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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맞는지 틀리는지 알기 위해 온 거야.

지구빵집 2019. 11. 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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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맞는지 틀리는지 알기 위해 온 거야.

 

  세상은 온통 여러 가지 색을 가진 국화, 노란 은행잎을 앞세운 현란한 단풍으로 물드는 중이다. 봄과 여름을 거쳐 작업한 일을 모두 마무리했다. 모두가 입었던 큰 상처, 작은 상처를 회복하고, 반듯하게 몸을 만들며 지냈다. 좋은 시간이 빠르게 사라지면 다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강의 일정이 잡히고 구매, 교육, 제품 생산, 설득, 일정 관리 등 산적한 일에 집중한다. 말이 집중이지 하루하루 억지로 생각을 끊고 연명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좀처럼 회사 일이 잘 될 기미도, 안 될 징후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은 무엇이 되었든 밀어붙일 기세다. 이메일을 매일 300통씩 보내고, 나라장터 입찰등록을 하고, 창업투자 멘토링에 참가하고 하나씩 하나씩 늦더라도 가는 중이다.

 

  이른 아침과 늦은 밤에는 쌀쌀한 날씨다. 어째 이번 늦가을에는 추위를 많이 타는 기분이다. 당연히 나이가 들어가니, 해가 지날수록 당연한 일이다. 하루 종일 바삐 움직이고 밤에는 오늘 한 일이 하나도 없네?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생도 그러지 않을까. 기껏 열심히 살고 났더니 '별거 아니네' 하는 한 마디를 하게 되진 않을까? 며칠 전 늦게까지 저녁도 거르고 일하다가 퇴근했다. 가는 길에 순댓국 집에서 만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2~3일 감기에 걸려 고생을 했다고 한다. 항상 옷을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걱정도 다 부질없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벌써 11월이야. 좋은 계절이 너무 빨리 가네. 일도 많고, 아직 방학은 멀고, 널 만나면 시간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고. 이러다 우리 빨리 늙는 거 아니니? 하하" 여자가 말했다.

 

"단풍, 노을, 바람, 하늘 모든 게 시간의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속한 것이라는 데 갑자기 아닌 거 같아. 그러니까 가질 수 없다는 것이란 말이야. 보기만 해도 아까워 죽겠는데 무슨 우리 것이겠어." 남자가 말했다.

 

"감기 몸살로 이틀 동안 거의 죽다시피 지냈어. 밀린 일정을 서류로 마무리하고, 어제는 일찍 와서 오늘 아침까지 자고 일어났어. 몸이 예전 같지 않네. 명상도 이럴 때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여자가 말했다. 

 

"이런, 죄책감 느끼게 하네. 함부로 허락 없이 아프지 마라. 아침도 챙기지 못했지? 배고프겠다. 커피 마시지 말고 따뜻한 물을 많이 마셔." 남자가 말했다.

 

"일은 잘하고 있니? 네가 하고 있는 사업이란 거 말이야." 여자가 말했다.

 

"일은 하는데 성과는 별로야. 제대로 폼나게 말아먹고 있는 중이지. 음, 내가 원하는 걸 갖기 전에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생각하는 중이야. 성공이 사람을 망가뜨리지? 혹시 내려놓기 힘든 것이라면 차라리 갖지 않으려고 해. 이런 생각이 맞는지 안 맞는지도 잘 모르겠어." 남자가 말했다. 

 

"그렇구나. 나에 대해서는 어떠니?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 넌 충분히 자격이 있어. 나도 널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고. 언제 놓을 건지는 걱정하지 마. 언젠가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가 올 거니까." 여자가 말했다.

 

"네가 지금 달리는 일처럼 해, 모르겠어? 네가 잘하는 달리기처럼 살라고." 여자가 말했다.

 

"나 정말 답답한 사람 같아. 삶이 달리기와 따로 노는 이유를 모르겠어. 문제가 있긴 있는데 설명하기는 힘들어. 설명할 수 없으면 모르는 건데.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있는 건가? 후후" 남자가 말했다. 

 

"얘, 달리는 것은 네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되는데 사업은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90이고, 너에게는 10이야. 네가 준비할 것은 미리 완벽하게 준비하고 상대방에 집중해. 파도에 올라타서 무사히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흐름에 집중해. 네 생각대로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야 해." 여자가 말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관심 두지 말고 주마간산으로 훑다가 이거다 싶음 달려들어. 아주 힘차게, 집요하게 하는 거야. 단호해야 한다고 내가 말했지? 단호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네가 가진 집요한 구석을 엉뚱한데 쓰지 말고. 후후" 여자가 말했다.

