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아무리 인생이 낭비하라고 있다고 쳐도 이건 아니지.

지구빵집 2020. 6. 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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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생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라고 해도. 왜 지금이지? 아무리 인생이 낭비하라고 있다고 쳐도 이건 아니지. 

 

  무엇을 하더라도 지치도록 열심히 해야 한다. 다 살아보고 났더니 '별 것 아니네' 하면서 깨닫는다손 치더라도 몰입해야 하고,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일을 하고, 글을 더 자주 써야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은 더 자주 만나야 한다. 매번 다른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잘 어울리는 좋아하는 예쁜 옷을 입고, 하고 싶은 일은 한순간도 미루지 않고 해야 한다. 남자는 이런 삶의 자세를 끝까지 유지하자고 생각한다. 남자가 사랑한 선배를 잃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들을 진심으로 느끼고, 어떤 말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아야 하고, 누군가의 옆에 있다면 진심으로 함께 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오래 머무는 것이 만약 폐허가 되는 일이라면, 머무는 순간에는 가장 아름답고 멋진 성(城)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삶이란 그런 것이다. 닮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친한 선배가 다쳐서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의식과 얼굴만 살아 있고, 몸은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있다고 들었다. 남자는 몹시 아픈 시절이다. 

 

  그러니까 두 달 전 친한 선배가 넘어져서 다쳤다. 다른 사람하고는 그저 그렇다고 해도 우리하고는 잘 맞았다. 아주 잘 어울렸다. 봄의 바람이랄까, 가을의 단풍이랄까, 아니면 여름의 해변처럼 함께 있는 게 늘 좋았다. 달리기도 수준급 이상이라 언제나 빠지는 법이 없는 양재 K라 불리는 선배였다. 진심을 다해 놀기 좋아하고, 노래 부르는 데는 도가 튼사람이고, 마음이 맞는 몇 사람한테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알고 보니 다친 날 마지막까지 같이 있다가 헤어졌다. 식당에서 가까운 집까지 모셔다 드릴만큼 술도 많이 마시지 않아 보였다. 헤어지고 난 후 넘어져서 다쳤다고 한다. 별 일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보름 정도 지난 후에 연락이 닿았는데 강원도에 바람 쐬러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것도 지어낸 이야기라고 나중에 알았다. 그러다 엊그제 선배가 병원에서 계속 있다는 소릴 들었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머리하고 의식만 온전하고 온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있다고 했다. 두 달 동안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몸무게는 현저하게 마른 상태로 있다고 했다.

 

  이상하게 그 당시 멀쩡하게 지낸 날이라 특별한 일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 그날 차를 끌고 나왔고 운전을 하느라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러니 남자는 더 속상했다. 끝까지 있었다면 적어도 해야 할 일을 했을 텐데 왜 무시한 건지. 서두를 일도 없었을 텐데 왜 서두른 건지. 왜 하필 거기였는지. 여하튼 정신이 사납게 휘몰아친다. 아무리 운명은 정해진 대로 흐르고, 내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남자는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미워한다. 또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또 이런 업보를 이고 간다고 생각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여자가 말할 때는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데 선배의 부상 정도와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되니 눈 앞이 캄캄했다. 남자는 원체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지나가는 듯했다. 자세히 설명해줄 때는 무엇하고, 그러니까 정신이 나간채로 듣고 있다가 이제 겨우 정신 차리니 아차 큰일이다 싶은 것처럼 군다. 참 못된 버릇이다. 어떻게 그 순간 모든 신경이 한 곳으로만 향해 있을 수 있는지. 

 

  모든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나. 아무리 살아온 인생이 마치 강물에 오리가 지나간 자리처럼 흔적이 남지 않고, 눈 위에 난 새 발자국처럼 금세 사라지고, 모든 삶이 낭비하기 위해 있다고 쳐도 이건 너무한 거 같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왜 지금이냐고 하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남자는 "왜 누구"가 아니고 "왜 지금"이라고 생각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무시하기로 한다. 우리에게 모든 일이 아무 때고 일어나지 않는다. 이유가 없기도 하고 반드시 존재하기도 한다. 남자는 우선 아무 생각도 안 하기로 한다. 남자는 또 한동안 술을 마시기로 한다.

 

길을 걷거나 계단을 내려갈 때 발아래 땅이 갑자기 꺼지면 다리에 힘이 받겠거니 하고 내디딘 발이 헛디디게 된다. 그 충격은 고스란히 허리과 다른 발이 균형을 잡으려고 무리한 자세가 되어 다치게 된다. 남자는 가장 먼저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두려움을, 감정의 파고를 참지 못하는 남자는 떠나지도 못하면서 늘 도망치면서 산다. 남자는 도망치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이미지: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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