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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방에 남은 1, 그게 형님이셨군요.

지구빵집 2020. 7. 10.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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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달리는 방법을 가르친 지현에게 형님 소식을 들었어요. 병원에 계신 형님이 이제 겨우 조금 움직이고, 신경치료도 잘 받으시고 무엇보다 체념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품성이 원만하시고 성격도 좋은 분이시라 금방 적응하셨는지 모르지만 마음은 많이 아프시겠지요. 아마 형님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가족분들은 원망을 많이 하고 계실 것 같아요. 저도 많이 죄송하고요. 돌이킬 수 없지요. 항상 우리는 무얼 해도 비난받고, 무엇인가 하지 않아도 비난받으니까요. 지나고 나면 전부 자기 책임을 회피하거나 내 탓이 아니라는 핑계만 말하게 돼 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이 자주 들어요. 형님이 멀쩡해 보였고, 화장실 계단이 좀 위험했고, 왜 선배를 확인하지도 않고 일찍 갔는지 전부 다 그렇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선배를 만나고 참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늘 조용하신 모습이지만 느긋하고 포용하시는 말로 주위 분위기를 바꾸어 놓고 술 한잔 드시고 기분이 좋아지면 노래는 또 얼마나 삼삼하게 부르셨는지. 누구라도 빠지면 꼭 전화해서 안부를 물었죠. 새벽마다 혼자서라도 양재천을 달리고 스쿼트를 하시면서 자기 관리에 신경 쓰셨고요. 사업을 시작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질문하면 상세하게 대답해주시고 '네가 처리할 일은 네가 꼭 해야 한다'며 각오를 다지게 해 주셨어요. 형님과 함께 지낸 시간이 벌써 아련한 일이 될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멤버들이 모이던 장소, 우리가 자주 가던 선술집, 함께 달리던 길로 나오실 것만 같은 데 그런 일은 없겠지요.

선배와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어요. 함께 있을 때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선배가 없어도 시간은 얼마나 빨리 흐르는지. 선배가 다친 지 한참 되었군요. 오늘 새벽에 어이없는 황망한 일이 벌어졌어요. 그러니까 7월 5일 일요일에 대한민국 종단 537km 울트라 마라톤 대회가 열렸어요. 6일 동안 부산 태종대를 출발해 파주 임진각까지 달리는 대회였어요. 우리 동호회에서 배선준 씨가 출전했는데요. 원래 예정대로라면 내일 정오에 임진각에 도착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그만 하루 전에 사고가 났대요. 이천 마라톤 코스에서 새벽에 음주운전 차량이 달리는 마라토너 3분을 덮쳐 모두 돌아가셨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회지만 의도치 않게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네요. 선준 형님도 아주 정확한 시간에 CP마다 메시지를 남기면서 잘 달리셨는데 충격이 크시겠어요. 좀 쉬시고 조문하러 가시겠죠.

무사히 완주를 마치고 강한 정신과 몸으로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집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함께 한 동료들은 또 장례식장에서 만나게 되고, 함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몹시 마음이 착잡하겠네요. 사실 위로가 필요한 건지, 자책이 필요한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인생은 늘 시답지 않은 아주 사소한 일로 뒤덮여 있습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품는 일은 사실 매정한 일 같아요. 모든 일에 마음이 떠나 있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런 생각도 합니다. 

형님 다치신 날인 3월 28일 이후로 우리 회원 전체 카톡방과 24시 카톡방에 1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형님이 읽지 않았다는 표시예요. 카톡 메시지도 읽기가 어려우신 거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인생이 허무해집니다. 삶에서 뭐 대단한 게 있다고 아등바등 사는지 모르겠네요. 요즘 모두들 알게 모르게 변해가고 있어요. 여러 가지 일도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형님이 다친 원인이 가장 큽니다. 형님이 안 계시니 자주 보이지도 않고요. 항상 만나는 멤버들도 가끔 보며 슬픈 얼굴로 지내고 있어요. 사라지지 않는 카톡방에 1 표시로 형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보여주시고 계신데요. 그렇게 보여주기도, 그렇게 오기도 하는 건지요. 저도 많이 우울하고 침울해하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있습니다. 좀 더 장난스럽게 살아야 한다느니 진지하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느니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카톡방에 1이 없어지지 않는 날 이후로 저 자신도 많이 엉망이 되고, 폐허가 됐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냥 동그랗게 뭉쳐진 실타래가 엉킨 채로 굴러가는 모양으로 살고 있어요. 다 놓아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하나라도 잡고 살려고 합니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형님이 나아지면 좋겠어요. 빠르지 않아도 상관없이 말입니다. 얼마나 걸리든, 언제가 되었든 꼭 나오셔서 웃는 얼굴로 만날 것 같아요. 당연히 그때까지는 살아야겠죠. 재수가 좋다면 다시 함께 달리기도 할 거고요. 다음에 또 소식 전할게요. 모든 일을 갈구하고 빈곤해야 소식을 자주 남기는 데 그래도 저는 살만한가 봅니다. 오늘은 이래 저래 우울한 날이군요. 여름 하늘은 저렇게 뜨겁고 푸르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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