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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힘든 훈련을 받겠구나.

지구빵집 2021. 2. 18.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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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대 4분대 80.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힘든 훈련을 받겠구나.

 

사랑하는 민서야, 추운 날씨에 훈련받기가 고되겠구나.

 

그제부터 날이 추워졌다. 그래 봤자 여기는 영하 4도에서 10도를 오르내린다. 네가 있는 곳은 훨씬 더 추울 것으로 안다. 아프거나 다친 데가 있으면 참지 말고 일찍 이야기해야 한다. 어떤 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그 사고와 관련된 수십 차례의 경미한 경고와 수백 번의 징후들이 반드시 나타난다는 통계적인 법칙을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한다. 1년에 한 번 치과에 가지 않고, 건강진단을 해마다 받지 않으면 결국 이빨을 빼야 하고, 암과 같은 큰 질병으로 밝혀진다는 말이다. 작은 실수나 이상한 점, 사소한 현상에 충분히 대비해야만 한다는 의미가 있단다.

 

사람들은 대화하거나 보고할 때,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서로 알려주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어리석을 정도로 소홀히 한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에 느꼈다. 개발일을 하다가 무엇인가 작동하지 않고, 프로그램이 에러가 나면 그것을 세세하게 문서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기고, 중요한 사항은 무엇인지 제대로 남기지 않는다. 이런 문제로 전화 통화를 하면 30분 이상 통화를 해도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러다 보니 해결방법도 나오지 않는다. 매일 꾸준히 일기를 쓰는 사람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소한 일상과 늘 하는 업무지만 그날 경험했던 일에 대해 자초지종을 밝히고 상세한 대응방안 등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민서는 이러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습관으로 만들면 좋겠다.

 

어제는 엄마는 진동으로 해놓고, 아빠는 통화 중이라서 민서 전화를 못 받았다. 너는 전화할 시간이 기다려지고 일찍 하고 싶고 빠짐없이 통화하려고 하는데 여기 있는 엄빠는 기다리지도 않고, 소홀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 너도 바쁘게 생활할 텐데 말이다. 우리 생각에는 훈련소나 군대는 시간도 느리게 가고, 많이 느긋할 것 같은 데 사실은 사회랑 똑같이 정신없이 흐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겠지?

 

어제 상적동 사무실에 가서 아이스볼 제빙기(얼음 얼리는 제빙기가 완전 원형 얼음을 얼리는 제품) 개발 협의가 잘 안돼서 제빙기 진행하는 일을 그만 두기로 했단다. 이미 개발비는 다 받았지만 앞으로는 내가 관여할 부분이 없다. 돈을 많이 들여서 실력 있고, 수준 높은 사람과 일하면 결과적으로 나오는 디자인, 물품, 문서, 제품 등의 결과도 다 멋지게 나온다. 수준이 낮거나 실력이 없는 사람들과 가격이 낮은 싼 비용으로 일하면 나오는 결과물은 마찬가지로 형편없는 게 대부분 당연하다. 수준 높은 사람, 능력 있는 사람들과 일하려면 우선 내가 수준이 높고, 능력도 탁월하고, 몸값이 비싼 값어치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이 만나는 친구와 거래처, 참가한 단체, 소속 회사가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다.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듣는 음악, 입는 옷,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모두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어떻게 보여줄지 결정하는 사람도 바로 우리 자신이다. 다른 사람이 보고 싶은 너의 모습이나,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사람으로 사는 일은 의미가 없단다. 항상 너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 민서야.

 

훈련소에 입소할 때 슬픈 마음이 많이 가시고 우리도 안정을 찾고 잘 지낸다. 모두 네가 그곳에서 잘 적응하고 훈련도 잘 받고 건강하게 지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훈련소에서 남은 날들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남은 기간 네가 할 일들이나 훈련 잘 받기를 바란다. 수료식 날 너를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슴 아프고 슬프지만 자대 배치를 받아 휴가가 되었든, 면회가 되었든 기쁘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네가 소식 전하는 전화나 편지 글들 모두 소중히 보고 듣고 있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은 학교에 있단다. 너에게 조용히 편지도 쓰고, 책도 읽고, 개발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생각해 보니 돈이 필요하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청주 계신 부모님이나 가족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을 해줄 수 있는 것들은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선물을 주는 일들이 가장 쉬운 일인데 그런 일을 못하는 이유도 돈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 시간을 들이는 일이 소중하다 라는 것들은 너무 감상적이고 가벼운 말 같다. 내가 신경 쓰지 못하고 너무 낭만적으로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도 한다. 돈이 있다면 대부분의 돈 걱정은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데 말이다. 아빠에게 남은 한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돈을 조금 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남은 한 가지 해보고 싶은 일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상황을 만드는 일이라는 말이다. 노력을 가장 조금 들이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참 일찍도 깨닫는 어른이다. ^^

 

민서야. 남은 기간 훈련소 생활 무사히 끝나기를 바란다. 앞으로 편지를 몇 번이나 더 쓸지는 모르지만 네가 훈련소를 나가기 전에 더 쓰고 싶구나. 사람은 혼자서 아무리 조용히 있고 싶다고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해는 뜨고, 비는 오고, 날씨는 변하고, 추위가 오고, 주위에서는 사고가 생기고, 다른 사람의 일에 말려 들어가기도 하고, 누군가 도움을 바라고, 관심 있는 일이 생기고... 하는 일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기는 일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아도 주위 상황이 변하면 어쩔 수 없이 변화하는 데 적응하고 이겨내고 살아가는 게 인간의 존재 이유다. 이왕이면 변화를 주도하고, 자기가 직접 통제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진정한 자유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하고 싶을 때 바로 자유란다.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바람이나 의지대로 삶을 살아나가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다.

 

장황한 말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 건강에 유의하고 아무리 추워도 곧 따뜻한 봄이 올테니 하루하루 지내는 일에 집중하길 바란다.

 

그럼 이만 총총.

 

2021년 2월 17일. 수요일. 8시 40분.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캠퍼스에서.

 

 

너와 함께 와 본 학교. 노을지는 서쪽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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