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생각 바른 글

우주, 망각 그리고 엘랑 비탈 - 한양대 한국언어문학과 이재복 교수 강연

지구빵집 2022. 5. 12. 13:57
반응형

 

 

 

차디찬 푸른 5월이라서, 이렇게 좋은 날 놀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까 봐 국제 문화대학에서 여는 ERICA 콜로키움 강연을 들었다. ERICA 캠퍼스의 건축물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원기둥을 포함한 각기둥이다. 건물을 잘 몰라서 나열할 순 없지만 어디서든 줄지어 늘어선 네모 기둥이나 원 기둥을 볼 수 있다. 아주 멋진 건물인 국제문화대학, 본관 입구, 캠퍼스 가운데 분수 공원, 체육관 한쪽 예술대 건물은 네모 기둥이 뚜렷하게 보이고 다른 곳은 많지는 않아도 몇 개씩은 꼭 건물을 떠받치고 있다.  

 

강연 내용은 행복한 詩읽기였다. 인간이 망각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살아 있으니 살아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하단의 정 精과 배꼽의 氣, 머리의 神을 바르게 유지하기 위해 수양하고 정진해야 한다.

 

중용(中庸)에는 ‘지성여신 지성무식(至誠如神 至誠無息)’ 구절이 나온다. "지극한 정성은 신神과 같다. 성지誠之는 스스로 이루어 가는 것이요. 그러므로 지성은 쉼이 없다.”는 것이다. 

 

스피노자, 베르그송, 화이트 헤드의 철학

 

"진화는 눈물겨운 생명 활동"

 

강의에서 삶의 도약, 생명의 능동적인 활동을 나타내는 시를 소개했는데 그 시들을 올려둔다.

 

*프랑스의 철학자 Henri Bergson(1859-1941)은 유기체는 생명을 지속하는 힘을 스스로 생성하여 표출하면서 창조적 진화과정을 거친다고 하였다. 생명 지속의 근원적 에너지를 의미하는 엘랑 비탈(élan vital)은 '삶의 도약', '삶의 약동', '생의 비약' 등으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그는 생명이 가진 능동적이고 근원적인 힘을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지금도 철학계에서 문제없이 사용하는 철학용어이다.

 

 

윤사월 - 박목월

 

송홧(松花)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직이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박목월, 한국현대시문학대계 18, 지식산업사, 1982>

 

 

무꽃 - 김선우

 

집 속에

집만한 것이 들어있네

 

여러 날 비운 집에 돌아와 문을 여는데

이상하다, 누군가 놀다간 흔적

옷장을 열어보고 싱크대를 살펴봐도

흐트러진 건 없는데 마음이 떨려

주저앉아 숨 고르다 보았네

 

무꽃,

버리기 아까워 사발에 담아놓은

무 토막에 사슴뿔처럼 돋아난 꽃대궁

 

사랑을 나누었구나

스쳐지나지 못한 한소끔의 공기가

너와 머물렀구나

빈집 구석자리에 담겨

상처와 싸우는 무꽃 

 

 

줄탁 - 김지하

 

저녁 몸속에

새파란 별이 뜬다

 

회음부에 뜬다

가슴 복판에 배꼽에

뇌 속에서도 뜬다

 

내가 타죽은 나무가

내 속에 자란다

나는 죽어서

나무 위에

조각달로 뜬다

 

사랑이여

탄생의 미묘한 때를

알려다오

 

껍질 깨고 나가리

박차고 나가

우주가 되리

부활하리

 

시집 <중심의 괴로움 중> (솔,1994) 

 

 

중심의 외로움 - 김지하

 

봄에 가만 보니

꽃대가 흔들린다

흙 밑으로 부터

밀고 올라오던 치열한

중심의 힘

꽃피어

퍼지려

사방으로 흩어지려

괴롭다

흔들린다

나도 흔들린다

내일 시골가

비우리라

피우리라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 송재학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홑치마 같은 풋잠에 기대었는데

치자향이 水路를 따라왔네

그는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무덤가 술패랭이 분홍색처럼

저녁의 입구를 휘파람으로 막아주네

결코 눈뜨지 마라

지금 한쪽마저 봉인되어 밝음과 어둠이 뒤섞이는 이 숲은

나비떼 가득 찬 옛날이 틀림없으니

나비 날개의 무늬 따라간다네

햇빛이 세운 기둥의 숫자만큼 미리 등불이 걸리네

눈뜨면 여느 나비와 다름없이

그는 소리 내지 않고도 운다네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나는 새순과 닮아서 그에게 발돋움하네

때로 뾰루지처럼 때로 갯버들처럼 

 

 

치자 향기, 술패랭이의 분홍색, 나비 날개의 무늬, 저녁의 하늘빛… 이들이 내뿜는 감각의 힘만으로도 삶과 죽음은 만날 수 있다. 무덤가를 맴돌던 나비가 풋잠에 든 얼굴에 내려앉을 때, 그것이 돌아올 수 없는 이의 손길이라는 것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그가 내 얼굴을 만질 때 죽음은 삶 곁에 숨 쉬고 있다. 시는 그 감각의 길을 따라 피어난 호접몽(胡蝶夢)이다. 나희덕<시인> 

 

 

몸詩 73 - 정진규

 

 

 

 

국제 문화 대학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