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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국제평화 마라톤 31 km, 3시간 2분, pace 5분 52초

지구빵집 2022. 10. 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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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국제평화 마라톤을 뻐꾸기로 31km 달리다. 

 

대회가 열리는 10월 3일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주로를 달렸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하프 21km를 달린 지옥 같던 공주 백제 마라톤을 생각하면 달리기에 너무 편했다. 비는 굵었다가 얇았다가 세차게도 내리다가를 반복했다. 어떤 대회든지 마라톤 대회에서 풀코스를 뛰기로 했다면 한 달 전에 풀코스 42km와 같은 거리나 적어도 32km를 달리고 나서 매주 하프 코스 21km를 한 두 번 정도 달리고 나서 훈련을 줄여가면서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대회에 출전하는 것이 기본이다. 

 

남자는 회복의 리듬을 찾고 더 잘 달리려고 애를 썼지만 마음대로 안 되었다. 리듬이나 균형이 깨진 몸 상태와 달리기 기록이 단 시간에 좋아지기는 힘들다. 모든 일이 마찬가지라서 쌓기는 힘들지만 무너지는 것은 쉽다. 그래도 춘천마라톤에서 풀코스를 달리려면 반드시 32km 이상 장거리를 달려줘야 하는데 하프만 몇 번 달렸으니 자신감이 점점 바닥나고 있었다. 결국 약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는 거리를 춘천마라톤 대회를 20일 남겨두고 떠밀려 달릴 수밖에 없었다. 예측하지 않고 살기로 마음먹으니 어떤 일이 닥쳐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대회장에 도착할 때부터 비는 내렸고 대회장 길에는 참가인원도 많고, 식품 부스도 많고, 단체로 참가하는 마라톤 동호회 천막도 많아서 행사를 단단히 준비한 모양으로 보였다. 대회 진행 아나운서는 2주 전에 공주 백제 마라톤 대회에서 본 배동성 님이 나오셨다. 이젠 목소리만 들어도 친근감이 들 정도다. '뻐꾸기'라는 용어는 대회 등록을 하지 않고, 그러니까 참가비를 내지 않고, 배번도 부여받지 않고 슬쩍 선수 대열에 끼어 달리는 것을 말하는 마라톤에 몇 개 안 되는 은어다. 뻐꾸기가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것을 빗대어 표현한 말인데 원칙적으로 그러한 방식은 금지되어 있고, 큰 대회에서는 일정 구간마다 배번을 달지 않고 달리는 뻐꾸기를 잡는 "bandit catchers"라는 진행 요원이 따로 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우비는 필수다. 잠시나마 비를 덜 맞고 출발 후 일정 거리를 달리는 동안 체온을 유지하게 해 준다. 여하튼 우비를 입고 출발해 친숙한 주로인 양재천으로 접어들어 시민의 숲까지 달린다. 땀이 나기 시작해 우비를 벗는다. 카톨릭 마라톤 회원 몇 분이 옆을 지나간다. 등에는 김수환 추기경님이 써주신 "달려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 글이 선명하다. 바싹 붙어 15km까지 5분 30초로 달린다. 긴 거리를 달리는 동안 페이스를 맞춰 함께 달릴 마라톤 주자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느 정도 달리다가 자신이든 다른 주자가 지치면 다시 함께 달릴 다른 주자를 또 찾는다. 이런 방법을 사용하면 혼자 달리는 것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카톨릭 마라톤 회원들이 나눠져 두 분이 앞서 나가고 다른 몇 분이 뒤처지는 바람에 다시 혼자 달린다. 

 

27km 지점을 달리는데 갑자기 화가 나더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오른다. 그건 분노나 증오, 질투의 복잡한 감정이다. 꿈속에서도 보이지 않아 그런 데서 벗어나나 싶었는데 아직도 뇌의 어떤 부분에 숨어있었나 보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내가 지키며 산 게 그렇게 잘못한 건지, 왜 나에게만 짐을 지우는지 서러웠고, 남들은 쉽게 갖는 걸, 나는 엄청 애써야 겨우 그림자만 밟고 서 있는 것을 보는 것도, 남들이 쉽게 갖는 것을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해도 갖지 못하냐는 질투에서 비롯된 분노가 들끓어 오른다. 눈을 껌뻑거리며 눈물인지 빗물인지 흘러내리는 것을 참으면서 이를 악물고 달리니 더 빨리 달리게 되고 숨이 가빠 헉헉거리니 눈물도 그치고 감정이 사라졌다. 늘 어떤 거리를 지나 몸이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이런 현상이 생긴다.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세상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 많은데도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늘 그런다.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는데?"라고 말이다. 함부로 말할 일이 아니다.

