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訃告 - 배재경, 웹진 시인광장 2019년 8월호 발표
사촌형님의 집은 사람의 온기를 찾기 힘든 적막의 군단이 점령하고 있었다. 그 무지막지한 적막의 부대를 빠져나오려 형님은 얼마나 안간힘을 썼을까?
단 한 명의 구원병도 없는 고요와 쓸쓸함의 병사들과 대치하며 피눈물을 흘렸을 터, 갑자기 牛舍의 소 한 마리 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쏟는다. 그도 형님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모양이다.
마당의 늙은 누렁이는 죽담에 근육을 죄다 훑어낸 환자마냥 퍼질러 앉아 옴짝달싹도 안한다.
며칠 전 족제비에게 두 마리가 물려가고 남았다는 어미 잃은 병아리 한 마리만 뒷담에서 모이를 쪼으고, 평상에는 어젯밤 먹다 남은 막걸리통과 김치 두어 조각만이 형님의 마지막을 대변해주고 있다.
자신의 몸도 잘 못 가누는 형수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본다. 대리미요, 이제 저 양반 편할낍니더!
형수의 편할낍니더란 그 말이 갑자기 칼날처럼 심장을 베어든다.
니는 우짜든등 도회 나가 성공하래이~ 늙은 어미만 남겨둔 채 대처로 나가는 열다섯 내게 3만원을 꼬옥 쥐어주며 형님이 던진 말 한마디가 쓰나미의 세상을 살아가는 마지막 힘이었거늘, 대리미요, 애들은 잘 커지요?
황망한 남편의 주검 앞에서 눈물보다도 내 안부를 묻는 형수. 그러나 형수 가슴은 이미 천 갈래 만 갈래 다 헤져 있으리라. 세 자식들 중 어느 하나도 형님의 주검을 거두는 놈 없으니...
형님은 최근까지 심장병에 무리가 있음에도 아픈 형수를 대신해 농사며 밥하고 살림하는 집안일까지 했다.
지난주엔 세 자식들이 모여 아버지, 어머니 사후 재산분할로 서로 다투었다는데, 형수가 새벽에 아버지 임종을 지키라 연락했건만 5월 늦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오질 않고 가장 먼 곳에서 부고를 받고 온 내게 대리미요, 형님 이제 갔심더! 라고, 여름날 낫에 베인 풀잎처럼 내뱉었다.
촌마을 외딴집이라 가차이 이웃도 없다. 거동을 못하니 형수는 그냥 자식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제까징 멀쩡했는데......
고마 나보담 먼저 갔심더, 내가 먼저 죽어야 하는 디...
그제야 형수가 울음보를 터뜨린다.
형수는 형님과 산 50여년의 시간들을 다 토해놓듯 운다. 울음보는 형수의 심장을 가르고 마을의 샛강을 적시며 저 아득한 형산강으로 꾸역꾸역 흘러든다.
그렇게 형수의 哭은 오래도록 고향집 안마당을 11월의 바람처럼 배회했다. 형님, 이제 편히 가시소.
여기 걱정 붙들어 매고 거서라도 평안하소!
출처: 웹진 시인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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