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우리가 만날 때 일어나는 일

지구빵집 2020. 2. 1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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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의 섬세한 배려가 그리울 때가 있다.

 

  자주 가는 양재천 카페는 항상 햇살이 잘 드는 곳이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스미스바니는 블랙으로 가득하다. 밝은 곳인데 온통 검은 장식이다. 대화를 나눌 때 내가 말하는 순간엔 한눈팔지 않고 내 눈만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이다. 내 입을 바라보고 잠시 미소라도 지으면 표정이 얼마나 야한지 내가 눈길을 피하기도 한다. 티 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버릇이 몸에 밴 사람이라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특히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듯 카페나 식당에 가면 정해진 규칙을 그대로 따른다. 다른 일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한 번도 불만을 말하지 않는다.

 

  함께 어디를 가든지 그는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루에 몇 번씩 해도 자연스럽다. 식당이나 가게에서 마주치는 종업원의 배려에도 그는 항상 고마워한다. 직원들을 가볍게 부르는 법이 없다. 사소한 친절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그는 익숙한 친절함이나 존중하는 자세가 혈관에 흐르고 있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른다. 조금도 사람에 대해 차별하거나 평가하지 않는 마음 씀씀이는 보이지 않아도 느껴진다. 모든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사실 어떤 것에도 진실로 감사하지 않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성심껏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 후에 하는 그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시험하지 않는다. 보통 친하게 지내다 보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이 상황에서 요런 반응을 보이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재미 삼아 상대방을 시험하기도 하는데 그는 별로 사람을 시험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의 표현은 너무 우스꽝스럽고 적나라하기에 시험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누가 봐도 뻔한 일을 굳이 시험이라고 부르기도 그렇다.

 

  가끔 약속한 시간에 그가 차를 끌고 오기라도 하면 항상 차에서 나와 상대방이 오길 기다린다. 밝은 얼굴을 보고, 차 문을 열어준다. 귀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 든다. 익숙지 않은 장면이라 어색하기도 하지만 과정은 익숙한 듯 지나간다. 쌀쌀한 날씨에 야외에라도 있을 때면 작은 담요를 무릎 위에 덮어주고, 텀블러에 담아온 따뜻한 커피를 나눠마신다. 항상 차가 담긴 티백이나 진짜 녹차를 가지고 다니면서 따뜻한 물로 우려내 마시기도 한다.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이런 걸 준비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자도 물론 커피를 좋아한다. 사실 커피가 좋은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상황이 좋은 거다. 보기에 괜찮은 사람을 앞에 두고 무엇을 마신들 기분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커피가 좋은 게 아니라 나누는 대화가 마음에 들고, 깊은 안도감을 느끼는 평온함이 좋은 것이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커피가 5분의 일 정도 남으면 그는 커피잔을 가져가 따뜻한 물을 받아온다. 연한 커피를 마시다가 다시 5분의 일 정도 남으면 다시 또 물을 받아온다. 녹차를 마시는 착각이 들 때도 있다. 그에게 꽃은 늘 함께하는 물건인지라 언제든 꽃을 잘 산다. 그의 오래된 습관으로 알고 있다. 가난했던 대학 시절엔 한 송이였는데, 지금은 정말 근사하다는 것만 다르다. 특별한 기념일이 아닐지라도 언제든 마음이 내키고 상대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면 꽃을 잘 주는 사람이다. 내가 큰 의미를 두지 않은 일상에서 받는 꽃은 무척 기쁜 선물이다. 

 

  그의 자잘한 배려에는 내가 찾는 모든 가벼움과 섬세함, 쿼크(quark, 물질을 이루는 가장 근본적인 입자) 종류 중 하나인 매혹이 있다. 때때로 그의 배려를 다른 사람에게도 한다는 생각이 들면 질투가 나기도 한다. 적어도 나만 그런 배려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그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다. 예의를 갖춘 배려를 충분히 받을 만한 사람에게 베푸는 사람이라서 적이 안심은 된다. -見河- 

 

 

아름다운 이야기. 이미지 출처: 배려 https://brunch.co.kr/@barisu/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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