 

하프 코스 반환점을 돌아오는 길에 동호회 동료들을 여럿 만나고, 풀코스를 달리기 위해 출발지로 들어가지 않고 한강변으로 달려간다. 영동 1교에서 잠실 철교를 왕복하면 정확히 하프 거리고 자주 달려서 그런지 익숙하다. 주로에서 잠실 운동장으로 들어가는 도로 아래 토끼굴을 보면서 미소 짓는다. 잠실 철교를 지나 조금 가니 풀코스 반환점이 나온다. 거기서 바로 돌아가면 30km를 달리는데 반환점을 지나쳐 500미터를 더 가면 32km를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돌아와 보니 31km를 달렸다. 차라리 1km를 더 달리고 돌와 왔어야 32km였다. 가능한 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 

 

조금은 미안했지만 열심히 달려 출발지로 돌아와 기념 메달과 간식을 받으러 간다. 아르바이트 학생처럼 보이는 진행 요원이 '배번이 없냐?'라고 물었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달리다가 떨어졌다.'라고 말하고 풀코스 완주자에게 주는 기념 메달과 빵, 음료수, 화장품, 초코파이를 날름 받아왔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상을 인식해야 얻을 수 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마치 무엇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듯 마치 그것이 자기 것인 양 행동하면 받게 된다. 사기의 제1요소가 자신감이라고 하지만 삶에게도 그렇게 대해야 삶은 받고 싶은 것을 준다.

 

이제서야 내일이라도 풀코스를 달릴 것 같은 자신감이 붙었다. 하늘을 찌를 것 같다. 모든 감정과 행동은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생각이 우울하거나 깊이 가면 일단 멈추고 행동을 해야 한다. 아침 일찍 비가 내리는 줄 알면서도 기어 나오고, 등록하지 않았는데 아주 당연한 듯 대열에 합류하고, 17km 지점부터 30km까지 싱글렛을 벗고 달리고, 골인 지점에선 두 팔을 힘껏 들어 올리고 아주 빠르게 들어오는 일까지 모두 행동하는 일이다. 대회에 정식으로 등록을 하지 않는 것도, 비가 쉴 새 없이 내린 것도, 복잡한 코스와 물인지 신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문제고, 결국 문제가 된다.

 

10월 23일 경주 마라톤 풀코스가 남아있다. 춘천마라톤 대회 1주일 전이라도 걱정을 하거나 예측하지 않는다. 삶을 그렇게 살기로 작정한 남자는 새롭게 보이고 아주 돋보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짧은 시간 내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평생 이룰 수 있는 것을 과소평가한다. 당연히 버킷리스트를 장식하는 마라톤 풀코스 완주도 길면 1년, 짧으면 6개월, 심지어 아들처럼 18살 청춘 시절에는 단 하루 만에라도 성취할 수 있다.  무엇이든 오랫동안 노력해서 얻은 성취가 더 행복한 법이다. 단기적인 기쁨은 단기적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육체와 정신을 이어주는 최상의 성취감은 긴 달리기에서 나온다. 

 

남은 것은 춘천마라톤이다. 아마도 남자는 잘 달리고 올 것이다. 즐기고, 걷지 않고,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다른 러너가 아닌 바로 가장 멋진 마라토너인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올 것이다. 늘 그랬으니까 말이다.

 

 

 

 

 

제19회 국제평화마라톤 대회 요강

대회명 제19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
일시 2022년 10월 03일 월요일 08:00 집결 / 09:00 출발
장소 봉은사로 삼성1동 주민센터 앞
참가부문 Full, Half, 10km, 5km 코스 부문
접수기간 2022년 08월 19일(금) ~ 2022년 09월 23일(금) 마감
참가비 풀코스 : 3만원 / 하프코스, 10km코스 : 2만원 / 5km코스 : 1만원
* 참가비 전액은 강남복지재단 및 유니세프에 기부합니다.

 

제19회 국제평화마라톤대회

 

32Km 달리고 풀코스 완주 메달 강탈함 ㅎㅎ

 

풀코스 코스도: 봉은사로 삼성1동 주민센터 앞 → 강남 탄천주차장 → 양재 시민의 숲 → 탄천교 → 광평교 → 강남 탄천주차장(하프 골인) → 잠실 한강공원 → 올림픽대교 반환 → 잠원 한강공원 반환 → 봉은사로 삼성1동 주민센터 앞 

 

 

 

하프코스는 위 코스 맵 참고: 영동대로(봉은사역 인근) → 강남 탄천주차장 → 양재 시민의 숲 → 탄천교 → 광평교 → 강남 탄천주차장 → 영동대로(봉은사역 인근) 

 

10km 코스/ 5km 코스도

 

10km 코스 : 영동대로(봉은사역 인근) → 강남 탄천주차장 → 잠실철교 → 강남 탄천주차장 → 영동대로(봉은사역 인근)

5km 코스 : 영동대로(봉은사역 인근) → 강남 탄천주차장 → 영동대로(봉은사역 인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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