영향으로 비가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웬걸 대회가 있는 날 하늘은 아침부터 해가 쨍쨍하다. 10월 3일 개천절로 공휴일이지만 대회를 준비하는 러너들은 아침부터 부산하다. 그는 얼마 전에 달린 공주백제 마라톤 대회에서 하프까지만 달린 게 아쉽기도 하고, 가을전설이라 부르는 메이저 대회가 정확히 25일 남았기에 이번에 완주하기로 결심한다. 강남 봉은사로에서 출발해 분당과 양재천이 만나는 곳에서 양재천으로 달린다. 늘 달리는 양재천을 시민의 숲까지 달리고 반환점을 돌아 나와, 이번엔 분당천을 따라 하탑교까지 갔다가 다시 봉은사로 돌아오는 코스다. 서울 큰 도로를 이곳저곳 통제할만한 큰 대회가 아니라 달리는 주로는 좁다. 온도는 많이 높지 않지만 햇살은 뜨겁다. 5시간을 달려 무사히 완주한 여자 표정이 밝다. 

 

"그래. 정말 힘들게 달렸어. 가을이 멀었나 봐. 햇살도 뜨겁고. 38km까지 잘 달리고 조금 걷고 멋지게 골인했어. 여기 살 탄 거 봐." 여자가 말했다. 

 

얼마 전부터 그는 자기 몸을 잘 아는 과정을 지나 기록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달리는 일에 열심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시작은 단순하게도 빠뜨리지 않고 집중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여자가 팔을 들어 반 팔 소매를 위로 올리며 어깨를 보여준다. 달리기를 오래 달리다 보면 허벅지와 양팔은 하얀 살과 검은 살로 분명하게 표시가 난다. 남자들은 싱글렛 하나만 걸치고 달리니 상반신에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 여자는 가슴 아래와 어깨 부위 하얀 살이 더욱 희게 보인다. 여자의 검고 긴 머리, 여자의 검은 눈동자, 유난히 긴 팔과 얇은 다리, 가는 발목까지 여자의 모든 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골인할 때 보니 힘이 남은 거 같은데? 하하" 남자가 말했다.

 

뮤지컬 배우처럼 극적인 순간을 만들거나 무대에서 주인공 역할을 잘하는 사람이다. 여자가 뮤지컬 배우를 한다면 어떤 역할이 어울릴까? 사운드 오브 뮤직 영화에 나오는 마리아일까, 오페라의 유령에 나오는 크리스틴일까? 희극보다는 비극에, 음침함 보다는 쾌활함에 잘 맞아 보인다.

 

  남자는 10월 들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하는 일에 대한 개발비를 받으며 편하게 지내니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가난이 찾아올 때를 대비해 준비하는 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상적동에서 지낸 지 6개월이 되었다. 계절이 봄부터 순서대로 3번 바뀌고 있다. 그리고 가을은 얼마나 짧은지. 이제야 준비하지 않은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를 생각하고 부쩍 일에 몰두한다. 남자가 할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는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단계를 나누고, 일이 되는 방향을 명확히 표현하고, 플랜 B까지 염두에 둔 계획을 의미한다. 1부터 번호를 적어가지만 15번까지 간다. 처리할 것들을 뭉뚱그려 적으니 펼치면 더 많아진다. 

 

1. Ice ball maker 개발 지연 원인 협의 w 사장님

2. 1번 기구 제작 편하게 단순화하는 방안 디자인 담당자 미팅

3. 디바이스마트 배송 취소, 교환, 환불 처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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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연성대 겸임교수 점검 전화, 경희대 수업 학생 명단 확인

14. 성남 아크릴 제작 도면 캐드파일 받기, 좋은 아크릴 포맥스 재단

15. 30대 조립 S테크 수삽 준비 부품 준비. 우울함 끊기.