 

"어쩜, 별 걸 다 보고 다니네. 내가 약한 게 그런 거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해.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사람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말이야. 모든 게 처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 관계를 맺는 것도 처음이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일도 처음이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모두 처음이라서 그래. 핑계가 되는 말인가?" 남자가 말했다.

 

"처음이라고? 그것도 핑계라고 대는거니? 열심히 변명해봐라. 언제까지 징징거리고, 칭얼대고, 귀찮게 굴 수 있을 것 같아? 뭔가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네 책임이 아니라고 해보시지? 불평만 하다 소리 소문 없이 파묻히든가. 네가 지금 가는 길은 구덩이에 죽은 시체가 즐비한 길이야. 너도 구덩이에 파묻혀 다른 사람이 건너가는데 도움을 주든가 마음대로 해!" 여자가 말했다.

 

"저번에 황금색 국화꽃말이야. 가을 국화가 시들기 시작하네. 아직 작은 꽃망울도 많이 남았는데." 여자가 말했다.

 

"피었으니 져야지." 남자가 말했다.

 

  피기만 해도 행복한 꽃이라고 생각했다. 삶에서 꽃피는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삶을 삶답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존엄하고 고귀한 삶을 살지 못하면 죽음도 존엄하게 맞이하지 못한다. 남자는 도통 무엇이 잘못됐는지 자주 물어본다. 자기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하고 있는지? 남자가 갖고 싶은 것을 얻는 방법이 맞는 건지? 다른 길을 찾는다면 어떻게 찾으려는 건지?

 

  물음에 하나도 답하지 못하고, 해답도 없다. 물어보는 일 자체도 웃긴 일이지만 답을 알아도 별 수 없다. 남자는 답답해한다. 자기를 제대로 바라보고 싶지만 휑하니 바람 부는 가을날엔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육체는 악마에게 속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악마가 숨어있는지 점점 화가 나려고 한다.

 

  여자의 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부정은커녕 기분 나쁘게 정확한 지적이다. 알고 있는 사실을 또 듣는 게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남자가 보는 시야는 넓게 펼쳐져 있고, 바라보는 곳도 많다. 늘 마음을 여러 군데로 쏟고 있다. 남자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심이 많다. 사소한 것도 모른 체 지나치는 법이 없다. 지난 일도 잊지 않고, 앞으로 올 일에도 항상 눈길을 주는 사람이다.

 

  자기가 한 말을 반드시 지키려고 말을 줄여가는 사람이, 기껏 줄여서 내뱉는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도 별로 없다. 의욕이 앞서면 행동이 먼저 나오는 게 사람인데 남자는 그렇지도 않다. 세상 속 편한 사람으로 지내온 세월에 익숙해 조금도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을 건드리기도 싫고, 누가 자기를 건드리지도 말았으면 하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주위 모든 일이 좋고, 굳이 자기 의지대로 몰아가기도 귀찮아한다.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서 훌륭한 자료를 제출하면 그것으로 한 일 자체에 만족한다. 거기까지 꽤 잘 한 자신을 또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심 담당자를 쫓아가서 설득도 하고, 억지도 부리고, 관계자를 더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법도 한데 도통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무엇인가 빼앗기로 마음을 정했다면 뺏어야 하는데 남자는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좋은 가치를 주고받는 일은 빼앗는 게 아니라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

 

  세상에서 해답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해답 자체는 이미 존재한다. 우린 해답을 찾으러 온 게 아니라 해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알기 위해 왔다. 오직 우리가 살아가는 근거가 되는 육체적인 경험만이 진실을 말해준다. 육체는 악마 편에 속한다. 디테일도 악마 편이다. 디테일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단 말인가?

 

  육체를 굴려 얻어진 생각과 마음은 무엇으로나 재탄생된다. 돈으로, 지식으로, 권력으로, 다른 관계로 변화된 것의 근원이 바로 우리 육체와 지혜다. 달리기는 길 위에서 달리는 것으로 배운다. 사랑은 진정한 사랑으로만 배울 수 있다. 부는 부를 실제로 이룬 사람에게만 배울 수 있다. 찬 바람을 가슴에 안고 달리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우리를 스쳐가는 가을을 지금 당장 누려야 한다. 소중한 순간이 오면 따지지 말고 누려야 한다. 가을이 끝나간다. -見河-

 

 

골드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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