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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러너스

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 - 챌린지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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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가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

 

클리셰인 원래 제목은 '사랑이 죽지도, 우리를 죽이지도 않기를...'이다. 영국 르네상스 후기의 시인이자 성직자인 John Donne의 詩 'The Good-Morrow' 마지막 구절을 '쓸모의 철학' 번역가가 기가 막히게 잘 옮겼다. 우리를 죽이는 것은 우습게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들이다.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인간은 항상 기대하고, 욕구가 있고, 욕망하기 때문이다. 춘천 마라톤이 끝나고 12월부터 시작한 훈련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훈련은 매주 세 번 한다. 두 번은 트랙 30바퀴 12km를 달린다. 한 번은 가벼운 훈련으로 조깅 10km를 달린다. 2주마다 하프와 32km를 교대로 달리고, 트랙에서는 인터벌(빠른 달리기와 휴식을 번갈아 달리는 훈련) 훈련을 하고 언덕을 한 달에 두 번 달린다. 적절한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유지하려고 모든 훈련에는 100미터를 18초 빠르기로 네 번 달린다. 러너는 질주라고 부른다. 혈액 순환이 순조롭지 않은지 손발이 유난히 차가워 겨울 훈련에 게으름을 피웠다. 이제 그 대가를 치를 때가 왔다. 나이는 계절마저 새롭게 보고, 좋고 싫은 날씨를 분명하게 구분하도록 만든다.

 

메달이 걸리는 횟수가 줄어든다. 달리기가 하도 유행이라 대회 티켓을 구하기도 어려워졌다. 모두가 건강하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람은 원초적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 대해 약하고, 아프고, 가난하고, 병들고, 나이 드는 것을 싫어한다. 건강하면 나쁜 일들은 줄어든다. 특별히 예쁜 메달을 보관하고 나머지는 박스에 담아 버린다. 무엇이든 오래되고 가끔이라도 들춰보지 않는 것은 버린다. 단 결혼 앨범은 예외다. 잘못했다간 죽을지도 모른다.

 

마라톤은 언제나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지만, 돌아온 순간에는 이전에 출발했던 사람은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찾을 수 없다. 항상 출발했을 때와 다른 사람으로 돌아오는 그 매혹적인 느낌이 달리기를 멈추지 못하게 한다. 메달이 주는 기쁨과 주로를 달린 기억만 간직하려고 한다. 언젠가 남는 것은 녹슨 메달이 아니라 다시 꺼내볼 때 미소를 주는 아련한 기억들이다. 오래 달리기를 하면서, 달리는 일 자체를 큰 덩어리로 보게 된다. 트랙을 아주 많이 달릴 때 코치의 착오로 한 바퀴를 더 세면 기분이 고소했고, 덜 세면 아니라고 우기기도 했다. 오래 달리기를 하게 되면 '이제부터 달리면 두 시간은 달려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대회나 훈련에서 기록이 맘에 들면 좋겠지만 그날 대회나 훈련에 나오기 전부터 달리고 돌아가서 하는 일까지 전체를 바라보게 된다. 오늘은 적어도 4시간, 아니면 그 이상 달려야 한다. 삶도 그렇게 바라보면 좋으련만,

 

항상 모이는 남자 탈의실 앞에 8시 30분까지 도착해야 한다. 추운 날씨에 출발 시간은 9시 30분이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한강에 도착했다. 다행히 날씨는 8도라서 춥지 않았다. 강에서 부는 바람이 제법 예리하다. 대회에 나갈 때도 청바지와 후드티, 개발자 복장을 한다.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추워 보였는지 윤자 선배가 우비를 챙겨주고, 동료가 등번호(Bib Number)를 가슴 4군데 오핀을 꽂아 달아 준다. '조심해, 가슴 찌르지 말고!' 가방을 보관 장소에 맡기고 돌아오는데 뭐가 빠진 것 같다. 장갑과 에너지 젤, 커피 세 봉지를 가방에 둔 채로 돌아왔다. 아니 바셀린과 자외선 차단제는 빼먹지 않고 바르는 놈이 가장 중요한 먹을 것을 빠뜨리다니, 갑자기 망한 느낌이 들었다. 출발할 때 기분이 신나는 것도 비슷하게 망하는 징조다.

 

32km 지점에 도착한 시간은 2시간 58분이다. 4시간은 적어도 넘기지 않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덜 망하려면 끝까지 집중하고 경계를 풀지 않았어야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달리기였다면, 이제부터가 진짜 마라톤이다. 남은 10km는 영혼이 빠져나가고, 육체가 가진 힘을 내는 엔진은 꺼진 상태고, 호흡을 맞춰주는 동료 러너나 페이스메이커도 없었다. 주로는 안양천 합수부에서 양천구청, 광명으로 가는 안양천으로 방향을 튼다. 철산교 근처 2차 반환점을 돌아 나와야 한다.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 창의성은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 자체에 관한 일이라서 키우기도 쉽지 않다. 단순히 창의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뿐이다.

 

우비를 여기까지 입고 온 탓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벗어 버릴까 하다 땀이 식으면서 추울 것 같았다. 바람을 이용하자고 생각해 우비를 뒤집어 입었다. 등쪽에 단추가 있으니 위와 아래만 채웠다. 올 때 맞바람을 많이 받았다. 갈 때는 바람이 뒤에서 부니 우비에 공기를 불어넣어 앞으로 밀어주면 좀 쉽게 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바람이 세게 불어 우비가 부풀어 앞으로 쉽게 나가는 때도 몇 번 있었다. 사실 이 생각에 몰두하느라 어떻게 한강으로 돌아 나왔는지 기억에 없다. 한참을 우비를 입고 달린 정성이나 맞바람에 늦어진 것을 생각하면 크게 이득본 것도 없고 손해 본 것도 없다.

 

한강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한강공원 물빛무대 광장까지 남은 5km는 거의 탈진 상태로 들어왔으니 기록은 좋지 않았다. 삶의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좋은 달리기와 나쁜 달리기 모두 러너에게 숙명이다. 기관에 소속된 프로 선수를 엘리트라 부르고,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달리는 러너를 마스터즈 선수라 부른다. 달리기가 좋아서 달리는 나머지 러너는 그냥 일반 러너다. 기록에 관계없이 풀코스를 달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힘들다. 고통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새로운 목표를 세웠고, 좋은 기록을 위해 3개월을 훈련했고, 드디어 시작한 첫 참가 공식적인 달리기로 남을 마라톤을 끝낸 것이다. 그 여정이 즐거웠으면 되었다고 위로한다.

 

올해 첫 대회의 달리기였고 처음 받는 메달이라 기분이 좋았다. 커뮤니티에서 27명이 참가했고, 9명이 풀코스를 달렸다. 나머지는 하프와 10km 거리다. 대회에 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밟고, 주로에서 모두가 다른 우여곡절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완주했다. 대단한 일이다.

 

운동장 트랙을 감독과 달리며 집중할 때의 기분을 느끼길 바랐지만 돌아보니 이번 경주에서는 한 순간도 그렇게 달린 적이 없었다. 달리고 나면 늘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보라색 줄과 노란 메달이 예뻤다. 메달 안의 하얀 가루는 눈이다. 절대로 녹지 않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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