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아름다운 아침이다. 오후 소프트웨어 교육에 사용할 교육 꾸러미 조립하느라 새벽 두 시 반에 잠들었다. 5시에 일어났는데 정신은 맑았다. 6시에 관문체육공원 모이는 날이다. 오늘은 체육공원에서 잠실 철교까지 왕복 32킬로미터를 뛰는 날이다. 아~ 잠이 부족한 건 아닐까.
5분 늦게 도착해 보니 많은 회원들이 나와 있었다. 과천팀들도 20명 넘게 나와서 준비 체조를 하고 벌써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왜 이리 늦어! 우린 맨 날 늦는구나!" 하면서 모여서 준비체조를 하였다. 과천팀은 이미 출발을 하였다. 코스는 같게 달릴 것이다.
과천팀은 많이 모이기도 하고, 늘 부지런하다. 개별적으로 응집하고, 개별적으로 훈련하고, 개별적으로 잘 달린다. 모두가 일사불란하다. 개인 간의 관계도 띄엄띄엄 하다. 먼저 오면 오는 대로 훈련하고, 마치면 마치는 대로 정리하고 돌아간다. 쿨해 보인다. 회원도 많다고 한다. 늘 훈련에 나오는 사람들도 한 30명 가까이 된다. 나이 구성도 얼추 우리와 비슷하다. 어르신도 있고, 중년 이상의 분들이 주축이 되어 훈련도 열심히 하신다.
반면에 우리는 진짜 띄엄띄엄 모인다. 적당히 부지런하고, 말도 잘 안듣고, 일사분란한 움직임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달기도 뛰엄뛰엄 달린다. 달리는 간격도 실력 차이도 띄엄띄엄 하다. 서로에게 느끼는 각별한 애정이 그나마 우리를 돋보이게 하고 지속하게 하는 동력일지도 모르지만 어떤 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자유분방하고, 격식에 과한 포장을 하지 않고, 늘 어디서든 가져갈 만큼 딱 가져가도 남는 풍요로움이 있어서 좋다.
오늘은 훈련 감독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스스로 잘 하니까 모두 준비 체조 후 잠실 철교 16킬로미터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한다. 아직은 해가 뜨기 직전이다. 시원한 바람이 피부에 닿는 감촉이 좋다. 오늘 예감이 좋다. 모두 표정도 밝다. 2주 전 장거리 훈련에 약간 실망한 것을 오늘 모두 회복할 것 같은 표정이다. 관문사거리, LH 아파트 옆을 지나 우면산 터널 앞으로 이어지는 개울가를 달릴 때 두둥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해가 말한다. 오늘도 너희들 뛰는 데 아주 뜨겁게 해 주겠다고. 우린 이미 모자를 쓰고 있다. 이미 선크림도 발랐다. 이미 팔토시와 장갑으로 무장도 했다. 두려운 건 없었지만 짧게 얕은 신음을 뱉는다. 읔~
약 6km를 달려 영동 1교에 도착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이용해서 냅다 등용문까지 5km가 조금 안되는 거리를 달린다. 바로 이 등용문이 양재천과 분당을 지나 내려오는 탄천이 만나는 양재-탄천 합수부가 된다. 등용문이란 말은 잉어가 황하 상류 급류인 용문(龍門)을 오르면(登) 용이 된다는 전설에서 나온 말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함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토요 정기모임에서는 영동 1교에서 등용문까지 10km를 달린다.
등용문, 그러니까 탄천-양재천 합수부에서 한강-탄천 합수부까지의 거리는 약 2.3Km 정도 된다. 넓게 펼쳐진 시원한 한강이 보인다. 잠실 쪽으로의 한강 변은 정말 온화해 보인다. 반대편인 여의도와는 많이 틀린 모습니다. 강변의 높은 빌딩도 보이지 않는다. 놀러 나온 시민들과 자전거 주행 클럽들, 달리는 사람으로 혼잡해 보이기는 하지만 생동감 있고 기운 넘치는 모습이다. 더군다나 합수부에서 낚시를 즐기는 꾼들에다 수상스키까지 더하면 정말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한강-탄천 합수부를 지나 약 4km를 달려 드디어 잠실 철교에 도착했다. 잠실 철교 아래에서 돌아 잠실 한강 공원 제1 휴계소에 도착하니 모두 잠시 쉬고 있었다. 스포츠음료, 물, 맥주까지 하나씩 들고 마시면서 서로 수고했다고 힘들지 않았냐고 담소를 나눈다. 중간 정비를 하고 늦게 도착하는 동료를 모두 기다린다. 모두가 잘 왔다. 이젠 돌아가야 한다. 아주 끔찍한 시간이다. 이제 속력을 낼 사람은 속력을 내고, 자신의 페이스를 스스로 조절하며 출발했던 관문 체육공원까지 무사히 완주하기를 기도한다.
