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아들, 훈련소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지구빵집 2021. 2. 15. 10:34
반응형

 

아들, 훈련소 일정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어제오늘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하다. 일요일 아침이라 천천히 일어나 밥 먹고 오후에 학교에 왔다. 스마트 수목 시스템 개발 건과 리필 스테이션 용기 개발 건에 대한 견적서를 세세하게 작성해야 하고, 얼마 전 개설한 유튜브 영상을 올리는 일도 있다. 일은 하면 할수록 많아지는 경우가 있다. 물론 미루는 사람이라서 늘 일을 남겨두는 데,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매일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함께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용기, 자신이 맡은 일을 즉시 처리하는 용기,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을 표현하는 용기, 맺고 끊는 일을 정확하게 마치는 용기까지 말이다.

 

오늘부터 10일 훈련을 더하면 훈련소를 종료하게 되는구나. 아마 부대 배치를 받으면 훈련소 때가 편하고 좋았다고 생각하겠지. 10대 들은 유치원 아이들에게 좋은 때라고 하고, 마찬가지로 20대, 30대는 10대가 가장 좋은 시절이라고 할 테지. 아빠도 지금이 가장 좋을 때라고 생각하고 산다. 우리가 주위에서 보고 지내는 모습들, 나이가 들고, 병에 걸려 치료하고, 외롭게 가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요양원에 가게 되는 모습이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민서가 더 나이가 들어가면 군대에 있었던 때가 가장 좋았던 때라고 생각하듯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오늘 누리는 세상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때라고 생각한다. 삶은 즐거운 것이니까 말이다.

 

"나가이 히토시는 <이것이 니체다>에서 '아이를 교육할 때 첫 번째로 가르쳐야 할 것은 도덕이 아니라 인생이 즐겁다는 사실, 즉 자신의 인생이 근본적으로 긍정되어야만 하는 것임을 몸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듣기의 철학/와시다 키요카즈)"

 

군인들 휴가가 다시 해제된다고 뉴스에 나오지만 외박, 외출과 면회는 여전히 금지한다고 한다. 24일 수료식도 열리지 않을 테니 자대 배치 잘 받고 근무 잘하고 있어라. 사람을 결정하는 요소에 몇 초안에 새겨지는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밝은 얼굴과 긍정적인 자세, 바른 행동으로 호감을 보인다면, 그런 호감이 억지로 지어내는 게 아니라 네가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우러나는 마음으로 한다면 그다지 너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들은 살아만 있어. 어디에 있든 얼마나 걸리든 찾아낼 거야. 전 세계 모든 cctv, 모든 인공지능을 다 해킹해서라도 찾을 거야. 네가 빛이라면 태양을 막아서라도 찾고 물이라면 바다를 퍼올리고, 바람이라면 지구를 멈추게 할 거야. 반드시 찾을 거라고!"

 

가끔 네 소식을 묻는 시연이 이모는 오늘부터 시내 아이쿱 생협에서 일하기로 했단다. 저녁때 근무하니 장 보러 가는김에 생각이다. 스스로의 경제적인 능력을 해결하는 능력은 사회와 부모로부터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다. 그건 여자나 남자에게도 동일한 문제다. 동물 세계에서도 스스로 사냥할 능력이 없는 존재는 생존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 물론 인간이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꼭 불행하거나 억눌리지는 않는단다. 좀 없어도 존엄하게 살고, 긍정적인 태도로 사회를 밝게 보면 살아가는 일도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돈을 많이 벌고 하는 일들이 좀 더 많은 자유를 얻고, 즐거움을 주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일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 다른 사람에게 좋은 가치를 주고, 세상을 향한 봉사와 이타적인 생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부를 이루기도 한다. 물론 네가 군 생활을 마칠 때까지는 돈을 벌어 차도 사주고, 요트도 사주고, 비싼 술도 사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것들을 얻어야 행복한 것은 아니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라. 아빠가 노력을 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명심하란 말이다. ^^

 

일 하던 것을 정리하고 집에 가야겠다. 집에서는 잘 집중이 안돼서 사무실에 나오지만 있는 시간 전부를 집중하지는 못한다. 집중해서 적은 시간에 처리를 하고 나머지 시간에 독서하고 쉬고 그래야 하는 데 반대야. 놀고 싶은 대로 다 놀고 남는 시간에 일을 하려고 하니 시간이 부족하지. ^^ 오늘 못 놀면 노는 시간이 사라지거든, 일도 그렇지. 오늘 안 하면 사라지는 일이 있고, 계속 남는 일이 있으니 잘 판단해서 하든가 하지 않든가 해야 한다.

 

편지를 쓰는 중에 훈련받는 단체 사진이 올라왔다고 엄마가 알려주는구나. 너는 무엇을 입고, 무슨 일을 해도 이렇게 멋진 거니? 80번 새겨진 전투모도 반듯하게 잘 쓰고, 얼굴색은 희고 눈매 다부지고, 옷은 얼마나 정갈하게 입고 몸매는 늘씬하고 주먹 불끈 쥔 손은 알차구나. 벨트 촘촘히 매고 대리석 같은 팔과 다리는 또 어떻고 말이야. 너처럼 무엇이든 잘 배우고, 일단 하면 아주 깔끔하게 하는 애는 세상에 없구나. 아들아, 너랑 함께 있을 땐 마냥 철부지 어린애 같다는 생각만 했는데, 우리 곁을 떠나 훈련받는 네가 너무나 자랑스럽구나.

 

얼마 남지 않은 훈련소 생활 잘 마치길 바란다. 친구들하고 통화하기도 바쁠 텐데 엄빠에게 전화 자주 해줘서 대단히 고맙다. 건강하게 잘 지내라. 또 소식 전하마. 좋은 행운이 늘 함께 하길 바란다.

 

2021년 2월 14일. 5시 44분. 캠퍼스에 지는 노을이 아름답다.  

 

 

1소대 4분대 8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