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너의 시간은 늦게, 우리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 아들아.

지구빵집 2021. 2. 13. 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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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대 4분대 80. 김민서.

 

너의 훈련 4주 차가 지나고 있고, 너 없는 설날을 보내고 있다. 사랑하는 아들 민서에게. 잘 지내고 있니?

 

너는 무엇이든 잘 배우는 아이, 어느 곳에서나 적응을 잘하는 아이라서 편지를 받아 보고, 전화를 받아도 기쁘게 너의 소식을 듣고 있다. 너는 또 표현을 얼마나 잘하는지 마치 옆에서 같이 보고 있는 느낌을 준단다. 네가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들은 아주 소중하단다. 군 생활하는 동안 진심을 다해 지내고, 잘 담아두고, 꼭 기억하길 바란다. 아빠는 잊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서 글을 쓴다. 언제가 잃어버리더라도 글을 보는 순간 다시 기억이 살아날 수 있도록 말이다.

 

어제 설날 연휴 첫날은 엄마와 청주 할아버지 집에 다녀왔다. 코로나 전염병 영향으로 여전히 사회는 서로서로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다. 도로는 많이 막히지는 않았다. 내려가기 전에 평촌 수산시장에 들러 대게 3마리와 석화 굴 1박스, 가리비 2kg을 사 가지고 갔다. 민서가 다 좋아하는 건데 네가 없으니 우리만 실컷 먹을 수 있겠다 싶어 신난  건 아니고 조금 슬펐다. 다음에 면회 갈 때 잔뜩 사 가지고 쪄서 아이스박스에 담아 따뜻하게 가져갈 테니 기다리거라. 어쨌든 저녁에 요리를 해서 큰누나도 모시고 맛있게 먹었단다. 밤에 집으로 올라왔다. 

 

오늘은 아침에 늦잠 자고 일어나 홍제동 아버님에게 방문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화를 드렸다. 엄마도 조심해야 하고 여하튼 누구나 조심스러운 상황이다. 여하튼 공손하고 바른 예절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모습을 아름답게 드러내는 간단한 방법이다. 기쁜 일에는 못가도 조문은 가는 일, 누군가를 돕거나 함께 아픔을 나누는 일에 참가하는 일, 나중에 도움받거나 은혜를 받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 등 삶에서 기본만 하고 지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적어도 보란 듯 잘하지는 못해도 기본적인 일만 잘하고 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군대란 조직도 특별한 곳, 일반 사회와 동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사회와 같다. 단지 계급이 깡패고, 정해진 규율에 충실한 조직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그런 군대를 싫어했는데 따지고 보니 사회를 싫어한 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사회생활도 원만하게 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좀 유별나고 독특하다는 생각은 한다. 바로 그런 면이 사회에서 원만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사는 방식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삶은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2020년 5월 23일 기준, 세계 인구는 약 7,786,000,000 명이다. 그러니까 지구에는 77억 개 정도의 삶이 동시에 펼쳐진다고 생각을 해야 하지 않을까? 단지 모든 존재는 다른 삶을 살아갈 뿐이라고. 세세히 들여다보면 범죄와 빈곤, 부와 불평등, 우연, 분노, 사랑 등 모든 상황이 있겠지만 맞는 삶도, 악한 삶도, 정의로운 삶도, 성공인 삶도, 루저인 삶도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게 맞다. 

 

억지로 올바른 삶과 성실한 삶, 성공적인 삶을 고민하는 일은 쓸모가 사실은 없다. 오히려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는 일라고 생각한다. 늘 관대하고, 포용하는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친구 이야기, 훈련 이야기, PX 이야기, 과자 이야기 잘 들었다. 무엇보다 네가 마음에 들어하고 잘 지내니 엄빠는 마음이 놓인다. 오늘도 너의 전화 잘 받고 잘 지내고, 건강한 못소리 들으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렇다고 네 걱정하며 지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자신 걱정하기도 바쁜데 굳이 남 걱정을 하며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너도 우리 걱정 조금만 하고 항상 즐겁게 지내라. 

 

지금은 엄마랑 막걸리 한 잔 하면서 대화하는 중이다. 네 이야기도 많이 한다. 엄빠의 삶이 행운인 게 모두 너를 만난 이유인 거라고 이야기한다. 다음 주 각개전투 훈련 잘 받길 바란다. 요번 주 지나면 열흘 후면 훈련소 생활이 끝나는구나.

 

잘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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