힘들다. 영동 2교까지 두세 번이나 이제 좀 걸어도 될까? 하는 마음을 누르고 달려왔는데 여기서 석원 씨를 만났다. 이제 막 '그만 걸을래!' 하는 찰나 석원 씨가 내 옆으로 바싹 붙으며 같이 달린다. '안된다고, 걸으면 다시는 못 뛴다고' 하면서 나와 같이 달려준다. 고마웠다.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달리라고 한다. 함께 2km를 달려주고 자기는 힘들어서 안 되겠다고 하면서 걷지 말고 끝까지 달리라고 말하면서 나를 보낸다. 다시 화이팅해 본다.
저 앞 한참 멀리 마지막 주자의 모습이 보인다. 가도 가도 좁혀지지 않는다. 그래도 달렸다. 서초구 양재천에 서초문화예술공원과 우면동 태봉로를 잇는 폭 5m, 길이 65m의 보행자 전용인 무지개다리를 지나가면서 이대로 달리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서 마지막 힘을 내어 달렸다. 우면산 터널 앞으로 이어지는 양재천 개울까지 오고나니 몇 미터 앞에 달리고 있었다.
'내가 잡았어'라고 말했다. '그래' 짧게 대답했다. 순간 마음이 아픈걸까 하고 생각했다.
힘들었다. 걷고 싶었다. 그래도 동료가 옆에서 뛰고 있는데 걸을 수 는 없었다. 말도 한 마디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차고, 심장은 이미 입으로 나와서 물고 뛰는 것 같았다. 멀리 목표 지점이 보인다. 관문체육공원의 야간 라이트가 높게 보인다. 1km도 안남았다. 온통 일그러진 얼굴에 다리에는 힘이 풀려가고, 숨소리가 거칠다.
하~ 이젠 좀 걷고 싶어! 라고 말했다.
'안돼. 버릇된다. 처음이라 힘든 거야. 걷지 마.' 라고 말한다. 정신이 아득하다. 보이는 게 보이는 게 아니다.
'힘내, 이제 다 왔어. 얼굴에 인상 펴. 얼굴 찡그리지말고 힘들어도 이젠 인상 쓰지 마.'
'되도록 웃어봐. 웃지 못하겠으면 미소라도 지어. 입꼬리를 올리고 온화한 표정을 지어봐.'
'숨소리가 너무 커, 크게 내지 마. 숨 가빠도 천천히 호흡해. 여기서 출발했을 때랑 똑같이 뛰어들어가.'
'발에 힘주고, 걸음걸이 사뿐사뿐 뛰어, 사람들이 없어도 주위를 둘러봐.'
'그렇게 끝까지 뛰어가는 거야.'
'잘했어.'
심장에 평온이 찾아왔다. 두 눈에 또렷하게 주위 풍경이 들어왔다. 걸어야 할 것 같은 발에는 힘이 들어가고 조금은 풀어진 두 발이 아스팔트를 부드럽게 밀어내어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완주하는 거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10km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달리는 시간이 모두 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팔팔낙지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소프트웨어 교육이 2시부터 있다. 이런 날은 정말 가기가 싫다. 어쩌다 한 번 만나면 헤어지기가 싫다. 오늘 기록은 휴식시간 고려하고 따져보니 약 3시간 35분 정도라고 말해주었다. 내일이면 아마도 모든 관절을 떼어 내어 다시 조립한 느낌이 들것이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32킬로미터를 가뿐하게(?) 달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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