 

미룬 일도 많다. 평가는 오로지 자신만이 할 수 있다. 냉정하든, 관대하든 자기 삶에 대한 가치와 판단은 오로지 자신에게 속한 것이다. 누구에게 미룰 수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는 부분이다. 달리고 나서 회복을 위해 소고기를 사준다는 말에 혹해 종석과 명희 누님과 여럿을 만나기로 했다. 그와 한 시간 전에 만난다. 책이 잔뜩 있는 카페로 간다. 우리가 만든 책을 소개하며 책꽂이에 보관하시라고 책을 한 권 준다. 그가 가지고 나온 책 이야기를 한다. 쑹아이링, 쑹칭링, 쑹메이링은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쑹씨 가문의 유명한 세 명의 자매를 말하는데, 자매의 남편들은 모두 20세기 초 중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이 세 자매와 그들의 남편의 역사가 바로 20세기 초 중국의 역사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각각 "돈을 사랑한", "중국을 사랑한", "권력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별명으로 지칭된다. 한참 오래전에 중국에 있을 때 산 책인데 갑자기 눈에 띄어 가지고 나왔다고 했다. 중국의 역사이야기를 한다. 국제관계를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에는 여성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시작한 일들, 마무리할 일들, 동료들을 상대로 우리만 알아야 하는 사소한 험담들을 이야기한다.

 

"요즘 연민이란 단어를 많이 쓰네? 나는 싫은데. 불쌍하다는 말 아니니?" 여자가 말했다. 

 

"불쌍하다고? 아니 연민을 그런 의미로 쓰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연민이란 말을 싫어하는구나. 자기를 불쌍하게 생각한다던가, 동정심을 가져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게 싫어서... 당연히 싫겠지." 남자가 말했다.

 

"가령 누구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생각해 봐, 그럼 불쌍하게 생각해서 동정심을 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여자가 말했다. 

 

"동정심이라고? 흠, 비슷하기는 하지만 연민은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아냐, 반드시 필요한 자신에 대한 연민도 있거든. 자신을 위로하거나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도 연민이야." 남자가 말했다. 

 

"여하튼 난 별로야. 네가 그럴 필요 없으니까. 다른 생각을 해 줘. 지독하고, 열정적이고, 아름다운 말을 해 줘. 연민은 참기름을 잔뜩 바른 김밥 같아. 올리브유라면 모를까? 후후" 여자가 말했다.

 

"자기연민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해. 예를 들면 힘든 상황에서 자기 몸을 쓰다듬지? 얼굴을 비비거나, 두 팔을 꼬아 자신을 감싸거나 하는 일들은 사실 본능적인 자기 연민의 감정을 표현하는 거래." 남자가 말했다. 

   

자기 연민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이 언제든 힘들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잠시 자기 연민의 시간을 내야 한다. 연민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처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하고, 일상생활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연민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통을 이해하고 완화시키거나 줄일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이다. 연민이란 개념은 감정 이입 개념보다 더 간단하고 강렬하다. 연민은 우리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을 담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은 반면에 상황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느끼는 동정심을 의미한다. 연민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배우면 남용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더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자기 연민은 반추와 회피를 줄이고, 낙관론과 마음 챙김을 함양함으로써, 짧은 시간에 탄력적 사고를 회복할 수 있게 한다. 

 

 
"모든 진정한 사랑은 연민이고, 연민이 아닌 모든 사랑은 이기적이다." -아서 쇼펜하우어

 

 

여자가 모든 밤을 무서워하지 않고 깊은 잠을 자기를 바랐다. 일어나면 모든 아침에 대해 감사하고, 햇살이 드는 식탁에서 건강한 음식으로 식사를 꼬박꼬박 하길 바랐다. 그의 모든 일을 아주 작은 틈까지 시간을 촘촘히 채우는 데 사용하지 않길 바랐다. 구름, 햇살, 바람, 노을, 단풍, 밀물과 썰물까지 그런 것들이 시간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 자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지내길 바랐다. -見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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