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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지구빵집 2020. 6. 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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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아들이 메일을 보냈다. 내가 지내는 모습이 힘들게 보였던지, 아니면 엄마랑 다투는 모습을 본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좋은 말을 다 써 보냈다. 아이는 여자와 남자, 아내와 나, 우리 둘을 그대로 닮았다. 엄마의 직업에서 보여주는 집요함과 얼음처럼 차가운 냉정함을 닮았다. 냉정함은 스스로 닦고 연마하여 가질만한 기질이다. 그런 까닭에 오직 자신의 삶이 가장 중요한 듯 도도하고 오만한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나의 감성과 섬세하고 정중한 기질을 닮았다. 어디서나 말을 예쁘게 하고, 성급하지 않으며 예의 바르고 깍듯하다. 언제나 여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삶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아들은 아직도 애라서 오직 현재를 파노라마처럼 보고 살아간다. 아들은 육체와 영혼, 어느 모로 보나 완벽하다. 

 

아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다. 올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미루고 있다. 동네 치킨집에 알바를 다닌다.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알바를 하면서 통장에 꼬박꼬박 돈이 쌓이는 게 즐겁다고 한다. 가끔 아이와 인덕원이나 과천 시내에서 술을 한 잔 하는 시간이 즐겁다. 아들의 많은 일상이 아직은 베일에 쌓여 있고,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많은 삶을 살아간다.

 

아이의 생활 어떤 면이든 건드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관심을 갖지 않는 게 좋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제는 놓아 버릴 때라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원래 누군가의 삶은 그에게 속한 존엄한 것이기 때문이다. 적당하고 알맞은 삶의 목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명확히 알아두면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거나 판단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굳이 무엇인가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일도 멈추게 된다. 사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은 친구가 아이 사주를 본 적이 있다. 태어난 해와 날을 알고, 시간을 말해주었다. 아들은 아주 먼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직업을 갖고,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이고, 반짝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아이의 삶에 부모가 관여할 부분은 의외로 적다. 적당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아이는 스스로 부딪치고, 해결하고, 자기가 생각하고 선택한 삶을 살게 된다. 아이는 환경에 쉽게 적응한다. 그리고 환경을 자기에 맞게 개조하는 일을 잘한다. 모든 사안에 대해 논리적이면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설득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 각자의 개성이 공통된 지성보다 훨씬 중요하다. 개성에는 값을 매길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에게 개인의 독특한 기질은 곧잘 무시된다. 아마도 다름을 인정하기 힘든 사람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안전하고자 하는 본성에서 나오는 배타적인 심리일지도 모른다. 아이와 부모는 조용하고 평온한 공존을 이어간다. 

 

요즘 아이는 정확히 밤과 낮이 바뀐 생활을 한다. 오후에 나가 알바를 끝내고 친구들과 놀다가 새벽 3시나 5시에 규칙적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아침에 나가지만 아이는 늘어지게 잠을 자고 오후 3시가 되면 자기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좋아하는 신발을 신고 나간다. 젊어서 그런지 귓불에 피어싱을 하고, 가디건이나 코트를 사고, 야한 팬티를 입고, 꾸미기도 잘한다. 아들은 어디를 가든 집으로부터 이동거리와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움직인다. 아들은 똑똑하고 확실하지만 우리에게 아첨하지 않는다. 일찍부터 무엇으로도 위협이 통하지 않았던 아이는 아쉽게도 우리에게 조금도 의지하지 않는다. 아들과 같은 아이를 다시 키운다면 열 명이더라도 문제없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바쁜 일이 많은 아이는 서로 가끔씩 얼굴을 보더라도 자기 삶의 속도를 일정하게 지키며 산다. 빠르거나 느리지 않다. 항상 냉정하고, 무리하지 않고, 참지 않고, 허황된 희망을 갖지 않는다. 아이가 가진 것이 가능성뿐이라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을 텐데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시간뿐이 없다. 우리가 더욱 나이가 들어 늙어가는 시간 말이다. 아이는 그때그때 가장 아늑하고 안전한 장소와 시간을 발견하고, 현재 주위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만족하며 지낸다. 물론 부모를 닮지 말아야 할 부분도 있고, 부모의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랄 때도 많다. 다음 주에는 군입대를 위해 동작구에 있는 병무청으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간다.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간을 우리는 보내고 있다.  

 

아들의 편지를 아래에 옮긴다. 이러니 아빠가 너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니?

 

아빠

난 아빠가 많이 행복했으면 좋겠어.

항상 너무 멋지고 항상 본받을 사람이야.

나한테 알려준 것도 많고 내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이야.

너무 고맙고 사랑해. 아빠가 지금부터 무슨 선택을 하든 항상 응원할 거고

그 선택에 대해서 존중해.

항상 너무 고맙고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엄마랑도 잘 지냈으면 좋겠어.

너무 사랑해.

항상 너무 고맙고

아빠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야.

지금까지 받은 거 다 보답해줄게 사랑해.

 

 

강원도 놀러가서 중앙시장에서 쪼리를 맞춰 신고, 왼쪽이 아들, 오른쪽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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