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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할 자식이었고, 그는 구제불능이었다.

지구빵집 2020. 5. 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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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할 자식이었고, 그는 구제불능이었다. 

 

우리의 일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훤히 아는 사람이라서 새로울 게 없었다. 모두가 예상한 대로 흘러갔고, 굳이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알려고 하거나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정신과 육체가 나이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에 남겨야 할 것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절망적인 것은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이 이미 죽음의 강물 위를 떠내려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 만나면 잠시 설렘이 전부였고, 두 번 일어나는 일은 소름 끼칠 정도로 싫었다. 무엇을 하든 상투적이고, 푸른 들판에서 흥미를 잃은 젖소 같았다. 

 

남자가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지독히도 재수가 없었다. 운이 없었다. 여름이 끝나면 눈부신 별빛을 가진 별똥별처럼 천상에서 내려오는 사랑도 깜짝할 새에 사라진다는 것도 알고, 검은 머리 짐승에게 선의를 베풀면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늘 과거를 뭉개고 이미 지나갔다고 하면서 무시하고 잊으라고 주문을 외우니 진실하지 않은 거야. 깨달은 인간들은 말은 잘하고 듣기는 좋은 데 진실성이 없어. 내면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입에 발린 이야기라서 진실성이 없어." 남자가 말했다.

 

늘 남자를 그리워하고 생각하고 아껴주는 것보다 그에게서 진실을 발견할 수 없는 게 더 큰 고통이었다. 진실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를 계속 잃기만 했다. 어쨌든 잃었다는 표현을 쓰는 일도 끝내고 싶었다. 갖지 않았다면 잃을 일도 없는 거였다. 여자는 애초에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했다. 우린 둘 다 변했다. 좋은 쪽으로. 서로 변했지만 좋은 면으로 좋아졌다. 

 

남자는 나를 만나고 나서 어떤 사람에게도 멋진 사람으로 변했다. 나는 그게 슬펐다. 남자는 감정보다 책임감과 명예를 소중히 하는 사람이었다. 

 

"젠장 내가 좋아하는 여자들은 왜 다 이런건지."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만 좋아하는 게 남자의 습관처럼 보였다. 남자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누군지도 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은 늘 변하게 만든다.

 

나는 망할 자식이었고, 그는 구제불능이었다. 

 

 

강릉 경포호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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