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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지구빵집 2020. 4. 21.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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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2003년 돌아가신 장모님을 추모하러 청아공원에 다녀왔다. 반포, 경기도 광주에 사는 동생들을 데리고 과천에 있는 한스 디저트 전문점에서 모였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사는 가족인지라 내세울 것도 없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일은 즐겁다. 만두를 만들어 팔까? 비누는 규제가 심해지니 힘들다. 같이 모여서 사업이라는 것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하면서 수다를 떤다. 결론은 무어라도 행동하지 않아서 우리가 부자가 못된다는 사실로 매듭짓는다. 아내가 장녀이고 남동생, 여동생, 막내가 남동생으로 4명이다. 장남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고 자신을 망가뜨리기도 하고, 새로운 일을 찾기도 하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인다. 민서와 같은 나이인 딸도 데려오지 않았다. 동네 근처에 사는 형광팬(형부의 광팬)인 처의 여동생은 요가 선생님이면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남자의 형제들이나 아내의 형제들이나 사는 모습은 다들 비슷하다. 늘 누구라도 많이 도와주지 못하는 큰사위로서, 장남과 장녀로서 사는 데 많은 짐이 된다. 벽에만 부딪치지 말고 살아도 잘 사는 일이다.

 

  적당히 이야기를 마치고 모두 자신의 집으로 떠난다. 과천으로 뻗은 청계산 산줄기 아랫자락에 있는 동네라서 제법 산세가 있는 동네다. 예전에는 이름이 문원동이고 물론 지금도 사용하는 이름이지만 과천 읍내에서 올라가다 나오는 첫 번째 마을이 공원마을이고, 골짜기 맨 위 마을이 청계마을로 이름을 바꾸었다. 두 마을을 합해 문원동에는 올해 1월 기준으로 3,096세대, 8,136명이 산다. 여자와 남자는 마을 꼭대기에 있는 아라비카 카페를 간다. 동네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가 이곳 한 곳이라 제법 손님이 있다. 바람이 제법 불고 전국적으로 비가 왔지만 이곳은 햇살이 따듯해 문 앞 캠핑의자에 앉아있는 손님도 있다. 마음대로 꺼내볼 수 있도록 선반에 있는 책에 눈길이 간다. 전혜린의 에세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꺼내 든다.

 

  인간은 무엇이고,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골몰하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천재들이 부러웠던 시절이다. 오직 가진 것은 가능성밖에 없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책만 주면 평생을 밥을 먹지 않고 살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에 대해 알고 나면 세상에서 원하는 것을 갖고 쉽고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를 빠져 들게 하는 것은 진리와 친구뿐인 시절이었다. 해답도 없고, 아니 해답을 찾으려고 해선 안 되는 문제에 빠져드는 일은 어리섞은 일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해답을 찾을 게 아니라,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해하는 일이 먼저다. 직접 겪어봐야 아는 일은 경험해야 한다. 

 

  장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섭섭했다. 생전 귀여워 했던 손자인 우리 아들 민서가 3살 때 돌아가셨다.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사랑중으 하나는 손주 사랑이라 한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 말고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어서일게다.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가 일찍 죽으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모두 손해다. 나는 더 맛있는 음식, 장모님의 사랑, 민서에게는 더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와의 기억을 많이 주고 가셔도 충분했을 테니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우리의 삶이란 결국

부단히 나에 이르는 길 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보다 나에게 성실하게, 보다 진정한 실존으로서

존재하고 싶다.

나와 내 죽음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모색하고 싶다.

언제나 언제나 너 자신이어야 한다.

아무 앞에서도, 어디에서도... 과감할 것, 견딜 것,

그리고 참 나와 참 인간 존재와 죽음을 보다 깊이

사색할 것을 계속할 것,

가장 사소한 일에서부터 가장 큰 문제에 이르기까지

자기 성실을 지킬 것, 언제나 의식이 깨어 있을 것..."

 

- 1961년 1월 1일, 전혜린의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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